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FA 광풍? 개인사업자 구로다 씨의 경우

조회수 2015. 12. 7. 08: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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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쿄 시내 한 호텔에서는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마쓰바라 토루라는 인물을 기리는 자리였다. 그는 일본 프로야구 선수회 사무국장을 15년간이나 역임하며 여러가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올해 9월 지병(방광암)을 이기지 못하고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말로는 추모회, 일본 사람들은 시노부카이(偲ぶ会)라고 부르는 이 모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새 감독으로 취임한 다카하시 요시노부 등 야구계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보도진의 관심을 받았던 인물은 구로다 히로키(40)였다.

별 볼 일 없는 변방 구단의 늙다리 투수가 주목받는 이유는 하나다. 꼭 물어봐야 할 게 있는 데 도대체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마치 외국인 선수처럼 '휙' 사라졌다. 처와 자식이 있는 LA 베벌리힐스로 가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귀국해 공개된 자리에 모습을 나타냈다.기자들은 벼르고 별렀다. '오늘은 기어이 한 마디를 들으리라.' 1시간 넘는 기다림 끝에 타이밍이 됐다. 모임이 끝나자 돌아가던 그는 취재진에게 포위했다. 기자들은 곧바로 직구를 날렸다. "할거요? 말거요?"

의리의 컴백 때 가려졌던 팩트 하나

다들 아시다시피 그는 작년 이맘 때 메이저리그 생활을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양키스를 비롯한 몇 개 팀에서 1,500만 달러가 넘는 오퍼를 넣었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1/4도 안되는 대우(4억엔)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희대의 의리남'으로 불리며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과 미국의 많은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던 사건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 당시 한가지 부각되지 않았던 팩트가 있다. 그의 계약이 달랑 1년짜리였다는 점이다.

적어도 그의 위치라면, 그리고 그 상황이라면. 2~3년간 보장받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 FA였다. 지극히 당연하고, 너무나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의 계약서는 2015년 11월까지만 유효하다. 이후의 얘기는 한 줄도 없다.

그래서 일본 기자들이 목을 빼고 기다린 것이다. 게다가 당사자는 시즌 끝날 무렵 묘한 얘기도 남겼다. "마지막에 지친다는 걸 느꼈다"라고. 보통하는 엄살인가? 아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귀 담아 들어야 했다. 워낙 유별난 캐릭터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물은 것이다. "할거요? 말거요?"

여기에 대한 그의 대답은 "아직 더 고민해봐야겠다"였다. 그러면서 철학적인 코멘트를 덧붙였다. "몸과 정신과 마음 중에서 마음이 중요하다. 결국 몸을 움직이는 것도 마음 아닌가. 올해 같은 모티베이션(동기 부여)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선뜻 대답하는 게 두렵다." 올해 성적이 시원치 않았냐고? 천만에. 11승 8패, 평균자책점 2.55였다. 잔부상으로 로테이션을 두어번 걸렀을 뿐, 26경기나 책임졌다. 구단도, 팬들도 애가 탄다. 그가 딴 생각을 할까봐서다.

시장 논리를 거부하는 개인사업자

그와 같은 직종의 개인사업자들에게 이 맘 때는 중요하다. 가장 본질적인 이윤 창출을 위한 활동을 해야 할 시기라서다. 더 좋은 조건과, 더 안정된 직장을 선택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계절이다.

그런데 이 개인사업자는 유별나다. 도대체 경제관념이라는 게 있는 지 의심스럽다. 처음 FA의 권리를 얻은 2006년부터 그랬다. 가난하고 꼴찌만 하는 팀의 에이스가 지긋지긋하다며 부자 구단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 해 마지막 등판 때 팬들이 일제히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눈물로 호소했다. 결국 그는 FA를 포기했다. "내가 다른 유니폼을 입고 이곳에서 카프를 상대로 전력투구 한다면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한 짓이다." 유명한 '평생 히로시마' 선언이다.

다저스로 갈 때도 그랬다. 구단에서는 4년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3년만 하자고 했다. "설레는 마음 따위는 없다.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이다. 이런 괴로운 행동은 짧을수록 좋다. 그래야 내 자신이 더 열심히 할 것이다." 그마저도 마지막 다년 계약이다. 이후로 5년간은 늘 1년짜리 계약서만 썼다. 물론 본인이 원해서다.

다년 계약을 거부하는 소신

일본에는 명구회(名球会)라는 모임이 있다. 명예의 전당 비슷한 곳이다. 선수라면 누구나 평생의 소원으로 꿈꾸는 곳이다. 당연히 입회 조건이 까다롭다. 선발 투수라면 200승을 넘겨야 한다. (미일 통산기록도 가능.)

이 독특한 개인사업자는 이제까지 193승을 올렸다. 7승만 보태면 후대에 남을 명예를 얻게 된다. 그런데도 뭐가 못마땅한 지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은퇴할 지 모른다는 추측에도 함구하고 있다.

매년 이 맘 때. 어지럽고, 복잡하고, 광풍처럼 몰아치는 FA 시장을 보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그가 다년 계약을 마다할 때마다 되새기던 소신이다."더 이상 내년을 위해서 할 나이는 아니다. 늘 완벽하게 태우고 싶다. 다년 계약을 하면 아무래도 2년째, 3년째가 그려지게 마련이다. 여력을 남기며 시즌을 치르고 싶지 않다. 팀에 리스크를 안기지 않고, 매년 결과로 내 자신의 가치를 어필해야 한다. (주변의) 기대에 대한 공포, 로테이션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은 내 스스로 져야 할 몫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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