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타이거에게 띄우는 편지

김세영 기자 2015. 12. 3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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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거 우즈가 마흔 번째 생일을 맞았다.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그의 미래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골프 팬들은 그러나 여전히 그의 활약을 기대한다. 사진은 2011년 골프 클리닉 행사에 참석한 타이거 우즈. AP뉴시스

타이거에게.

오늘은 당신의 생일입니다. 먼저 마흔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야겠군요. 타이거, 당신도 이미 느끼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마흔 살 생일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죠. 뭔가 묘한 그런 기분이 들 겁니다. 인생의 전환기이기 때문이겠죠. 저 역시 몇 년 전 마흔 번째 생일에 그랬답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40세를 불혹이라 부릅니다. 세상사에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다는 뜻이죠. 공자가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며 했던 말인데, 사실 저 같은 범부들은 이 말로 인해 자괴감에 빠지곤 한답니다. 마흔이 되도록 '불혹'하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면서 말이죠.

마흔 번째 생일을 맞는 당신의 기분도 복잡 미묘할 거라 생각됩니다. 최악의 부진과 부상으로 점철된 2015년을 보냈으니까요. 여기에 더해 현재 허리 수술로 인한 힘든 재활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니 더더욱 그러할 걸로 짐작됩니다. 어쩌면 당신의 골프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해일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이 편지는 기자가 아닌 한 명의 팬으로서 보내는 겁니다. 젊은 시절 연애편지를 쓴 적은 많지만 팬레터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골프 기자를 하며 타이거 당신의 인생 스토리를 알게 된 후 팬이 됐답니다. 2살 때 이미 방송에 출연할 정도로 천재성을 발휘했다는 것보다는 백인 동급생들로부터의 집단 따돌림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이겨낸 그 강인함과 그에 대한 애틋함,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당신의 아버지가 보여준 부성애 역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꼭 10년 전인 2005년 마스터스 최종일 16번 홀에서 90도로 꺾이며 홀에 들어갔던 환상적인 칩샷은 지금도 제 머릿속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저희 신문사 편집국 사람들 모두 중계방송을 보다 환호성을 내질렀죠. 2008년 US오픈에서 보여준 부상 투혼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습니다. 무릎 부상으로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다음날까지 이어진 연장전 끝에 마침내 정상에 오르며 포효하던 모습에선, 한 번 물은 먹잇감을 절대 놓치지 않는 진짜 호랑이를 봤습니다. 지배자로서의 카리스마 같은 거였죠.

한 여자 기자 선배는 일본에서 열린 대회 출장 중 겪은 당신과의 에피소드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호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마침 야외 풀장에서 수영을 마친 당신도 가운만 걸친 채 탔다는 겁니다. 뭐, 워낙 얼떨결이라 '하이'라는, 지극히 형식적인 인사만 나눴을 뿐이지만 '심쿵'했다고 했죠.

"헬로 월드"라는 인사말과 함께 프로 골프에 첫 발을 내디뎠던 당신은 전 세계 많은 아이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수많은 꼬마 골퍼들이 "아이 엠 타이거 우즈"라고 외쳤죠. 어릴 적 슈퍼맨을 본 후 보자기를 걸친 채 "나는 슈퍼맨이다"하면서 하늘을 나는 흉내를 내는 것처럼 꼬마 골퍼들에게 당신은 '슈퍼 히어로'였습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로리 매킬로이는 어느 새 성장해 차세대 '골프 황제' 자리를 노리고 있고요.

물론 당신에게 실망한 적도 있습니다. 2009년 섹스 스캔들이 터졌을 때죠. 처음엔 믿기 어려웠습니다. 아니 믿으려 하지 않았죠. 루머에 불과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봇물 터지듯 나온 증언과 증인들로 인해 추문은 사실로 밝혀졌고, 당신은 고개를 숙여야만 했습니다.

섹스 스캔들이 왜 일어났을까 생각도 해 봤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방황, 어린 시절 집단 따돌림하고 폭행했던 백인에 대한 복수, 최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심리적 중압감 등등 나름대로 분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도 도가 지나쳤던 건 사실입니다. 최근까지도 이와 관련한 루머는 여전하고요.

▲ 타이거 우즈의 최대 목표는 메이저 최다승 경신이지만 그의 메이저 우승 시계는 2008년 이후 멈춰 있다. 사진은 2000년 US오픈 우승 당시 타이거 우즈. AP뉴시스

타이거 당신은 최근 마흔 번째 생일과 투어 생활 20년을 맞아 웹사이트에 장문을 글을 남겼더군요. 1997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것과 142개 대회 연속 컷 통과, 그리고 4대 메이저 대회를 연속으로 제패한 걸 가장 특별한 순간으로 꼽았죠. 당신의 레스토랑인 '더 우즈 주피터'에 일주일에 여섯 번은 들러서 사람들을 만나고, 소갈비를 즐긴다고도 했습니다. 말미에는 "다음 10년 후에도 내 모습은 여전히 정상급 기량을 선보이며 메이저 대회에서도 우승할 것"이라고 썼더군요.

당신은 그동안 타고난 천재성뿐 아니라 부단한 노력으로 스윙을 조금씩 개조하면서 1인자로 군림해 왔습니다. 남들은 "한창 정상에 있는데 왜 스윙을 개조하느냐"고 반문할 때, 당신은 "투어를 오랫동안 지배하기 위해선 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시작한 이번 스윙 교정 작업은 도통 나아질 기미가 없습니다. 나이 탓인지, 당신이 스윙 코치가 아닌 스윙 컨설턴트라고 부르는 크리스 코모에게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예전만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인지 그 원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당신은 골프 인생 최대 목표에 대해 언제나 선배인 잭 니클라우스가 보유한 메이저 최다승(18승) 기록을 넘어서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메이저 우승 기록은 2008년 US오픈 이후 멈춰 있습니다. 이젠 은퇴설도 솔솔 나옵니다. 팬으로서 타이거 당신이 벌써 은퇴한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랍니다. 조던 스피스나 제이슨 데이, 로리 매킬로이 등 20대의 쟁쟁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지만 당신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오래도록 봤으면 합니다.

서양에도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말이 있더군요. 니클라우스도 메이저 18승 중 3승을 마흔 넘어서 했고, 벤 호건도 마흔 이후 메이저 3승을 포함해 6승을 거뒀습니다. 당신과 한 때 세계 1위를 다툰 비제이 싱은 마흔 이후 무려 22승, 통산 최다승(82승) 기록 보유자인 샘 스니드는 18승이나 올렸습니다.

다가오는 2016년, 잠시 멈춘 우승 시계를 다시 움직였으면 합니다. 10년 전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보여줬던 기적과 7년 전 US오픈에서의 투혼처럼 말이죠. 그게 바로 타이거 우즈, 당신의 트레이드마크이자 당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딸 샘과 아들 찰리와 함께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길 바랍니다.

2015년 마지막 날, 멀리 한국에서 당신의 팬으로부터.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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