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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자 MLB리포트] NL에서도 투수 타석은 사라질까

조회수 2016. 1. 29. 10: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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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MLB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궁극적으로는 내셔널리그(NL)도 아메리칸리그(AL)과 같이 지명타자(DH) 제도를 채택하지 않겠느냐는 사견을 내놔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패기 넘치는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은근히 이런 논쟁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현재 NL에서는 투수들이 타석에 서지만 AL에서는 그 자리에 지명 타자, DH가 타석에 선지 꽤 오래됐습니다. 정확히는 1973년에 AL이 이 제도를 도입했으니 벌써 43년째가 됩니다. AL의 DH 도입 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야구를 하는 나라의 많은 대학이나 아마리그 그리고 프로리그에서도 DH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KBO리그 역시 DH를 도입했습니다. 현재 투수가 타석에 나서는 리그는 미국의 NL과 일본의 센트럴리그 정도입니다.

그러나 NL에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습니다.

작년 말에 열린 구단주 회의에서도 NL의 DH 도입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도 없었습니다. 야구전통주의자들은 투수도 당연히 타석에 서야한다고 믿습니다. '원래 야구는 100년 가까이 그런 전통을 고수하다가 1973년 들어 AL에서 이기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을 뿐, NL이라도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이기적'이라는 의미는 선수노조 등의 입김으로 더 이상 수비가 잘 안 되는 베테랑이나 혹은 타고나길 수비가 약한 타자들을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는 주장입니다.

MLB의 야구관련 업무에 힘을 쏟고 있는 전 양키즈 감독 조 토리도 "회의에서 그것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라며 NL의 DH 도입 계획이 없음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3가지 이유에서 갈수록 NL의 DH 도입은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투수의 부상

최근 NL 관계자들이 조심스럽게 DH 도입을 언급하는 이유는 투수들의 부상 때문입니다.

지명 타자의 대명사인 보스턴의 데이빗 오티스. 앞으로는 NL에서도 DH를 도입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사진=보스턴SNS>

투수가 타격 혹은 주루 플레이 때문에 부상을 입는 경우가 가끔 발생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부상은 1996년 4월 7일 시키고의 리글리필드에서 발생했습니다. 아주 매운 날씨 속에 다저스와 컵스의 일전이 벌어진 가운데 다저스 선발은 라몬 마르테니스였습니다. 2회 초 첫 타석에 들어선 라몬은 땅볼을 치고 1루로 질주하다가 허벅지 뒤를 부여잡고 쓰러졌습니다. 당시 라소다 감독의 주장처럼 추운 날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라몬은 햄스트링 부상이 심하게 왔습니다. 그리고 성급히 몸을 풀고 마운드에 오른 박찬호가 4이닝 3안타 4볼넷 7삼진으로 무실점 역투하며 한국인 최초로 MLB에서 승리 투수가 됐습니다. 그러나 라몬은 한 동안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도 투수의 타격으로 인한 부상은 종종 발생했습니다. 작년 초에는 세인트루이스 에이스 애덤 웨인라이트가 타격 중에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중상으로 시즌을 거의 접었습니다. 당시 워싱턴으로 이적한 에이스 맥스 슈어처가 당장 NL도 DH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이 커지기도 했습니다. 9월에는 평소 타격을 하지 않던 양키즈 투수 타나카 마사히로가 인터리그 경기에서 타격 후 1루로 뛰다가 햄스트링 부상이 오기도 했습니다. 2008년 양키즈에서 뛰던 왕첸밍 역시 인터리그 경기 중 주루플레이를 하다가 발을 다쳤고 그때부터 하강세를 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들어 겨울마다 FA 투수에 투자되는 액수는 1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거액을 들인 투수들이 본업이 아닌 타격을 하다가, 주루를 하다가 부상으로 쓰러져 장기간 결장하게 된다면 구단으로서는 보통 손실이 아닙니다.


공격력 저하

NL에서도 투수들이 타격에 능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물론, 매디슨 범가너나 잭 그레인키 등 타격에 능한 투수도 있지만 워낙 귀하기 때문에 눈에 확 띄는 점도 있습니다. 2015시즌 MLB 투수들의 타격 라인을 보면 타율 1할3푼2리에 출루율 1할6푼, 그리고 장타율 1할7푼을 기록했습니다. 게다가 투수들의 타격 기록은 갈수록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습니다.

SF 투수 범가너는 지난 2년간 143타수만에 9홈런 24타점 2할5푼2리의 맹타를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범가너나 그레인키 등 뛰어난 타격을 하는 투수들의 모습이 사라질 가능성이 점점 커집니다. <사진=SF SNS>

팬그래프스.com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NL과 AL의 타순별 OPS(출루율+장타율)을 따져보면 9번 타자의 차이가 극심합니다. 당연한 것이 NL에서는 대부분 투수가 9번에 서기 때문입니다. 다른 타순은 1푼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1번 타자는 AL이 2리가 높았고 2번 타자는 1푼1리로 유일하게 AL이 1푼 이상 높았습니다. 반면 3번과 4번 타자의 경우 NL이 오히려 약간 높은 등 양 리그의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9번 타자로 가면 AL이 6할3푼인 반면에 NL은 4할6푼7리로 큰 차이가 납니다. NL에서는 경기 후반에 대타가 활발하게 사용됨을 감안해 투수만 따지면 9번 타자 OPS가 4할대 밑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실은 1980년에도 NL의 지명타자 도입이 거론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타격이 활발했던 시절이라서 이 시도는 가볍게 제압이 됐습니다.

그러나 최근 투고타서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다시 이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작년 MLB 평균 타율은 2할5푼4리였고 2014시즌에는 2할5푼1리였습니다. (작년 KBO리그의 평균 타율이 2할8푼,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만 따지면 3할5리였으니 큰 차이가 있습니다.) 2014시즌의 MLB 평균 타율 2할5푼1리는 1972년의 2할4푼4리에 이어 42년만의 최저 타율이었습니다. 1973년 AL에 DH가 도입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공격력 강화를 위해서였습니다.

약물 시대가 지나고 거포들은 줄어드는데 투수들의 구속이 갈수록 빨라지는 마당에 투고타저를 깨고 팬들에게 조금 더 공격적인 야구를 보여준다는 취지에서 NL도 DL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을 만 합니다.


노사협상의 해

올해를 끝으로 MLB와 선수노조 간의 노사협상 기간이 만료됩니다.

새롭게 단체협상을 해야 하는데 협상 테이블에 NL의 DH 도입이 올라올 것인 불을 보듯 뻔합니다. 선수들에게는 크게 환영받을 일입니다. 소위 '파이'가 커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발생했던 이기적이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비력이 떨어진 노장들에게는 선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일자리가 생기고, 펀치력은 있지만 수비력이나 주루플레이 등이 떨어지는 선수를 NL 팀이 기피하는 현상도 사라질 것입니다. 한마디로 거액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니 선수노조는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오랜 기간 동안 선수노조는 늘 환영의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양 리그가 같은 규정으로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도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야 AL과 NL 팀이 만나는 경우는 오직 가을의 월드시리즈와 한여름의 축제인 올스타전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AL로 편입된 이래 MLB는 하루에 적어도 한 경기씩은 인터리그, 즉 AL 팀과 NL 팀의 대결을 펼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 구장에 가면 지명 타자를 쓰다가 저 구장에 가면 투수가 타석에 서는 것은 아무래도 평소에 제도에 익숙지 않은 팀에게 불리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DH를 없앨 일은 아니니 양 리그가 모두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옵니다.


과연 바꿔야할까?

'공격력이냐 아기자기한 작전이냐'는 AL과 NL의 큰 차이점이자 흥밋거리로 여겨져 왔습니다.

야구의 가장 큰 매력 중에서도 의외성과 놀라운 반전이 그중 최고일진데, 강타자가 한 명 더 나오는 타선은 힘은 더 강할지 모르지만 투수가 나와서 번트를 대거나 혹은 결정적인 순간에 더블 스위치를 하면서 작전의 묘수를 풀어내는 등의 스몰 베이스볼의 묘미를 따를 수는 없습니다. 물론, 너무 약한 타자인 투수의 등장 자체가 반전 요소가 확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우리가 박찬호의 홈런에 열광하고 류현진의 멀티 히트에 짜릿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NL의 제도 때문입니다.

게다가 투수가 타석에 나서는 것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야구의 전통적인 DNA 중 하나입니다. 워낙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초창기 야구와 현대 야구는 대단히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투수도 팀의 일원이고 당연히 타석에 서야 한다는 것은 그나마 NL에서 변함없이 유지돼 온 전통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전통마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반대입니다만 시대의 흐름을 보면 역시 갈수록 NL도 DH를 채택하라는 목소리가 대세로 자리를 잡을 것 같습니다. 부상 예방, 똑같은 규정,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전통주의자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집니다. 지명 타자를 내서 투수의 부상도 방지하고 공격력도 높이고 팬에게도 어필하고 선수들의 연봉도 높아질 기회가 생긴다는데 전통만 앞세워 반대하기에는 갈수록 명분이 떨어지는 분위기입니다. 요즘 대세인 경제논리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서글픔이 있습니다.

 

올겨울 MLB와 선수노조의 단체협상에서 NL의 DH 도입 문제는 분명히 과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시기에 투수는 더 이상 어떤 리그에서도 타석에 나서지 않는 것이 제도화될지도 모릅니다. 머리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많으면서도 가슴은 영 내키지 않는 부분도 많습니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다음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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