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타인의 시선] 특별대책위원회, '평범한 악' 관례와 싸워주길

조회수 2015. 12. 22. 0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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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연맹)이 칼을 꺼내 들었다. 심판매수와 외국인선수 영입으로 신음하던 K리그의 신뢰회복을 위함이다. 심판을 매수하려 했던 경남FC에 대한 처벌(벌금 7천만 원, 승점 10점 감점)에 대해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다수지만, 구조적인 비리와 전체적인 축구계 구조를 진단하겠다고 만든 특별대책위원회 구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축구계에서 가장 신뢰를 받는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바른말을 아끼지 않는 이영표 KBS해설위원 그리고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 등이 특별대책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특별대책위원회의 구성을 살펴보다가 한 사람과 그가 남긴 말이 떠올랐다. 독일의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다. 아렌트는 대표작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서 악의 평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의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인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

K리그는 위기다. 2011년 승부조작 파문을 겪은 이후에도 경남과 안종복 전 대표이사가 심판을 매수했다는 게 밝혀졌다. 축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는 각본이 없다. 각본이 있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다. 승패가 정해진 경기를 볼 이는 없다. 결과를 아는 재방송보다 재미없는 것은 없다. K리그는 이 대전제를 다시 한 번 어겼다. 경남의 퇴출을 바랐던 이들이 과격한 게 아니다.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누구나 그 사실을 안다.

"그래도 승부조작은 아니다"라며 안도하는 이들이 있다. 법적으로는 맞다. 이들이 돈을 받은 뒤 판정한 경기에서 경남의 승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지검에서 관련자들을 국민체육진흥법으로 처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게 더 끔찍한 일 아닌가? 조사를 받는 이들 중 말문을 연 이들은 입을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돈은 받았지만 판정편의를 봐주지는 않았다'고.

관행이었다는 변명이다. 아렌트가 말한 '평범'과 '보통'이 바로 이것이다. 지난해 지휘봉을 잡은 한 젊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것(관행)을 안 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특별히 도덕적으로 문제가 심각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사실 코치가 된 이후에 처음으로 배우는 게 그런 거다. 관행. 그게 팔자를 고칠 정도로 큰돈이 아니거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무감각해지는 거다."

권력이 있는 이들이 행한 몇 번의 커다란 비행이 K리그를 어렵게 만든 게 아니다. '이건 다른 사람도 다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관행들이 쌓여 리그 구조를 무너뜨리고 있다. 학원 축구에 답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의 논리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미 수많은 관행이 있는 학원 축구보다는 상대적으로 관행이 적은 클럽 시스템이 낫다는 것이다. 옛날 선수들 인터뷰를 찾아보라. '원래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친구들이랑 같이 그 학교로 가게 됐다'는 내용이 많다. 오래된 관례로 속된말로 '딸려간다' 혹은 '끼워 팔기'라고 한다고. 이게 바로 입학비리다.

심판매수 이외에도 시즌 중 대표이사가 감독의 선수기용 권한에 영향을 미친 경남도 마찬가지다. 경남 박치근 대표이사는 지난 10월 외국인 선수 스토야노비치가 9골을 넣자 박성화 전 경남 감독에게 문자를 보낸다. 10골을 넣으면 추가수당을 줘야 하고 "구단사정상 큰 부담이 됩니다. 현명한 선수기용 부탁 드립니다"라고 "이제 승패는 의미가 없습니다"라는 이유였다. 박 대표의 월권행위는 과연 경남만의 문제였을까?

시도민구단에서는 아주 같은 일은 아니지만 이런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선거 결과에 따라 대표이사를 비롯해 감독까지 달라지는 게 시도민구단의 관례다. 구단의 중립성을 상대적으로 잘 보장해주는 지자체도 있지만, 축구단을 논공행상의 도구로 이용하는 지자체도 많다. 많은 이들이 예상하는 일임에도 흐름이 바뀌지 않는 이유가 있다. "다들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굳어진 관례는 행동하는 주체를 용감하게 만든다. 용감한 이들이 늘어나면 연맹이 처벌하기도 어렵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영입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이용수 기술위원장과 온라인상으로 바른 말을 아끼지 않는 이영표 KBS해설위원, 거대한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표창원 소장 그리고 다른 구성원들에게 기대를 건다. '우리가 이렇게 거대한 비리 밝혀냈다'라는 발표보다 '평범하지만 악한' 수많은 관례를 걷어 내주길 바란다. 성과를 바란다면 이마저 보여주기에 그칠 수 있다.

K리그와 한국축구를 어지럽히는 관례에 과감히 레드카드를 꺼내 들어주시길 바란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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