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윤안임오의 출구전략 감상하기

조회수 2016. 1. 1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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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본래 1월은 띄엄띄엄 해야 한다. 초등학교부터 10년 넘게 우린 그런 바이오 리듬에 익숙하지 않았나. 이런 계절에 쓸데없이 열공하면 반칙이다.

하지만 요즘 그런 배부른 소리는 욕먹기 십상이다. 청년실업, 열정페이, 헬조선 같은 가슴 아린 용어들이 넘치는 시대, 큰 일 날 얘기다.

그래서…. 놀면 뭐 하나. 한 개라도 배우자. 오늘 <…구라다>는 폼 나고, 유식하게 시작한다. 1교시는 경제학이다.

출구전략(出口戰略, exit strategy). 거시 경제학에서 쓰는 용어다. 경기가 침체되면 정부는 시장의 활력을 위해 돈을 푼다. 물론 계속 그러면 안된다. 어느 정도 효과를 얻으면 부작용을 최소화 하면서 서서히 통화(돈)를 거둬들여야 한다. 그걸 출구전략이라고 한다. 본래 미국 국방부가 쓰던 군사 용어다. 베트남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미군의 피해가 늘고 반전 여론이 높아지자, 정치/외교적 부담을 줄이면서 군대를 철수시키는 전략을 말했다. 일반적으로는 '안좋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 정도의 뜻이다.

100% 잘못 인정, 90도 사죄 인사  

실로 오랜만이다. 그가 얼굴과 목소리를 드러냈다. 인천 공항 입국장이었다. 여전히 단단한 그의 상체는 세련된 체크 슈트로도 숨기지 못했다. 헤어 스타일? 예상대로 달라졌다. 옅은 와인색 머리는 10시간 넘는 비행에도 별 흐트러짐이 없었다.

게이트가 열리며 그가 나타나자 줄 잡아 수십명의 기자들이 '우르르'. 방송, 신문, 온라인이 망라됐다. 감히 어느 아이돌도 누리지 못할 관심도가 폭발했다.

굳은 표정이었다. 수 없이 터지는 플래시와 조명 탓에 잠시 찡그리기도 했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려서 죄송합니다."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사과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100% 제 잘못입니다. 야구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팬들에 대한 사죄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사건이 보도되고 한참이 지났다. 그 사이 무성한 '설'이 난무했다. 소속팀 한신 타이거스도 재계약 문제로 난감해졌다. 뭔가 설명이 절실했다. 그때마다 해명의 주체는 본인이 아니었다. '오승환측'이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부인하며 상황의 모면/역전을 시도하기도 했다.

급기야 수사를 맡은 서울지검 강력부가 약식기소로 결론내리자 비로소 사실 관계를 인정했다. 그것도 사과문이라는 형태였다.

같은 수사를 받은 '임'의 경우도 같은 마찬가지다. 검찰 출두→혐의 인정→약식기소→사과문 발표. 놀랍도록 정확한 패턴이다. 마치 사전에 짜여진 시나리오 같다. 그 와중에 어느 매체를 통해서도, 그리고 어떤 경로를 거쳐서도 당사자의 직접적인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았다.

구설에 올랐던 4명 중 이날의 인천공항 회견이 처음이었다. 야구판을 통째로 뒤흔든 사건 이후 무려 3개월 만이었다. 비로소 본인이 모습을 드러내고, 자기 목소리로 얘기했다. 메이저리그 진출로 진로 문제가 일단락된 이후다. 

철저히 관리되는 소통

라이온즈는 오늘(15일) 오후 괌으로 떠난다. 명단을 보면 감독, 코칭스태프와 주요 선수들 대부분이 포함됐다. 그러나 '윤과 안'은 빠졌다. 그들은 따로 간다. 별도의 출국 일정으로 괌에 합류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직 앞에 나서기는 이르다는 판단일 지 모른다.

물론 라이온즈와 그들도 잃은 게 있다. 가장 중요한 한국시리즈에서 자진해서 자숙했다. 급기야 핵심 선수 중 한 명을 내보내는 강수를 뒀다. 그리고 남은 두 명을 (여론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지극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마치 미국식 형사제도 플리 바겐(plea bargain, 감형 조건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제도)을 보는 것 같다.

명문 구단으로 자리잡았던 라이온즈는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당연히 이를 극복할 프로그램을 작동시켜야 한다. 어느 정도의 출혈은 감수하지만, 피해를 최소화 하는 이른바 '출구전략' 말이다.

여기는 전문가(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여론과 미디어의 흐름과 사정 당국에 대한 정보까지를 통합해서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작동했을 것이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됐을 것이다. 적절한 가이드라인도 제시됐을 것이다. 3개월간이나 미디어나 팬들과 소통을 철저히 단절시킨 것도 아마 그런 통제의 방편일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이게 잘못됐다고 비판할 일은 아니다. 구단이 자신들의 소중한 재산(선수)을 보호하기 위해 비상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세계적인 모기업을 기반으로 한 스포츠단 아닌가.

가슴으로 전해지는 뭔가가…

그러고 보면 이번 출구전략은 한 편의 완벽한 구성이었다. 치밀하고 빈틈이 없었다. 철저한 계산과 조율을 통해 이뤄진 느낌이다. 뛰어난 전문가 집단의 작품이리라. 그래서 성공적으로 실현돼 가는 중이다. 적어도 그들이 최소한으로 지키고 싶어하는 테두리 안에서는 말이다.

아마도 시간이 더 지나면 여론은 잠잠해질 것이다. 그리고 논란을 일으켰던 당사자들은 예전보다 더 열심히 준비할 것이다. 훨씬 더 강한 공을 뿌릴 것이다. 절치부심, 분골쇄신, 절차탁마. 그런 말들로 수식될 지 모른다. 그것이 속죄이고, 반성이고, 보답이라 여겨달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과연 그렇게 철저하게 관리된 소통으로, 단절된 유대로, 어떤 공감을 얻을 지 궁금하다. 그들의 컴백이 누굴 감동시킬 지 의문이다.

아무도 파국을 원하지 않았다. 다만, 가슴으로 전해지는 뭔가가 아쉬울 따름이다. 사과문, 정장, 90도 인사…. 그런 건 필요없다.

백종인 / 스포츠 칼럼니스트

[외부필자의 칼럼은 다음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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