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신용진과 히메네스

김세영 기자 입력 2015. 12. 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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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51세의 신용진은 올해 정규 투어와 챔피언스 투어를 동시에 뛰었다. 그는 "알아주는 이 없지만 자신을 시험한 도전"이었다고 했다. 사진=한석규 객원기자(JNA골프)

신용진과 미겔 앙헬 히메네스. 얼핏 보면 둘 사이에는 특별한 공통점이 없다. 그런데 닮았다. 둘은 1964년생이다. 만 51세다. 프로 골퍼에게 50세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만 50세부터 챔피언스 투어에 뛸 자격이 주어진다. 좋게 말해 자격이지 사실은 본격적으로 '꼰대' 취급 받는 나이다. 직장인으로 따지자면 정년퇴직 연령이나 다름없다. 요즘 같은 세상엔 그 때까지 버티다 은퇴하는 것만도 행운이다.

신용진과 히메네스는 정년을 1년 넘겼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신용진은 더구나 올해 정규 투어와 챔피언스 투어를 동시에 뛰었다. 대충 참가한 게 아니라 한 대회도 거르지 않았다. 국내 챔피언스 투어는 이틀 일정으로 열리는데 대부분 화~수요일에 치러진다. 정규 투어 대회는 목요일 개막해 일요일까지 나흘간 열린다. 신용진은 2개 투어 대회가 같은 주에 열릴 때는 수요일까지 챔피언스 투어 대회를 마친 후 곧바로 이동해 다음 날부터 다시 4라운드 일정의 정규 투어를 뛰어야 했다.

히메네스는 2015 시즌 유러피언(EPGA) 투어에서 22개 대회에 참가했다. 여기에 챔피언스 투어에도 6차례 출전했다. 그러면서 상금랭킹 30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50세 133일의 나이에 스페인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EPGA 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이다. EPGA 투어 통산 21승을 거둔 그가 자국의 내셔널 타이틀을 차지한 것도 지난해가 처음이다.

신용진도 올해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에 근접했지만 실패했다. 지난 6월 바이네르 오픈에서였다. 그는 3라운드에서 공동 2위에 올랐다. 하지만 최종일 체력적인 부담과 그에 따른 집중력 저하로 공동 20위로 밀렸다. 신용진은 "경기 초반에 잘 하면 진짜 우승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며 "그런데 7번홀에서 보기를 범해 1타를 잃은 뒤, 파3 8번 홀에서는 티샷을 아웃오브바운스(OB) 구역으로 보내면서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신용진은 그래도 상금랭킹 52위로 시즌을 마쳐 5년 만에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가지 않고 시드를 유지했다. 그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성적 부진으로 매년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거쳐 이듬해 시드를 땄다. 보통의 경우 그 정도 나이에 성적이 나지 않으면 대부분 은퇴를 선택하지만 신용진은 뚝심으로 버틴 거다.

신용진과 히메네스는 둘 다 다혈질이다. 신용진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10년 전인 2005년 한국오픈 2라운드 때다. 당시 신용진은 경기 후 실격을 당했다. 스코어카드 오기였다. 신용진의 마커였던 외국인 선수가 마지막 홀 보기를 파로 잘못 적어냈던 것이다. 마지막 홀에서 보기를 범해 화가 난 신용진은 스코어카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서명해 제출한 게 화근이었다. 스코어카드 제출 약 15분 후 마커가 "신용진의 스코어가 잘못된 것 같다"며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신용진은 실격 처리됐다.

신용진은 외국인 마커의 고의성을 의심했다. 마커가 스코어카드 제출 뒤 접수처 바로 앞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신용진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올려 그대로 칠 기세로 달려들었다. 다행히 주위에 있던 관계자들이 그를 말려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40대의 신용진은 그랬다.

히메네스는 올해 5월 월드골프챔피언십(WGC) 시리즈 캐딜락 매치플레이 3라운드에서 키건 브래들리와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브래들리의 드롭을 상황을 두고 설왕설래하던 중 브래들리의 캐디가 끼어들자 "닥쳐"(shut up)라고 했다. 그러자 브래들리가 "내 캐디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라"며 맞섰고, 둘은 코를 맞대고 언쟁을 벌였다.

▲ 미겔 앙헹 히메네스는 코스에서 여전히 하바나 시가를 태우며, 페라리로 드라이브를 즐긴다. 때론 앨버트 아인슈타인처럼 혀를 장난스럽게 내밀기도 한다. 사진=핑골프 제공

신용진과 히메네스는 어린 시절 정통으로 골프를 배운 건 아니다. 히메네스는 골프장 캐디로 일하다 세베 바예스테로스나 샌디 라일 등의 플레이를 본 뒤 본격적으로 골프 선수의 길로 접어들기로 마음을 먹었고, 1982년 프로로 전향을 했다.

신용진은 히메네스가 프로로 전향했던 1982년 골프에 입문했다. 김해공군비행장 내 골프장 코스 관리병으로 근무한 게 인연이 됐다. 당시 고참이던 최병석 프로에게서 사사했다. 올해까지 28년째 시드를 유지한 신용진은 올해 정규 투어와 챔피언스 투어를 동시에 뛴 것에 대해 "스스로에 대한 시험"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누구한테 알아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알아주는 이도 없어요. 그냥 저를 시험하고 싶었던 거죠. 결국 해냈어요. 정말 저한테 기쁘고, 스스로 자랑스러웠죠. 그거면 된 거 아니에요? 내년에도 올해처럼 뛰려고요. 아직 그럴 힘이 있으니까요."

꽁지머리로 멋을 부린 히메네스도 여전히 투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하바나 시가를 태우고, 붉은색 페라리로 드라이브를 즐긴다. 때론 앨버트 아인슈타인처럼 사진기자들 앞에서 혀룰 쭉 내미는 장난도 즐긴다.

신용진과 히메네스. 생물학적 나이를 뛰어넘는 이들의 왕성한 활동에는 '열정'이라는 에너지가 밑바탕이 있는 듯하다. '인생 100세' 시대에 필요한 자세이기도 하다. 그럼 난? 우선 뱃살부터 좀 빼자.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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