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박병호의 헐값계약, 그리고 코비의 편지

조회수 2015. 12. 3. 09: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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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3, 4일 전이다. 평균 연봉이 600만 달러를 넘길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포스팅 금액으로 환산해 보니 강정호의 2배가 넘을 것 같다는 논리였다. 잘하면 류현진 수준과 비슷하거나, 조금 웃돌 지 모른다고 했다.

보도의 출처는 미네소타 지역의 한 온라인 매체였다. '유력한'이라는 수식어도 붙은 곳이다. 그래 맞다. 미국은 본래 동네 신문이 최고 아닌가.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럴 거다. 생소한 미디어지만 그쪽 소식에는 정통하려니. 가까운 데서 들은 얘기니 어련하겠지. 그랬다. 다른 현지 언론 한 곳에서도 500~1,000만 정도를 예상했다.

정작 주인공은 떠나던 날 인천공항에서 "생각보다는 조금 적어요"라고 했다. 하지만 워낙 밝은 표정이었다. 별 걱정 없어보였다. 때문에 '적어요'라는 말보다 '조금'이라는 부분이 훨씬 더 크게 들렸다. 그렇게 듣고 싶어서 그랬나? '600만까지는 아닌가 보다. 한 500만 언저리인가?' 그렇게 편하게 생각했다.

실망과 비난, 좌절

그런데 아뿔사. 도대체 이게 뭔가. 뒤통수 제대로 맞은 기분이다. 아마 유아인은 이럴 때 쓰라고 그 대사를 했는 지 모른다. 정말로 어이가 없다.

각종 포털과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비난과 실망과 욕설로 가득한 댓글이 넘쳐 흘렀다. '당장 계약 깨고 돌아와라' '내년에 어디 미네소타 응원하나 봐라' '그냥 한국에 있으면 훨씬 더 받을텐데' '마지막 1분까지 버텼어야지, 뭐가 급해서 그렇게 일찍 사인했나' '뒤에 가는 선수는 어떻게 하라고' 등등.

미네소타 트윈스는 졸지에 정 떨어지는 팀이 됐고, 에이전트 앨런 네로는 골목길 검은 고양이를 보면 생각나는 존재가 됐다. FA 직전 대리인을 (스캇 보라스로) 교체했던 추신수의 과거 행적이 새삼 '신의 한 수'로 회자됐다.

허탈하다. KBO 리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조금은 달라진 줄 알았다. 류현진이, 강정호가 그만큼 터를 닦아 놨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닌가 보다. 아직도 한참 멀었나 보다. 그래서 더 우울한 지 모른다. 과연 박병호의 앞길에 진심에서 우러난 박수와 축하를 보낼 수 있을까? 고민이다.

코비의 편지 'Dear Basketball'

코비 브라이언트(37, LA 레이커스)는 NBA 최고의 스타다. 살아있는 전설이나 다름 없다. 그런 그가 며칠 전 (시즌 후) 은퇴를 알렸다. 방식이 참 독특했다. 선수들이 공유하는 블로그에 편지 형식의 시 한편을 올렸다. 제목이 'Dear Basketball'이었다. 가장 존경하던 마이클 조던의 방식을 오마주 한 것이었다. 그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다.

사랑하는 농구에게,시작은 그랬지 / 아버지의 긴 양말을 둘둘 말아 / 슛을 하면서 상상했어 / 그레이트 웨스턴 포럼(레이커스의 옛 경기장)에서 승리의 슛을 날리는 걸 / 그 순간 한 가지는 분명했어 / 내가 너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 말이야.(중략)넌 6살짜리 꼬마에게 꿈을 줬어 / 레이커스 선수가 되는 꿈 말이야 / 그래서 항상 널 사랑해. (후략)

그의 꿈은 존중돼야 할 가치다

다음스포츠에 실린 <민기자 코리언리포트>가 어제(2일) 에이전트인 앨런 네로를 인터뷰했다. 내용 중에 계약 성사 당시 박병호의 반응을 묻자 네로는 이렇게 답했다. "대단히 기뻐했고 행복해했다. 드디어 원하던 기회를 잡았다는 것에 대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어린아이처럼'이라는 대목에 문득 코비의 편지가 떠오른다. 그의 이번 시즌 연봉은 2,500만 달러다. 당연히 NBA 톱이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벌지만, 결국 그가 20년 가까이 심장과 영혼을 바쳐서 뛰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 우리의 홈런킹도 그럴 것이다. 어릴 적부터 TV에서만 보던 최고의 리그다. 얼마나 그리며, 동경했겠는가. 한동안 좌절도 겪었지만, 결국 이겨낸 것 아닌가. 그리고 드라마틱 하게 꿈을 이루게 된 것 아닌가.

물론 연봉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돈이 아닐 지 모른다. 그게 신분(출장기회)에 대한 보장이고, 안전장치일 지 모른다. 또 출신지에 대한 존중이고, 앞으로 있을 또다른 진출에 대한 전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중요하고, 실망이 컸는 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논리와 명분도 앞설 수 없는 게 있다.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꿈이다. 그건 지극히 존중돼야 하는 가치다.

코비의 편지에 이런 부분이 있다. '땀과 부상 투성이였어 / 도전이라는 말이 날 불러서가 아니야 / 그냥 네가 불러서일 뿐이야 / 널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했어 / 왜냐하면 /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건 너 때문이라서야.'

이제 박병호의 발걸음은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는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설레는 미소를 보이며 출국했다. 계약서 사인을 마치고도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우리는 그걸 존중해야 한다. 그가 택한 꿈이기 때문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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