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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김성근의 통치술(統治術) '정우람 깨기'

조회수 2016. 1. 11. 09: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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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야구판이 심심했다. 마카오와 해외진출에 관련된 진빠진 얘기 빼고는 별로 솔깃한 이슈가 없었다. 팬들, 야구 기자들 슬슬 하품 나오려 했다.

그러나 무료함을 일깨우려 홀연히 일어선 이가 있었다. KBO 최고의 이슈 메이커인 야신이다. 그는 간만에 선물 하나를 투척하면서 새 해 벽두부터 존재감을 과시했다.

다들 아시는 뉴스지만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다음 주말(15일) 일본 고치에서 시작되는 스프링캠프 명단을 짜던 김 감독이 김태균과 정우람을 제외시켰다. 훈련할 몸이 안돼 있다는 게 이유였다. 매체들마다 '격노' '경고' '충격' 같은 MSG를 적당히 가미시켜 유통시켰다.

오랜만의 떡밥이다. 그걸 <..구라다>가 놓칠 리 있나. 뭔가 있을 것 같다. 해서 그 얘기를 하려 한다. 물론 감안하시라. 늘 하는 말이지만 추측과 억측과 구라가 난무한다.


아리송한 전지훈련 제외 이유

이 보도를 유심히 들여다 보자. 사안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이 있다. 아리송함이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점 말이다. 그렇다면 뭔가 있는 거다. 아마도 나타난 현상 아래는 깊은 '수읽기'를 필요로 하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아리송함의 첫번째는 바로 판단의 근거다. 당초 이글스는 전훈을 앞두고 코칭스태프들이 참석한 체력 테스트를 할 예정이었다. 선수들의 몸상태를 파악하는 과정이다. 그래야 훈련 강도를 조절할 수 있고, 심할 경우 데려가지 않는 명단도 추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생략됐다. 대신 트레이너의 보고서가 자료였다. 물론 첨단 장비로 과학적인 측정을 한 데이터가 기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일반적이지 않다. 그것만으로 핵심 선수 2명을 집어내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 말이다. 하다못해 별도의 면담을 했다거나 하는 얘기도 전해지지 않았다.

이후 '군기잡기'라는 해설 기사가 등장했다. 일리 있는 분석이다. 김태균은 한눈에 딱 봐도 훈련에 따라가기 힘들어 보이는 몸 아닌가. 또 작년 시즌 중에도 야신과 몇차례의 미묘한 순간이 있었다. 그러니 경각심을 불어넣고, 자극을 주기 위한 충격 요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선수단에 이런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다들 기대해. 이번 전훈은 제대로 한판 굴려줄테니."

관련해 김태균은 쿨하고 담담했다. OSEN과 인터뷰에서 "몸 관리를 게을리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감독님 결정을 존중한다. 서산에서 열심히 준비하겠다"라고 했다.

정우람 같이 훈련 잘하게 생긴 선수가?

김태균은 그렇다 치자. 사실 그가 서산에서 훈련한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진짜 의외인 것은 정우람이다. 야심차게 영입한 전학생 아닌가.

몸이 어디 이상한가? 그럴 리 없다. 바로 얼마전 프리미어12 때도 대표팀으로 활약하지 않았나. 당시 김성근 감독의 평가는 이랬다. "투심이 무척 좋아졌다. 리그에서 가장 좋다. 특히 일본과 준결승에서 보여준 구위는 최고였다"면서 감탄했다.

그럼 FA 계약을 하고 난 뒤, 봉인 해제된 생활로 급격히 쇠퇴했나? 그럴 가능성도 별로다. 이미 꾸준한 성실성은 인정받은 선수 아닌가. 게다가 체형이나 눈빛을 보시라. 어떤 지옥 훈련도 가장 잘 따라하게 생긴 스타일 아닌가. 이적 후 첫 소감도 "김성근 감독님과 다시 야구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그 밑에서 기초를 닦았다. 이미 누구보다 야신 방식에 최적화된 투수다. 

그럼에도 굳이, 왜, 제외시켰을까. 1차적인 해석은 정우람에 대한 경고라는 풀이다. 상당수 FA들이 계약 첫 해에 기대치를 채우지 못한다.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한 덕에 목표를 이뤘다. 그러면 조금 헐거워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다가 부상이 찾아오기도 하고, 슬럼프에 빠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는 뜻일 게다.


정우람이 마무리면, 권혁은..

하지만 김 감독을 그 정도 수준에서 평가하면 섭섭하다. 그거야 뭐 너무 뻔한 것 아닌가. 그래도 야신으로 불리는데, 조금 더 깊은 뭔가가 없는 지 헤아려야 한다.

그 수읽기를 위해 정우람의 영입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물론 대부분 플러스 요인이다. 전력이 강화됐고, 역전패의 위험이 훨씬 줄어들었다.

하지만 마이너스 요인은 뭘까. 아마도 야신은 이 부분을 읽었던 것 아닐까? 정우람이 올시즌 맡아야 할 보직은 누가 뭐래도 마무리다. 7,8회 막아달라고 84억이나 투자하지는 않았을테니 말이다.

김 감독도 이 부분에 대해 이미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스프링캠프가 끝난 뒤 결정하겠지만"이라는 전제를 한 뒤 "가장 좋은 대안은 정우람"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사실은 지극히 당연하다. 후반기에 조금 후달리기는 했지만 작년 KBO리그에서 가장 안정감을 보인 소방수는 정우람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한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긴다. 기존 불펜 투수들, 특히 권혁과의 입장 정리다. 그는 지난 해 어마어마한 혹사 논란 속에서도 눈물겹게 고군분투했다. 공헌도, 기여도, 팬들에 대한 영향력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존재다.

공교롭게도 둘은 스타일(좌완)마저 겹친다. 때문에 더블 스토퍼 같은 절충도 고려하기 어렵다. 정우람(31)이 마무리라면, 권혁(33)이 셋업맨으로 한 단계 격하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이 문제는 권혁의 개인적인 감정 정리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팀내 투수진 전체에서 생길 지 모를 위화감도 감안해야 한다. 이건 소득의 격차가 지나치게 큰 팀이 극복해야 할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즉 아무리 요긴한 투수를 얻었다고 해도 감독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없다. 그 투수 때문에 이제까지 고생한 누군가는 손해봐야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부러 깐깐하게도 굴고, 호통도 치고, '격노' 하는 이벤트도 시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지난해 팀을 위해 수고한 불펜 투수들에 대한 안쓰러움의 표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우람에게도 필요한 작업

물론 이 부분은 정우람에게도 필요한 작업이다. 선발 투수들과 달리 불펜진은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팀워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글스 불펜의 핵심 멤버들의 구성을 보시라. 권혁(33)을 비롯해 박정진(40), 윤규진(32). 모두들 정우람(31)의 선배들이다. 여기서 어쩔 수 없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면, 그것도 '굴러온 돌'이 그래야 한다면 융화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시라. 워커홀릭 본부장이 있다. 그가 예전에 자기 밑에 있던 똘똘한 직원 하나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매일 '잘한다, 잘한다' 편들어주면 그 조직이 아름답게 돌아갈 리 있겠나.

어차피 나중에야 중요한 일 맡길 거 뻔히 안다. 하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선배들 좀 보고 배워라' 하면서, 복사도 시키고, 전화 좀 잘 받으라고 핀잔 좀 줘야 그럴듯 하지 않겠나. 그래야 얼마전까지 야근에, 특근에 잔업까지.. 몸 바쳐 충성한 직원들에 덜 미안할 것 아닌가. 그래야 '신입'도 마음이 덜 불편한 적응기를 가지지 않을까.

물론 냉혹한 프로의 세계다. 이기기 위한 전력을 짜는데 연공서열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겠나. 그러나 엄연히 사람 사는 곳이다. 상대적인 박탈감, 자존심, 체면, 눈치 같은 사사로운 감정도 때로는 존중받아야 한다. 아마 야신의 이번 '격노'는 그런 지점까지 아우른 퍼포먼스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다음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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