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어 라운지] 코비와 김주성의 차이, 스토리 없는 KBL

조회수 2015. 12. 3. 10:02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KBL에서 영웅이 나올 수 없는 이유

NBA는 재미있는데 왜 KBL은 재미가 없을까. 가장 큰 차이는 경기력일 것이다. 세계최고 선수들이 모두 모인 NBA는 신기의 경연장이다. 스테판 커리의 미친 3점슛, 러셀 웨스트브룩의 화끈한 덩크슛은 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하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NBA는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스토리라인이 풍부하다.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코비 브라이언트(37, LA 레이커스)는 2일 고향 필라델피아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2tsY_Edw-9c

필라델피아 구단은 코비의 스승인 로워 메리언 고교의 도우너 감독을 초대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필라델피아는 마치 홈코트의 영웅처럼 멋있게 코비를 소개했다. 또 코비의 고교시절과 NBA 영상이 담긴 동영상이 상영됐다. 필라델피아의 대스타 줄리어스 어빙과 도우너 감독이 코비에게 로워 메리언 고교의 24번 유니폼을 액자에 담아 선물했다. 중계진은 "마치 앨런 아이버슨이 은퇴하는 것 같다. 코비의 은퇴는 프렌차이즈를 넘어 농구팬들에게 엄청난 의미"라고 소개했다.

필라델피아는 LA 레이커스를 103-91로 꺾고 19경기 만에 시즌 첫 승을 달성했다. 경기가 끝나자 필라델피아 팬들이 "코비"를 연호했다. 비록 자신들의 프렌차이즈 스타는 아니지만, 농구의 묘미를 알게 해 준 대스타에 대한 존경과 예우였다. 필라델피아 팬들에게 코비는 곱게 보일 수만은 없는 선수다. 2001년 파이널에서 아이버슨의 식서스를 물리치고 우승한 팀이 바로 코비와 샤킬 오닐의 레이커스였다. 그래서 이날의 기념식은 더욱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pojCasv3Kjw

▲ KBL 통산득점 3위 김주성, 기념식은 없었다

KBL의 현실은 어떨까. 김주성은 2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 개최된 모비스전에서 정규리그 통산득점 3위로 올라섰다. 1쿼터 3점슛으로 포문을 연 김주성은 2쿼터 6분 26초를 남기고 골밑슛을 넣었다. 문경은 SK 감독이 기록했던 9347점을 넘어 득점 3위로 올라서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김주성의 기록달성에도 불구, 경기는 그대로 진행됐다. 장내아나운서는 '김주성'의 이름을 연호했을 뿐, 기록달성 사실을 즉각 관중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역사적인 2득점 순간은 그대로 지나갔다. 정성호에게 3점슛을 얻어맞은 김영만 감독은 2쿼터 종료 5분 58초를 남기고 작전시간을 요청했다. 김주성을 축하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 24-36으로 뒤진 경기를 뒤집기 위한 작전지시를 위해서였다. 역사적인 순간보다 소속팀의 승패가 더 중요했다.

김주성은 하프타임에 중계방송사 리포터와 기록달성을 기념하는 인터뷰를 가졌다. 김주성은 "솔직히 오늘 아침에 (기록달성) 이야기를 들었다.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몸 관리를 잘해서 차근차근 만 득점까지 하겠다. 문경은 감독님도 열심히 해서 그 점수까지 올라갔다. 그 목표를 넘기 위해 열심히 했다. (서)장훈이(1만 3231점, 1위) 형과 추승균(1만 19점) 감독님처럼 만 득점까지 올라가겠다. 후배들이 그 기록을 넘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올라가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동부는 막판에 터진 웬델 맥키네스의 결승 덩크슛으로 77-75로 이겼다. 10점을 넣은 김주성이 없었다면 이길 수 없었던 경기였다.

▲ 조던을 넘어선 코비, 원정 팬들의 기립박수

똑같은 장면이 NBA에도 있었다. 2014년 12월 15일 LA 레이커스는 미네소타 원정에서 팀버울브스를 100-94로 이겼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2쿼터 종료 5분 24초를 남기고 자유투 2구를 모두 넣었다. 마이클 조던의 통산 3만 2292점을 넘어 코비가 역대 3위에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최근 암으로 작고한 플립 손더스 전 미네소타 감독은 즉각 작전시간을 요청했다. 코비는 동료는 물론 미네소타 선수들과도 진한 포옹을 나눴다. 대부분이 어렸을 때 코비를 보면서 NBA 선수의 꿈을 키운 후배들이었다. 미네소타 관중들은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은 잠시 잊고, 코비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영웅을 예우할 줄 아는 수준 높은 관전의식이었다. 글렌 테일러 미네소타 구단주는 직접 코트에 내려와 기록달성 공을 코비에게 선물했다. 코비는 지금은 고인이 된 손더스 감독과 관중들에게 화답했다.

경기가 중단된 시간은 1분 30초에 불과했다. 특별히 돈을 들여 거창한 행사를 거행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영웅을 만들고 대우할 줄 아는 NBA의 문화는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X6Rz0TSprFc

다음 날 USA TODAY, 뉴욕 타임즈 등 미국의 유력 일간지 1면에 모두 코비의 기록달성 소식이 실렸다. 스포츠뉴스가 전국단위 종합지 1면을 장식하는 것은 '스포츠천국' 미국에서도 흔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언론에서도 코비의 기록에 큰 의미를 부여한 셈이다.

코비는 "아직도 현역으로 뛰면서 이 자리에 서게 돼 영광이다. 이렇게 오래 뛸 수 있어 감사하다. 내 선수경력은 많이 남지 않았다.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마이클 조던은 "코비가 쌓은 업적을 축하한다. 그는 명백히 농구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노력을 겸비한 훌륭한 선수다. 그의 경기가 매년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즐겼다. 다음에는 어떤 것을 해낼지 무척 기대가 된다"며 후배를 격려했다.

선수생활 초반에 코비는 경기 중 혀를 내미는 조던의 버릇을 일부러 따라했다. 그만큼 '농구 황제'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고 싶어 했다. 코비는 "내가 조던에게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는 조던도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전설들에게 배웠지만, 특히 조던에게 많이 배웠다"고 털어놨다.

최근 코비가 은퇴를 선언하자 케빈 듀런트는 "코비는 나의 아이돌이었다. 코비는 우리 시대의 마이클 조던이었다"고 고백했다. 코비의 플레이는 후배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 전자랜드가 준 감동, 원주에는 없었다

지난 1월 6일 김주성은 인천 원정경기서 전자랜드를 상대로 정규리그 통산 리바운드 2위에 올랐다. 김주성은 1쿼터 종료 1분 8초를 남기고 공격리바운드를 잡아 조니 맥도웰의 3829개를 3위로 밀어냈다.

기록달성 후 전자랜드의 행보는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홈팀 선수도 아닌 김주성의 기록을 살뜰히 챙겼다. 기록달성 후 전자랜드 장내 아나운서는 대기록 달성사실을 관중들에게 알려 그 순간을 기념했다.

대기록 달성을 예상한 전자랜드는 동부와 협의를 해서 축하자리를 마련했다. 전자랜드는 하프타임에 유도훈 감독이 직접 나서 김주성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선사했다. 또 기록이 달성된 공을 김주성에게 선물했다. 승패를 떠나 큰 업적을 이룬 후배를 축하해준 것.

현장에서 챙겨준 축하였기에 김주성에게 더욱 의미가 컸다. 인천 팬들 역시 김주성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농구코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김주성은 "홈코트가 아닌 어웨이서 축하를 받게 됐다. 인천 팬들에게 감사드린다"며 감동한 모습이었다. 전자랜드의 동업자 정신도 빛났다. 전자랜드 모기업의 브랜드 가치 또한 동반상승했다.

사실 전자랜드는 김주성에게 기념식을 해 줄 예정이 없었다. 남의 선수의 기록을 챙겨주는 것이 자칫 '오지랖'으로 비춰질 수 있었기 때문. 기록을 챙겨주고 경기서 패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본 기자를 비롯해 몇몇 관계자들이 코비의 사례를 거론하며 전자랜드에게 조언을 했다. 결국 전자랜드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김주성을 축하해주기로 했다. 탁월한 결정이었다. 덕분에 전자랜드는 '국민구단' 이미지를 얻게 됐다.

기자는 동부 구단에도 똑같은 조언을 했다. 김주성의 기록을 그냥 넘긴 동부의 결정은 아쉽다. 전자랜드도 챙겨줬던 김주성의 대기록을 정작 안방에서 챙겨주지 않았다. 경기 전 동부 관계자는 "김주성이 1만 득점과 1천 블록슛도 앞두고 있는데, 득점 3위까지 챙기기는 그렇다. 내년에 득점 2위를 하면 또 챙겨야 하지 않는가"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구단의 입장은 매우 아쉽다. 비시즌 '불법스포츠도박', '승부조작'으로 홍역을 치른 프로농구다. 대중에게 프로농구는 항상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각인됐다. 이런 상황에서 구단은 '전설' 김주성을 예우해 대중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전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프로농구 10개 구단 중 김주성 같은 대선수를 보유한 팀은 거의 없다. 가뜩이나 이야깃거리가 모자란 프로농구다. KBL은 김주성이라는 최고의 선수를 제대로 예우하지도 않았고, '스토리텔링'의 충분한 소재로 활용하지도 못했다. KBL에서 코비 브라이언트 같은 영웅이 나올 수 없는 이유다.

OSEN 서정환 기자 jasonseo34@osen.co.kr[사진] 코비 / ⓒAFPBBNews = News1(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주성 / KBL 제공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