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김] 2년 전 두산베어스가 남긴 FA 교훈

조회수 2015. 11. 27. 0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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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가 타석에 들어선다. 그리고 투수의 공을 기다린다. 투수가 와인드업하고 공을 던진다. 치기 좋아 보이는 공이 들어온다. 타자는 힘껏 그리고 자신 있게 스윙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공은 낮게 떨어진다. 결과는 헛스윙이었다. 스윙하는 순간 분명히 빠른 공 같아 보였는데 스윙을 하고 난 후 알고 보니 변화구였다. 야구 경기에서 수십 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시즌이 끝이 나고 더 이상 경기를 볼 수 없지만, 비슷한 광경은 겨울에도 볼 수 있다. 물론 야구장이 아닌 FA 협상 테이블에서 말이다.

FA 영입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 있는 장면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타자는 곧 구단이고 공은 선수이다. 투수의 공을 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각 구단은 FA 영입 또는 재계약을 놓고 많은 고민에 빠진다. 타자가 치기 좋은 공을 골라는 내는 것이 어려운 만큼 구단 관계자들에게 FA 영입은 어렵다.

2015년 KBO 리그 시즌은 두산 베어스의 우승으로 마감되었다. 그리고 이젠 내년 시즌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대부분의 선수는 마무리 훈련을 치르고 있지만, 훈련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바로 자유계약 권리를 얻은 22명의 선수다.

현재 대다수의 FA 선수들은 원소속팀과 협상을 하고 있다. 만약 소속팀과 협상이 결렬되면 오픈 FA 시장에 나오게 된다. 타 구단과 협상을 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뜨거워지면서 선수들의 몸값 또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아직 100억짜리 선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곧 나올 듯하다.

그렇다면 구단의 입장에서 FA 시장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확실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잘못된 FA 영입 하나에 팀은 암흑기에 빠질 수도 있고 반대로 선수 하나 제대로 영입하면 곧장 우승을 노려볼 수도 있다. 함정이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일단 한 가지 원칙을 세우고 시작해보자.

1. 절제력 그리고 장기적인 전략.

절제력 -

누구나 스포츠카를 타고 싶고 명품가방을 원한다. 하지만 본인의 경제력을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샀다가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 FA 시장에서도 순간적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 정든 두산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손시헌과 이종욱. 사진/ OSEN >

2013년 시즌이 끝나자 손시헌, 이종욱 그리고 최준석은 FA를 선언한다. 그리고 두산 베어스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손시헌과 이종욱은 국가대표급 선수들이었고 최준석은 두산베어스가 한국시리즈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특히 이종욱과 손시헌 구단을 대표하는 선수들이었고 타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당시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두산은 과감하게 그들의 요구에 흔들리지 않았다. 민병헌이 제대해서 돌아왔고 유격수 김재호가 대기하고 있었다. 두산엔 그들이 떠나도 확실한 대안이 있었다는 뜻이다.

베어스 팬들은 이종욱과 손시헌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구단의 결정은 확고했다. 금전적으로 무리해서 그들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3명의 FA 선수들은 결국 팀을 떠나게 된다.

NC 다이노스는 이종욱에게 50억 원 그리고 손시헌에게는 30억 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NC 구단은 규약에 따라 보상금 11억 3100만 원을 두산에 보낸다. 얼마 후 최준석 또한 친정팀인 롯데 자이언츠와 총 35억 원에 계약한다. 그리고 롯데는 규약에 따라 보상금 2억 9000만 원을 두산에게 송금한다. 두산은 가만히 앉아서 14억2100만 원을 일단 챙긴다.

당시 팬들은 큰 실망감에 빠졌지만, 두산 프런트는 장기적인 계획이 있었기에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두산의 절제력과 장기적인 전략이 동시에 발동되는 순간이었다.

장기적인 전략 -

그리고 1년 뒤인 2014년. 두산 베어스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다. 두산은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당시 FA이었던 장원준에게 84억 원을 약속하고 영입에 성공한다. 불과 1년 전 두산 프런트의 행보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각해보자. 만약 두산이 1년 전 세 명의 FA 선수를 잡았다면 장원준 영입이 가능했을까? 절대 아니다. 일단 세 명의 FA 선수 보상금으로 받았던 14억 원 중 6억4천만 원을 롯데에게 장원준 영입 보상금으로 보낸다. 이미 실탄(?)을 마련해 놓은 두산의 입장에선 큰 부담이 가는 액수가 아니었다.

< 모두를 놀라게 했던 장원준의 두산 입단! 사진/ OSEN >

장원준의 몸값도 마찬가지이다. 이종욱과 손시헌이 NC에게 개런티 받은 액수는 80억 원이었다. 그들을 잡지 않는 대신 1년 뒤 전성기에 들어서는 새로운 에이스를 영입하는 것이 바로 두산의 장기적인 전략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두산의 계획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2015년 시즌 구단이 바랐던 대로 김재호와 민병헌은 국가대표 급 선수들로 자리를 잡았고 장원준 에이스 역할을 잘 해주며 15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 감정은 사치, 이성적으로 대응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고 때론 잔인하다. 승패 즉, 결과로 평가받는 곳이다. 좋은 결과를 위해서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맞지만 결국 시즌이 끝나면 결과물은 성적이고 순위이다. FA를 평가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성적이고 팀이다. 최근 전체적인 성적이 좋다고 하여도 하락세를 조금이라도 보이는 선수라면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특히 그 선수를 대치할 수 있는 젊은 선수가 있을 때면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팬들이 잠시 이해하지 못해도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로 프런트와 감독의 역할이다.

이종욱과 손시헌은 분명히 한때 두산 베어스를 대표하는 선수들이었다. 아무리 냉정하게 접근한다고 하여도 이 두 명의 선수를 동시에 포기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두산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종욱과 손시헌은 두산이 아닌 NC가 더 절실히 필요했고, 두산은 대비책이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두산베어스는 자원을 재분배하는 과정이었고 순간적인 선택은 기회로 이어졌다.

만약 당시 두 선수와 재계약을 맺었다면 2015년 시즌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장원준의 모습은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승도 힘들지 않았을까?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FA 선수들의 원 소속 구단과 우선 협상기간은 28일이면 마감된다. 정규 시즌 개막전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겨져 있지만, 구단과 FA 선수들에게 2016년 시즌은 이미 시작되었다.

danielkimw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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