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S담쓰談]스포츠와 정치, 불가분이라면 상생이어라

조회수 2016. 1. 1. 03: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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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을미년이 가고 2016년 병신년 새해가 밝았다. 다사나난했던 기억을 가는 해에 넘기고 새롭게 떠오른 해에 기대와 희망을 담아야 할 첫 날이다.

다만 지난해에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주제가 있어 2016년 첫 날 칼럼에서 풀어내게 됐다. 바로 지난해 3월 6번째 S담쓰談(우리는 박태환에게 다시 기회를 줘야 할까) 말미에 언급했던 부분이다.

당시 수영 간판 박태환의 복귀 문제를 정치적은 측면에서 풀어내면서 마지막에 '스포츠의 대중성에 기대어 조금이라도 자신을 나타내려는 정치인들의 이중성은 나중에 따로 칼럼으로 정리하겠습니다'고 밝힌 바 있다. 게으른 데다 바쁘다는 핑계를 스스로 대며 미루고 잊고 있다 해를 넘겨서야 비로소 묵혔던 주제에 접근하려는 것이다.

워낙 무겁고 복잡한 주제라 짐짓 모른 척하고 있던 부분이 적지 않았다. 스포츠 하나만 신경 쓰기도 벅찬데 거기에 정치까지라... 그래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부딪혀보는 '정치와 스포츠'에 대한 담론이다. 지난해뿐만 아니라 새해, 앞으로도 계속 부딪혀야 할 문제인 까닭이다.

< '함께 갑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와 스포츠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어왔다. 스포츠는 정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정치는 스포츠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은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김연아 등 빙상 대표팀을 격려하는 모습.(자료사진=연합뉴스)

지난해 3월 칼럼에서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한다는 개인적 성향을 적시한 바 있다. 길지 않은 스포츠 기자 생활에 정치인들이 스포츠에 개입했을 경우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봐왔던 까닭이다. 특히 스포츠에 대한 세간의 집중된 관심을 등에 업고 조금이라도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행태는 미간을 찌푸리게 만든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가 가장 대표적이다. 당시 일본을 꺾고 동메달 쾌거를 이룬 축구 대표팀 박종우의 이른바 '독도 세리머니' 사태가 불거졌을 때다. 박종우는 정치적 행위를 금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을 위반했다는 일본의 항의에 따라 동메달을 박탈당할 위기에 놓였다.

이 사안은 곧바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긴급 현안보고에서 다뤄질 만큼 파장이 컸다. 당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과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이 출석해 의원들의 날선 비판과 질문을 받아냈다. 물론 박종우 사태에 대해 체육회와 협회의 대처가 미숙했던 부분은 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스포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이 회장들을 몰아붙이는 데만 급급했던 몇몇 의원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꼴불견이었다. 모 여성 의원은 '독도 세리머니'라는 용어를 쓴 것을 문제삼았다. 이 의원은 조 회장에게 "세리머니라는 단어의 뜻을 아느냐"고 물은 뒤 상식적인 답변이 나오자 "사전 좀 찾아보라"고 면박을 줬다. 이어 "앞으로는 세리머니가 아니라 뒤풀이라고 써야 한다"고 한국 축구계의 수장을 훈계했다.

물론 영어보다는 순 우리말을 가급적 써야 하는 건 맞다. 그러나 세리머니는 스포츠계에서는 이미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다. 축구뿐만 아니라 야구, 농구, 배구 등에서 득점하거나 결정적 플레이를 펼친 뒤 기뻐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 전 세계 스포츠계에서 쓰이는 말이다. 조금이라도 스포츠를 안다면 세리머니를 뒤풀이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나오지 않았을 터. 그야말로 고압적인 자세로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기 위해 제기한 주장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었다.

< '정말 난감하네' 지난 2012년 8월 런던올림픽 이후 국회 현안보고에 출석해 매서운 추궁을 당하고 있는 박용성 당시 대한체육회장(왼쪽)과 조중연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자료사진=연합뉴스) >

또 다른 남성 의원은 박종우의 메달 박탈과 관련해 박용성 회장을 추궁하다 "IOC가 뭔데 메달을 안 주겠다고 하느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스포츠에 대한 무식함을 스스로 드러낸 셈이었다.

IOC는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기구. 개최지 결정은 물론 한 국가 대통령급이라는 IOC 위원 선출 등 올림픽과 관련한 최고결정권을 가진 단체다. IOC에 메달 수여의 권한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갖고 있다는 말인가. 국회의원이 줄 수 있다는 것일까. 국회의원이면 대한민국에서야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졌을지 모르나 IOC에서라면 명함을 내밀어도 별다른 존재감이 없다. 런던올림픽 당시 현장을 방문한 몇몇 국회의원들이 체육회에서 의전을 제대로 하지 않아 불만을 털어놨다는 후문도 들려왔다.어쨌든 지금껏 숱한 국정 감사 등에서 유권자들을 의식해 고성으로 증인들을 윽박지르는 의원들의 모습이 스포츠와 관련해서도 나왔다는 점에서 씁쓸하기 짝이 없는 대목이었다.

지금은 일단락된 여자 배구 간판 김연경의 해외 진출도 정치권이 개입된 사례였다. 역시 2012년의 일로 당시 흥국생명 소속 임대 선수로 해외에서 뛰던 김연경은 자유계약선수(FA)로 풀어달라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배구연맹(KOVO)의 규정을 전면 부정하고 나선 것이었다.

이를 위해 김연경의 에이전트는 몇몇 국회의원들과 선이 닿았고, 10월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김연경은 "코트에 서지 못해 고통스럽고 해외 무대에서 정말로 뛰고 싶다"고 호소했고, 그 앞에는 '김연경에게 자유를 주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해외 무대에서 뛰어야 하는 당위성을 떠나 김연경 측의 주장은 다소 모순된 점이 있었다. 당시 김연경은 마치 FA가 되지 않으면 해외에서 뛰지 못하는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김연경은 임대 선수로 언제든 해외 무대로 나갈 수 있었다. 정말 바랐던 것은 규정을 무시한 FA 자격 취득이었고, 이게 관철되지 않자 정치권을 업고 국민들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한 것이다.

당시 기자회견에 나서기 전 김연경의 옆에는 모 여성 의원이 붙어 있었다. 당시 회견장 가장 앞에 자리한 기자는 해당 의원이 회견을 앞둔 김연경에게 강조했던 말을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무조건 말을 적게 하라.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불리해진다"는 것이었다.

이게 과연 무슨 말일까. 자신의 입장을 전하기 위해 나선 회견인데 주장을 많이 하지 말라고? 왜 그래야 했던 것일까. 무엇이 불리해지길래 그런 주의를 줘야 했던 것일까. 과연 김연경은 회견 당시 준비해온 원고를 읽었고, 이후 회견장 밖에서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지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에이전트가 대신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결국 순진한 선수의 답에서 주장의 허점이 드러날 것을 염려해 노련한 답변가가 대신한 셈이다. 결국 주장의 논리성이 아닌 여론의 추이에 승부가 나는 문제였던 것이다.

김연경의 FA 자격 획득으로 이득을 볼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김연경 몸값의 수수료를 얻는 에이전트가 아니었을까. 또 일견 고통을 받고 있던 선수를 구제해줬다는 공로를 전면에 내세울 정치인들이 아니었을까. 과연 누가 갑이고 을이었을까. 그래서 김연경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도 이런 혜택을 받았을까.

결국 김연경 측은 원했던 바를 이뤘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른뒤 FA로 터키에서 뛰게 됐다. 물론 큰 선수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건 옳지만 그 과정이 썩 개운치는 않았다. 임대료도 받지 못하고 선수의 꿈을 위해 해외 진출을 허락했던 흥국생명은 멍하니 선수에 대한 권리를 빼앗겨야 했다. 흥국생명의 배구단 관리도 그동안 문제투성이었지만 무상 임대라는 선의의 행위도 보상받지 못한 사례였다. 물론 KOVO 규정의 불합리성이 있었다 해도 사태의 본질이 정치권의 노련한 여론몰이에 호도된 사례였다.

공교로운 것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마치 꼭두각시처럼 김연경에게 지시했던 의원은 조중연 회장에게 매섭게 세리머니의 뜻을 물으며 "국어 공부 좀 하라"던 그 의원이었다. 공부를 할 사람은 따로 있던 상황에서 스포츠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정치권 인사가 개입했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사례다. 그야말로 유권자인 국민들에게 어필하기 딱 좋은 스포츠 분야인 것이다. 생색을 내기에는 이만한 분야도 없을 테다.

최근에는 다소 뜸해졌지만 스포츠 단체의 수장을 현직 혹은 전직 정치인들이 맡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프로야구만 해도 초창기 수장은 죄다 정치인 출신이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로 비정치인이 온 것은 1998년 제 12대 박용오 전 두산 구단주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박 총재의 3번 연임 뒤 다시 정치인 출신 총재가 낙하(?)했다. 국회 부의장 출신인 15대 신상우 총재였다. 2006년 부임한 신 총재는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을 이끌었지만 기업 청탁 등 내사설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특히 2007년 현대 야구단 매각과 관련해서 논란이 적잖았다. 신 총재는 취임 1주년 간담회 등에서 조만간 현대 야구단을 인수할 기업이 나타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농협과 STX 등이 진통 끝에 협상에서 물러나 앉으면서 야구계는 더욱 침통해졌다. 신 총재는 다선의 국회의원 출신답게 능수능란한 언변을 구사했지만 정작 실속은 없어 실망감을 안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불쾌한 사례들이 있지만 역시 정치와 스포츠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한국 프로 스포츠는 그 태동부터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까닭이다. 알려진 대로 첫 프로 스포츠인 야구와 축구 등은 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한 3S(스포츠, 스크린, 섹스) 정책의 일환으로 출범했다. 물론 그 덕에 프로 스포츠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기도 했다.

하지만 스포츠가 정치에 영향을 받거나 이용되는 상황이 빈발하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한국 축구계의 큰손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은 회장 시절인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속에 일약 유력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당시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후보 단일화를 이루며 대선에는 나서지 않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지지도를 얻었던 정 회장은 스포츠의 힘을 단적으로 나타난 사례였다.

<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정몽준 후보가 함께 유세에 나선 모습.(자료사진=한국일보) >

이밖에도 정치인들이 스포츠 단체의 수장을 맡는 일은 적잖았다. 자주 언론을 통해 얼굴을 비출 수 있는 자리거나 동호인들(바꿔 말하면 유권자들)이 많은 종목이 정치인들에게는 인기였다. 물론 해당 단체도 힘있는 현 정권의 인사들이 오면 여러 난제를 해결해 종목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반기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대세는 스포츠계와 정치인들의 분리다. 이미 2013년 국회의원의 '겸직금지'를 명시한 국회법이 개정됐고, 2014년 11월 국회가 의원들에게 겸직불가, 사직권고 조치를 내렸다. 당시 해당 의원 43명 중 24명이 체육단체장이었고, 8명이 체육회 산하 단체장 8명이었다. 권리는 누리되 의무는 다하지 않는 의원 수장들에 대해 체육계도 썩 달가운 눈치가 아니다.

스포츠는 온전히 선수들의 땀으로 결정돼야 하는 신성한 승부의 세계다. 그러나 그동안의 스포츠 역사는 정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가 더 많았다.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냉전 시대의 반쪽 올림픽들이 대표적이었다. 냉전 시대가 종식된 최근 베이징올림픽과 소치동계올림픽은 중국과 러시아가 국력을 과시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90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 등 스포츠와 정치가 순기능으로 작용한 경우도 적잖았다.

2016년은 올림픽의 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우올림픽이 오는 8월 5일부터 21일까지 펼쳐진다. 지금도 세계 최고의 무대와 대한민국 스포츠의 위상을 위해 태극전사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런데 2016년은 또 총선의 해다.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4월 열린다. 한국 스포츠와 정치계에 중요한 이벤트가 동시에 열리는 해인 것이다.

바라건대 올해만큼은 신성한 스포츠의 세계에 이득만 취하려는 정치권의 불온한 기운이 미치지 않기를. 한 발 양보해 어차피 불가분인 스포츠와 정치의 관계라면 서로 상생할 수 있기를. 서로 순기능으로 작용해 한국 정치가 먼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그 여세가 한국 스포츠에도 미쳐 모두가 부둥켜 안고 감격을 누릴 수 있기를. 2016년 첫 날 아침에 기대해본다.

< 올해 리우올림픽을 앞둔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릉선수촌에서 혹독한 훈련을 소화하는 모습.(자료사진=박종민 기자) >

*사실 이번 칼럼은 'S담쓰談'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2월 당구 간판 고(故) 김경률의 얘기로 출발한 'S담쓰談'은 44번째 이야기로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그동안 피해왔던(?) 정치와 스포츠 주제였는데 이번이 아니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것 같아 용기를 내봤습니다.

시작 당시는 버젓이 이름을 건 기명 칼럼이라 의욕에 부풀었지만 다른 취재 일정과 기사 작성에 밀려 제대로 칼럼을 신경쓰지 못한 부분, 양해를 구합니다. 원래 쓰고 있던 칼럼(임종률의 스포츠레터)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적잖게 고민했는데 둘 다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주로 휴일이나 근무가 끝난 심야 시간에 칼럼을 작성해야 했던 까닭에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서 나오지 않는 문장을 밀어내느라 끙끙 앓던 기억이 떠오릅니다.(그런데도 왜 그렇게 글이 길어지는지.) 마지막 칼럼도 2015년의 마지막 날과 2016년의 첫 날까지 햇수로 2년 동안 작성이 됐네요.^^*

그동안 부족한 칼럼, 특히 무지하게 길었던 글을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댓글을 통해 격려도 해주시고, 질타도 아낌없이 해주신 여러분들께 더 고마움을 표합니다. 201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앞으로도 한국 스포츠에 뜨거운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글=CBS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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