[김세영의 마니아썰]김세영은 왜 매번 기적을 보여주나

김세영 기자 2016. 3. 2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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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영이 JTBC 파운더스컵 최종일 경기를 마친 후 하늘을 향해 감사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피닉스=박태성 기자

김세영의 우승은 매번 극적이다. 팬들은 열광한다. 그의 우승이 평범한 게 오히려 이상하다. 이런 그의 모습에 언론과 팬들은 '역전의 여왕' '기적의 샷' '빨간 바지의 마법' 등의 수식어를 붙인다.

김세영은 이번에도 또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JTBC 파운더스컵에서 LPGA 투어 72홀 최소타 타이 기록으로 우승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 라운드 이글 2개를 포함해 4라운드 동안 이글을 4개나 뽑아내는 등 경쟁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사막의 여왕'이 됐다.

그가 이처럼 매번 명장면을 연출하며 극적인 우승 스토리를 쓰는 비결은 뭘까. 코스 설계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냉철한 분석력과 어릴 때부터 지고는 못 살았던 승부 근성, 그리고 장타 능력 등이 상호 결합해 시너지 작용을 일으킨 결과라고 본다.

먼저 설계가의 의도다. 코스 설계가들은 작곡가와 같다. 그들은 설계를 하면서 플레이어들이 일종의 리듬감을 느끼며 라운드를 할 수 있도록 한다. 대개 첫 홀은 가볍게 몸을 풀 수 있도록 배려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서서히 박진감을 올려 게임의 묘미가 배가될 수 있도록 한다.

설계가들은 이를 위해 18개 홀을 그리면서 파3, 파4, 파5 홀을 적절히 배치한다. 파3와 파5 홀은 4개씩 만들고, 나머지 10개 홀을 파4로 만든다. 파72 코스의 전형이다. 설계가들은 여기에 난이도를 고려해 홀을 배치한다. 보통의 경우 막판 3개 홀에서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도록 안배를 한다. 특히 18번홀은 가능하면 파5로 만들어 쫓는 자에게 2온으로 마지막 역전 기회를 주려고 한다. 마지막 18번홀이 파4라면 공략의 난도를 높인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공격적인 샷이 성공하면 이득을 받게 하고, 실패하면 쓰라린 패배가 기다리게 한다. 이를 통해 일반 골퍼들의 라운드뿐 아니라 프로 골프 대회에서는 박진감을 넘치게 한다. '골프는 장갑을 벗어야 한다'는 격언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설계가들의 이런 숨은 의도가 있다.

김세영은 설계가의 의도대로 마지막 3개 홀에서 승부를 걸줄 아는 선수다. 이번 JTBC 파운더스컵 우승도 역전 우승이다. 그가 국내에서 거둔 5승과 미국에서 거둔 4승 중 역전 우승이 아니었던 건 딱 한 번뿐이다.

그가 우승했을 때의 상황을 되짚어 보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뛰던 2013년 그가 첫 우승을 차지한 대회는 롯데마트 여자오픈이다. 당시 김세영은 마지막 18번홀에서 극적인 이글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 홀도 파5 홀이다. 같은 해 열린 한화금융클래식 최종 라운드 17번홀(파3)에서도 김세영은 홀인원을 기록하며 역전 우승을 거뒀다. 한화금융클래식이 열린 골든베이 골프장의 18번홀도 파5다.

김세영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첫 우승도 마지막 18번홀에서의 과감한 공략으로 엮어냈다. 퓨어실크 바하마 LPGA 클래식이 열린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골프장의 18번홀도 파5다. 김세영은 이 홀에서 열린 연장전에서 두 번째 샷을 그린 가장자리에 올린 뒤 버디로 승부를 갈랐다. 앞서 최종 4라운드 18번홀에서도 버디를 잡아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들어갔다.

김세영의 이름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확실한 무대는 지난해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 챔피언십이다. 그는 마지막 18번홀에서 극적인 칩샷 버디로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고, 연장 첫 번째 홀에서 '샷 이글' 한 방으로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당시 18번홀은 파4였지만 그린 앞에는 해저드가 있어 공략이 쉽지 않았다. 특히 최종일에는 핀을 앞쪽에 꽂아 난도를 더욱 높였다. 김세영은 "연습을 할 때 설계가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꼼꼼히 분석한다"고 했다.

▲ 김세영이 파운더스컵 우승 직후 트로피를 든 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피닉스=박태성 기자

다음은 승부욕이다. 태권도 공인 3단인 김세영은 "어린 시절부터 지고는 못 살았다"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어릴 때 학교 가기 전 집 앞에 남학생들이 자주 기다리고 있었는데 세영이 가방을 들어주던 아이들이었다"고 했다.

김세영은 이번 JTBC 파운더스컵 3라운드 막판 16번과 17번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며 선두를 내줬다. 그 전 파5 15번홀에서 그는 두 번째 샷을 벙커로 보냈다. 페이드를 날리려고 했지만 드로 구질이 걸리면서 실수를 했다. 이글이나 버디를 잡아야 한다고 판단한 홀에서 파를 잡은 그는 고개를 숙였다. 스코어는 파였지만 실상은 보기나 더블보기를 범했다고 판단한 거다. 그때부터 평정심을 잃었다.

경기를 마친 김세영의 얼굴에는 못 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곧장 드라이빙 레인지를 향했다. 아이언으로 페이드 샷부터 날렸다. 이번 코스에서는 페이드 샷을 잘 날려야 딱딱한 그린에 볼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데다 핀이 우측이 많이 꽂힐 것을 예상해서다.

그의 연습은 해가 질 때까지 이어졌다. 그는 "숙소에 돌아가서도 '씩씩'거리며 잠을 잘 못 잤다"고 했다. 최종일 티오프 시간이 오후였지만 그는 새벽 6시에 다시 레인지를 찾아 1시간반가량 다시 연습했다. 그런 후 최종일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대개 대회 마지막 날 막판에 승부를 걸기 위해서는 두둑한 배짱을 겸비한 승부욕과 장타 능력, 그리고 코스 분석 능력이 삼박자를 이뤄야 한다. 김세영은 이번 JTBC 파운더스컵 최종일 313야드의 장타를 날렸다. 물론 페어웨이가 단단하게 메마른 사막 코스라 런이 늘어난 덕도 봤다. 강한 승부욕으로 실수는 하루 만에 보완했다. 또한 설계가의 의도를 이번에도 정확히 짚어냈다.

우리네 일상에서도 승부욕, 분석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한 방'이 있어야 원하는 목표를 얻지 않을까. 김세영은 여기에 한 마디를 곁들였다. "많은 걸 감내할 줄 알아야죠."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느낌은 나만의 얘기일까. 그의 기적에는 이유가 있었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k0121@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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