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이보미는 왜 느린가

김세영 기자 2015. 12. 3. 10: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이보미는 동갑내기들에 비해 항상 한 스텝 늦었지만 결국 성공 신화를 썼다. 사진=르꼬끄골프 제공

최근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은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커다란 획을 그은 해다. 골프계에서도 1988년은 특별하다. 올림픽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88년 용띠' 골퍼 중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이 유독 많다. 박인비를 비롯해, 신지애, 김하늘, 김인경, 그리고 이보미 등이 1988년생 동갑내기다.

이들 중 박인비는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명예의 전당 입성 포인트를 모두 채웠다. 이보미는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시즌 7승을 거두며 상금왕을 차지했다. 특히 일본 남녀프로골프 통틀어 한 시즌 최다 상금 기록을 갈아치웠다. 일본 TV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각종 골프 잡지 표지 모델로도 등장하는 등 인기도 뜨겁다.

이보미의 그간 행보를 보면 동갑내기들에 비해 언제나 한 스텝이 늦다. '늦게 피는 꽃'이다. 88년 동갑내기 중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건 신지애였다. 그는 18세이던 2006년부터 3년간 내리 상금왕을 차지하며 국내 무대를 평정했다. 박인비는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고, 김인경도 그해 LPGA 투어 첫 우승을 거뒀다. 김하늘 역시 2008년 KLPGA 투어에서 3승을 거뒀다.

동갑내기들이 두각을 나타내던 시기, 이보미는 2008년까지 국내 2부 투어에서 뛰고 있었다. 그는 2009년에서야 정규 투어에 합류했다. 2010년 비로소 시즌 3승을 거두며 상금왕에 올랐다. 2011년에는 일본에 진출했지만 상금랭킹 40위에 그쳤다. 하지만 2012년부터 승수를 쌓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상금 2위, 그리고 올해 드디어 일본 무대를 평정했다.

▲ 2013년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당시 이보미. 그는 국내에 있을 때부터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아 '스마일퀸'으로 불렸다. 일본에서도 그 미소 덕분에 인기가 높다. 사진=박태성 기자

동갑내기들에 비해 항상 느렸던 이보미. 그래서 동갑내기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이보미. 하지만 기어코 성공 신화를 차근차근 쓰고 있는 이보미. 바둑으로 치면 발 빠른 포석으로 초반 실리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두터움을 바탕으로 중반 이후에 승부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왜 항상 한 스텝 느린 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아직 일본에 머물고 있는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이보미는 강원도 인제 출신이다. 국방의 의무를 짊어진 대한민국 남자들 사이에선 '인제 가면 언제 오나'라 불리는 촌구석이다. 그는 딸 넷 중 둘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를 따라 태권도장에 간 게 골프에 접어든 계기가 됐다. 딸이 개구쟁이 남학생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했던 아버지가 거친 태권도의 대안으로 '조신한' 골프를 권했던 거다.

"인제가 안 그래도 촌이잖아요. 지금은 고향에 연습장이 3개가 있다고 하는데 제가 배울 때만 하더라도 딱 한 곳 있었어요. 시설이 낡은 건 물론, 거리도 짧은 데다 연습장엔 로스트 볼만 있었죠. 라운드요? 거의 못했다고 봐야죠. 연습장에서 볼만 치다가 어쩌다 한 번 라운드라도 나가려면 미시령 고개 넘어 속초까지 버스 타고 가야했거든요. 전국 대회 나갈 때는 5시간 이상 걸렸고요. 대회가 바로 연습이었던 셈이죠. 그 당시 아빠와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런 열악한 환경 탓에 그의 골프 발전 속도는 또래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살림에도 불구하고 딸의 장래를 위해 결심했다. 이보미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6년 어머니와 그를 수원으로 이사시켰다.

"친구들이 저보다 실력이 뛰어났죠.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노력하면 저도 성공할 거라고 믿었어요.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기사는 별로 없는데, 저도 새벽 5시부터 해 질 때까지 볼만 쳤답니다(하하). 저녁 밥 먹고 또 연습하고요.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는 거죠."

▲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이보미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사진=르꼬끄골프 제공

올해 일본에서 이보미의 인기는 열광적이다. '보미짱'으로 불리는 그는 아시히신문의 '한국하면 떠오르는 인물' 설문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일본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고, 각종 골프 잡지에 표지 모델로도 실렸다. 골프 실력도 뛰어난 데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 덕분이다.

"처음에는 언어 장벽 때문에 적응이 힘들었어요. 인터뷰 때면 겁도 먹고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통역에만 의존할 수는 없잖아요. 아예 통역한테서 모범답안을 받은 다음 달달 외웠죠. 자꾸 하다 보니 일본어도 익숙해지고, 아직도 서툴지만 웬만하면 자국어로 인터뷰를 하니까 언론이나 팬들도 좋아해 준 것 같아요."

이보미는 올 시즌 성공의 비결 중 하나로 퍼팅 능력 향상을 꼽았다. 그는 "예전에는 짧은 퍼트도 종종 놓치곤 했다. 어드레스 자세 때 잡념이 생기면서 망설이는 게 원인이었다"면서 "올해는 한 번 라인을 보면 곧바로 자세를 잡고 스트로크를 한다. 퍼팅 동작에서 불과 2~3초 변화를 줬을 뿐이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고 했다.

남들에 비해 조금 뒤처졌지만 굴하지 않고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가끔은 어린 골프선수들에게서 인생에 대한 답을 찾는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Copyright © 마니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