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S담쓰談]영화 대종상과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조회수 2015. 12. 9. 12: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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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골든글러브 영예의 주인공들이 가려졌다. 각 포지션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선정돼 기쁨을 누렸다. 10명 수상자들의 사연도 각양각색, 눈물과 웃음이 엇갈렸다.

데뷔 12년 만의 첫 황금장갑을 낀 외야수 유한준(케이티)은 감격의 소감을 밝혔고, 유격수 김재호(두산)는 피앙세에 대한 프러포즈를 곁들여 감동을 더했다. 국민타자 이승엽(삼성)은 벌써 10번째 수상, 역대 최다 기록을 세우며 대한민국 40대들에게 긍지를 심어줬다.

NC 3루수 박석민은 수상 소감을 밝히다 전 소속팀 삼성을 떠올리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올해까지 12년 동안 몸 담으며 4년 최대 96억 원 FA(자유계약선수) 대박을 터뜨릴 수 있게 해준 친정팀에 대한 고마움에 울컥했다.

<'앗, 누가 없네?' 2015 프로야구를 빛낸 골든글러브 수상자들이 8일 시상시 뒤 기념 촬영한 모습. 외국 선수들은 참석하지 못했다.(사진=삼성 라이온즈)>

이런저런 애환이 담긴 수상자들의 면면. 다만 직접 그 영광을 누리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바로 외국 선수 수상자들이다. 1루수 에릭 테임즈(NC), 투수 에릭 해커(NC), 2루수 야마이코 나바로(삼성)다.

이들은 시즌을 마친 뒤 고국으로 건너가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야구 때문에 식구들과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을 이제야 보내고 있다. 지난달 24일 정규리그 MVP 시상식까지는 참석해 수상했던 테임즈도 1년의 마지막 12월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보름 뒤 열리는 골든글러브까지는 너무 길어 MVP 시상식 다음 날 곧바로 가족의 품으로 후련하게 떠났다.

각 팀 선수단의 일원이 대신 수상했다. 테임즈는 올 시즌 숱하게 공을 주고받았던 2루수 박민우가, 해커는 한문연 코치가 황금장갑을 안았다. 나바로의 골든글러브는 현역 시절 내야수로 활약했던 김용국 삼성 코치가 받았다.

특히 김 코치의 수상 소감은 이날의 압권이었다. 짧게 대리수상 소감을 밝힌 NC의 2인과 달리 김 코치는 나바로 본인이 왔어도 주지 못했을 강렬한 멘트를 남겼다. 김 코치는 "선수 생활 11년 동안 후보만 오르다 대리수상을 하니 좀 거시기하다"는 본인의 소감과 함께 "5일 꿈에서 나바로를 봤는데 수상할 것 같다고 하니 '기자 등 관계자들과 류중일 감독님, 코칭스태프에게 감사하다'고 하더라"며 나바로의 '몽중 소감'까지 전해 폭소를 자아냈다. 대리수상이 주는 독특한 풍경이자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골글 최고 스타?' 김용국 삼성 코치가 8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나바로를 대신해 수상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는 모습.(사진=삼성 라이온즈)>

사실 그동안 KBO 리그 시상식에서 외국 선수는 외면을 받은 면이 없지 않았다. 리그 출범 이후 17시즌 만에 합류하게 된 이방인들에게 표심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유권자들의 표가 자국 선수들에게 몰리기 마련이라 외국 선수들은 투표로 이뤄지는 수상 경쟁에서 '쏠림 현상'과도 싸워야 했다.

무엇보다 외국 선수 제도가 도입된 첫 해인 1998년부터 이른바 애국, 혹은 쇄국 투표가 논란이 됐다. 그해 최고의 선수는 OB(현 두산)의 '흑곰' 타이론 우즈(은퇴)였다. 우즈는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당시 한 시즌 최다 42홈런을 날렸다. 1992년 당시 빙그레(현 한화) 장종훈(현 롯데 코치)의 41홈런을 넘은 신기록이었다. 타점도 103개로 1위, 차원이 다른 괴력을 과시했다.

이런 우즈의 엄청난 충격은 쇄국의 굴레도 날렸다. 그해 정규리그 MVP 투표에서 우즈는 당시 LG 투수 김용수(은퇴)와 결선까지 가는 접전 끝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차 투표에서 26-24로 앞선 우즈는 결선에서 29-21로 앞서 사상 첫 외국 선수 MVP에 올랐다.

하지만 골든글러브는 달랐다. 1루수 부문에서 우즈는 황금장갑을 이승엽에게 내줘야 했다. 당시 투표에서 우즈는 99표에 그쳐 132표의 지지를 받은 이승엽에 뒤졌다. 당시 이승엽도 38홈런과 102타점을 올렸지만 우즈에는 살짝 못 미쳤다. 그러나 표심은 이승엽에게로 향했다.

<지난 1998년 정규리그 MVP에 올라 수상한 타이론 우즈의 모습.(자료사진=두산 베어스)>

KBO가 주관하는 정규리그 MVP 및 신인왕과 골든글러브 투표는 유권자 층이 조금 다르다. 전자는 KBO 출입 기자단만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후자는 기자단을 포함해 방송사 PD와 해설자, 아나운서 등 관계자들까지 나선다. 표심이 조금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KBO 관계자는 당시에 대해 "선정 기준이 다르다"면서 "MVP는 성적만 두고 뽑지만 골든글러브는 공격, 수비, 인지도 등 세 가지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MVP와 달리 골든글러브 시상은 12월이라 외국 선수들이 고국으로 가고 없었다"면서 "이 부분도 투표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우즈 역시 10월 20일 열린 MVP 시상식 때는 직접 수상했으나 골든글러브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사실 이 부분은 올해 제 52회 대종상영화제를 떠올리게 한다. 올해 대종상영화제는 '대리수상 불가' 논란으로 뜨거웠다. 암암리에 묵인되던 시상식 불참자 수상 불가 방침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녀 주연상을 받은 황정민(국제시장), 전지현(암살) 등 배우와 감독들이 대거 시상식에 불참하면서 한때 최고 권위를 지녔던 대종상영화제의 위상이 흔들렸다.

물론 KBO 리그 시상식과 영화인들조차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대종상영화제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상식에 참석하기 어려운 외국 선수들이 골든글러브에서 적잖게 소외됐던 것은 사실이다. 또 수상자들이 직접 나와 이승엽을 비롯해 박석민, 김재호, 유한준 등처럼 생생한 소감을 밝히면 시상식이 살지만 대리수상을 하게 되면 다소 멋쩍고 김이 새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nc박민우가 8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테임즈를 대신해 수상한 뒤 소감을 밝히는 모습.(사진=NC 다이노스)>

그래선지 외국 선수들은 빼어난 성적에도 그동안 골든글러브 명단에는 듬성듬성했다.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17년 동안 골든글러브 수상자 170명 중에 외국 선수는 11명뿐이었다. 물론 각 팀에 2~3명(지난해와 올해 신생팀은 4명)밖에 없었던 외국 선수의 수상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개인 성적과 팀 전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적었다는 인상을 준다.

우즈 논란 이듬해인 1999년 펠릭스 호세(당시 롯데)와 로마이어(당시 한화)가 각각 외야수, 지명타자 부문에서 수상한 게 처음이었다. 호세는 그해 홈런 5위(36개), 타점 2위(122개)의 맹활약을 펼쳤고, 로마이어는 홈런 2위(45개), 타점 6위(109개)로 한화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후 지난해까지 2005년 외야수 부문 래리 서튼(당시 현대), 제이 데이비스(당시 한화)를 빼고 외국 선수의 동시 수상은 없었다. 2000년 지명타자로 1998년의 아쉬움을 씻은 우즈 이후 대부분 한 해 1명 수상이거나 없는 해도 더러 있었다. 2009년 투수 아퀼리노 로페즈(당시 KIA) 이후에는 4년 동안 수상자가 전무했다.

그동안 수상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2년 브랜든 나이트(당시 넥센)는 다승 2위(16승4패)에 평균자책점(ERA) 1위(2.20), 최다 이닝(208⅔)에도 고배를 마셨다. 다승 1위(17승6패)에 오른 장원삼(삼성)에 7표 차로 뒤졌다. 장원삼은 토종과 삼성의 우승 프리미엄을, 나이트는 이방인과 포스트시즌 탈락의 불리함을 안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2013년 크리스 세든(당시 SK)도 다승왕(14승6패), ERA 3위(2.98), 탈삼진 3위(160개)에도 구원 1위(46개)인 넥센 마무리 손승락(현 롯데)에 밀렸다.

그러다 지난해 앤디 밴 헤켄(당시 넥센)이 5년 만의 외국 선수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2007년 황금장갑 수상자인 다니엘 리오스(당시 두산)의 22승 이후 7년 만의 20승을 달성한 공로다. 밴 헤켄은 2012년 나이트와 달리 시상식에 참석해 직접 수상의 감격을 누렸다.

<밴 헤켄이 지난해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뒤 소감을 밝히는 모습.(자료사진=박종민 기자)>

사실 최근 몇 년 동안의 외국 선수 골든글러브 논란은 1998년 우즈 때와는 성격이 다르다. 물론 나이트와 세든도 수상자로 손색이 없지만 장원삼과 손승락 역시 충분히 자격이 있는 까닭이다. 외국 선수도 아쉬움이 남겠지만 국내 선수 역시 떳떳한 수상으로 볼 수 있다. 골든글러브 투표는 12월 즈음에 이뤄지기 때문에 개인뿐 아니라 팀 성적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올해 포수 강민호(롯데), 유격수 김하성(넥센)이 밀린 이유기도 하다.

적어도 올해 대종상영화제와는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올해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올해는 최다 외국 선수 수상자를 배출했다. 3명이 동시에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넥센 4번타자로 사상 첫 2년 연속 50홈런을 때린 박병호(미네소타)가 40홈런-40도루를 연 테임즈에 밀린 게 단적인 사례다. 둘은 지난 1998년 이승엽-우즈를 떠올리게 할 만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관심이 쏠렸지만 17년 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솔직히 유권자인 입장에서 KBO 리그에 오랫동안 남아 팬들을 위해 플레이할 수 있는 선수에게 마음이 가는 게 사실이다. 돈이 곧 프로인 만큼 더 나은 조건과 대우를 위해 리그를 떠나는 외국 선수가 대부분이다. 메이저리그나 일본 무대를 위해 단순히 거쳐가는 과정으로 KBO 리그를 여기는 선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우즈를 비롯해 리오스 등 MVP는 물론 이방인 골든글러브 수상자들의 일본 무대 진출은 공식처럼 굳어졌다. 최근에도 밴 헤켄을 비롯해 비록 수상자는 아니나 릭 밴덴헐크 등이 일본으로 옮겨갔다. 한 시즌, 아니 10년 가까이, 어쩌면 선수 생활 전부를 쏟아부을 국내 선수들을 빼고 외국 선수들을 뽑는 것도 역설적이다. 자국 리그의 정체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야구뿐만이 아니라 축구, 농구, 배구 등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한국에서 계속 뛰어줘' 지난달 MVP 시상식에서 영광을 안은 NC 테임즈의 모습. 꽃관은 박병호가 씌워준 것이다.(자료사진=윤성호 기자)>

다만 외국 선수도 테임즈나 해커, 특히 더스틴 니퍼트(두산)처럼 충성심이 높은 사례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 선수들의 장기 계약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KBO도 현재 윈터 미팅에서 FA 제도와 함께 외국 선수 부분을 논의 중이다. 국내 팬들도 토종 못지 않게 외국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마음 속 애국, 혹은 쇄국 등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승엽은 1998년 우즈에 밀린 이후 절치부심 1999년 당시 한 시즌 최다인 54홈런을 때려냈다. 이후 이승엽은 우즈에 엄청난 충격을 입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외국 선수가 준 자극이 아니었다면 국민 타자 이승엽이 탄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또 이방인들의 등장으로 국내 선수들도 웨이트 훈련 등을 본격적으로 시작, 근육과 힘을 키웠고 이는 쿠바, 미국 등과도 뒤지지 않는 한국 야구의 파워로 연결됐다.

결국 외국 선수들과 끊임없는 경쟁과 절차탁마가 KBO 리그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박병호는 MVP 시상식에서 테임즈에 대해 "통역을 통해 본받을 점을 물어봤다"고도 했다. 이런 점에서 이제 외국 선수들 역시 시상식에서 소외되는 일은 점점 없어져야 할 부분이다. 또 그런 점에서 올해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여러 모로 의미가 있다.

글=CBS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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