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아이언맨을 꿈꾸는 그녀들

김세영 기자 2016. 2. 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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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출장길에 만난 김효주(왼쪽)와 김세영 등 선수들은 한 입으로 체력을 강조했다. 그들은 아이언맨과 같은 강력체력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진편집=박태성 기자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난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선배들은 "체력이 뒷받침돼야 공부도 한다"고 했다. 그 구실로 매주 금요일 밤이면 우리는 운동장을 수 없이 돌고, 얼차려까지 받아야 했다. 철봉에 매달린 뒤 정해진 시간 동안 버티지 못하면 "넌 지금 대학에 떨어진 거야"라는 질책과 함께 몽둥이가 날아왔다. 우린 금요일을 '블랙 프라이데이'라 불렀다. 어쨌든 그렇게 기른 체력을 정작 고3이 되어선 밤새 술을 마시는 데 쓰고 말았으니...쩝.

프로 골프 선수들은 매주 대회장을 따라 이동한다. 어찌 보면 '유목민'과도 같은 삶이다. 국내 대회는 그나마 이동거리가 짧지만 미국은 얘기가 다르다. 매주 다른 잔디, 다른 기후의 장소로 옮겨 다닌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LPGA 투어는 글로벌을 외치며 영토를 해외로 넓혔다.

올해의 경우 34개 대회 중 15개가 미국을 벗어난 지역에서 열린다. 호주, 영국, 프랑스, 캐나다, 멕시코,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한국, 일본, 대만 등 미국을 제외하고도 13개 국가에서 개최된다. 북미, 유럽, 아시아 등 대륙으로 따지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제외한 지구촌 전체가 무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수들은 모두 한 입으로 '체력'을 외친다. 지난해 3승을 거두며 신인왕을 차지한 김세영은 "지난 1년간 LPGA 투어를 뛰어보니 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이곳은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인 것 같다. 그걸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미국으로 오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김세영에게 신인왕을 뺏긴 김효주는 더욱 독하게 마음을 먹은 듯했다. 그는 지난해 국내 대회에도 몇 차례 참가하는 통에 체력 고갈로 인한 부진을 겪었다. 전반기에 1승을 거뒀지만 8월 이후의 성적을 초라했다. 딱 한 차례만 제외하고 톱10 입상에 모두 실패했다. 그 사이 기권도 두 번이나 했다.

그런 학습효과 덕에 김효주는 올해 상반기에는 국내 대회에는 아예 출전하지 않기로 했다. 메인 스폰서인 롯데 측도 매년 4월 롯데마트 여자오픈을 개최하고 있지만 이런 김효주의 결정을 존중했다고 한다. 김효주의 아버지 김창호 씨는 "미국 대회를 뛰다 국내 대회에 한 번 참가하면 일주일이 아니라 3주 동안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김효주는 "지난해에는 하반기에 체력이 떨어지면서 드라이버를 칠 때 나쁜 습관이 나왔다. 드라이버가 똑바로 가지 않으니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번 동계훈련 기간 체력 보강에 집중했다. 그는 "처음에는 3km 정도를 뛰면 숨이 찼지만 나중에는 5km를 뛰어도 거뜬할 정도가 됐다. 남들이 쉬는 동안에도 나는 트레이닝을 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녀들은 아이언맨과 같은 강철 체력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향상된 체력에 스윙이 견고해진 것인지 김효주는 개막전인 바하마 클래식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올 시즌 돌풍을 예고했다.

다시 나의 얘기다. 얼마 전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그동안의 해외 출장은 대개 한 곳에 머물다 오는 일정이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보름을 머무는 동안 동부 플로리다에서 서부 캘리포니아로, 다시 플로리다로 이동하는 스케줄. 한국에서 미국까지 가는 시간은 차치하더라도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이동하는 것만 해도 비행기로 5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시차도 3시간이다. 공항을 오가고,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꼬박 하루가 흘러간다.

우리 일행을 더욱 힘들게 했던 건 시차 적응이 될 만하면 이동해야 했다는 점이다. 사나흘 머물다 다시 이동을 하는 스케줄이다 보니 시차 때문에 잠을 제대로 청할 수 없었다. 보름을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체력이 바닥났다. 물론 소맥과 라면, 김치, 보드카 등의 힘을 빌려 밤마다 '파이팅'을 외쳤지만 말이다.

이번 출장길에서 얻은 소득 중 하나가 투어 선수들의 고충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점이다. 매주 짐을 싸 이동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이전엔 말로만 들었을 뿐 체감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 출정길이 그걸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였던 거다.

이 시점에서 '체력은 국력'이라는 '국민학교' 시절의 표어가 문득 떠오른다. 이건 너무 진부한 표현이다. 마음에 와 닿지도 않는다. 보다 현실적인 표현이 필요할 것 같다. '체력이 곧 연봉이다' 뭐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고등학교 이후 매년 평균 1kg씩 증가하고 있는 나의 체중은 어찌해야 할꼬.

그래. 뛰자. 마침 설도 맞았으니 다시 굳건하게 마음을 먹자. 그래야 연봉도 뛰고, 하고자 하는 일을 밀어붙일 힘도 생긴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프로 골퍼에게만 체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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