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김현수, 최고 레벨의 픽 오프(pick off)를 극복하다

조회수 2016. 3. 22. 08: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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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단 용어 공부부터 하자. 또 영어다. (투덜투덜)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 친구(야구)가 줄곧 자란 곳이 미국이니….

픽 오프(pick off) - 투수나 포수가 내야수와 미리 약속된 사인을 교환하고 견제구를 던져 주자를 잡아내는 플레이다. 뭐 대단할 것 없다. 쉽게 말하면 수비끼리 짜고, 상대편 하나 바보 만드는 일이다.

물론 간단치 않다. 작업하는 쪽에서 서로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 그만큼 많은 훈련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뜻이다. 정확성, 신속성은 기본이다. 적합한 상대와 타이밍을 잡아내는 이해력과 연기력도 필수적이다. 이를테면 하나의 종합 예술인 셈이다.

 mlb.tv 화면

어제(한국시간 21일) 게임은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그의 이번 시범 경기 중 최고가 아닐까 한다. 2회와 3회에 나온 2개의 안타가 모두 시원시원했다. 무엇보다 타구의 질이 압권이었다. 감질나는 내야 안타가 아니라, 총알 같이 야수를 뚫고 나갔다. 통렬한 속도감이 돋보였다.

3경기 연속 안타, 두번째 멀티 히트. 최근 7경기에서 19타수 8안타로 타율이 무려 .421이나 된다. 민망했던 시범경기 전체 타율도 2할에 턱걸이 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꿋꿋이 버텨준 벅 쇼월터 감독도 이제는 헛기침 좀 하게 됐다.

여러 모로 뿌듯했던 그 경기에서 <…구라다>가 주목한 대목이 있다. 3회였다. 그가 두번째 안타를 치고 나가 1루 주자가 된 상황이었다. 여기서 상대방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작전을 펼쳤다. 문제의 픽 오프였다.

해설자의 칭찬 “아주 준비가 잘 된 움직임이네요”  

그 장면을 설명하려면 앞선 상황 하나가 더 필요하다. 인과 관계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조금만 앞으로 돌려보자. 그가 첫 안타를 친 2회다. 오리올스는 여기서 만루로 기회를 이어갔고, 페드로 알바레스가 홈런을 터트려 대량 득점에 성공했다.

2회 후속 타자의 짧은 중전 안타 때 1루에서 3루까지 내달리는 김현수.  mlb.tv 화면

눈여겨 볼 것은 김현수의 주루 플레이다. 2사 후 조지프의 안타 때 1루에서 3루까지 달렸다. 물론 2사 후에 볼카운트가 3-2였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짧은 중전 안타에도 불구하고, 3루에서 ‘아주/충분히/여유있는’ 타이밍으로 살았다.

하지만 중계하던 볼티모어 MASN-HD의 해설자 브라이언 로버츠는 여기에 대해 특별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이런 멘트를 날렸다. “(조지프의) 안타도 좋았지만, 킴(Kim)의 움직임이 상당히 인상적이네요. 마치 (아마 베스트 컨디션을 의미하는 듯) 한창 시즌 중일 때의 동작을 보는 것 같군요. 아주 준비가 잘 돼 있는 움직임이예요.”

브라이언 로버츠(38)가 누군가. 오리올스에서 13년을 뛰면서 2루타 50개+ 시즌을 3번이나 가졌다. 그만큼 적극적인 주자로 유명했다. 그런 그의 눈에 김현수의 달리기가 썩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연속 화면으로 캡처한 포수의 견제 장면. mlb.tv 화면

한 단계 높은 레벨의 픽 오프  

하지만 이 대목을 눈여겨 본 것은 로버츠 뿐만이 아니었다. 그라운드에서 또 한 명이 매서운 눈길로 주시하고 있었다. 상대편 포수 르네 리베라였다.

이윽고 3회. 김현수가 또다시 안타, 1루에 나갔다. 리베라는 곧바로 작업을 개시했다. 위의 연속 사진 맨 처음 컷을 주목하시라. 투수에게 사인을 교환을 마친 뒤 그는 1루쪽을 한번 흘깃 본다. 그러면서 오른손으로 미트 끈을 조이는듯한 동작을 취한다. 추측컨대 이것이 1루수(제임스 로니)와의 약속된 사인이 아닐까 한다. ‘이번에 하나 간다. 준비해라’는 픽 오프 사인 말이다. 물론 아니면 말고….

어쨌든 초구는 외곽으로 살짝 떨어지면서 휘어져 나가는 변화구(슬라이더?)였다. 리베라는 잡자마자 전광석화 같이 1루에 강한 송구를 뿌렸다. 다행히 결과는 아슬아슬 세이프. 하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픽 오프 정도야 KBO 리그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날 템파베이의 작품은 레벨이 높았다. 보통은 바깥쪽 직구를 높게 빼서 시도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리베라는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성)를 밑밥으로 깔았다.

이건 두가지 효과를 노린 것이다. 초구였다. 맥 없이 볼 하나를 버리기는 싫다. 볼카운트도 신경 쓰고 싶다. 일단 타자의 헛스윙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1루 주자를 더 완벽하게 속일 수 있다. 높게 빼면 (포수의) 송구는 편하지만, 그만큼 주자가 눈치 챌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획자 리베라의 뛰어난 주자 억제력  

그럼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왜 하필 김현수였느냐는 점이다.

말했다시피 픽 오프는 적당한 ‘속임’이 포함된 종합예술이다. 하지만 아무나 걸려들 지 않는다. 움직임이 좋은 주자들이 표적으로 안성마춤이다. 왜 그렇지 않은가. 사기도 좀 아는 사람들이 당한다. 생판 모르면 씨도 안먹히는 이치와 같다.

게다가 대상은 빅리그 초짜다. 먼 나라, 낯선 리그 출신이다. 그래서 뭔가 보여주고 싶은 의욕이 그를 공격적인 주자로 만들 것이다. 이런 복합적인 계산이 두루 깔려 있었다고 본다.

기획자인 포수 르네 리베라(32)는 절대 띄엄띄엄 보면 안된다. 비록 공격력은 형편 없지만, 그걸 수비력으로 만회하며 주전을 꿰찼다. 특히 주자를 견제하는 능력은 ML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그의 통산 도루 저지율은 38.22%나 된다. 현역 포수 중에는 야디어 몰리나(44.43%)를 빼고 가장 높다. 김현수를 저격하기 위한 그 견제구도 빠르기나, 정확성 면에서 손색이 없었다. ‘아차’ 했으면 당했을 것이다.

화살표가 조금 미안(?)하지만, 앉은 자세의 높이와 방향이 약간씩 다르다. mlb.tv 화면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위의 두 장면을 비교하면 약간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왼쪽 그림이 보통의 자세, 그리고 오른쪽 그림이 픽 오프를 시행하기 직전 포구 자세다.

① 몸이 전체적으로 1루쪽을 향하고 있고, ② 무엇보다 엉덩이가 살짝 더 들려있다. 빠른 송구 동작을 위해서다. 또 우리 포수들이 오른손을 보호하기 위해 뒷짐 지는 것과 달리, 그는 앞쪽으로 내놓고 있다. ③ 그 손도 픽 오프 때는 조금 더 앞으로 나와 있다.

실전에서 김현수가 처음 본 포수의 이런 미세한 동작까지 읽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안정감 있는 플레이를 추구하는 그의 스타일과 기민한 센스가 ‘사고’를 방지했을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발휘되는 실력은 여러가지 기능의 유기적인 결합이다. 수비와 타격, 주루 플레이는 서로 무관한듯 하지만, 자신감이라는 요소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만약 그가 리베라의 견제구에 당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고개를 숙인 채 터덜터덜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픽 오프는 경기의 흐름을 바꾼다.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물론 선수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모진 고생 끝에, 어렵사리 되찾은 타석에서의 집중력에도 큰 방해 요소가 됐을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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