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들숨날숨] '주는 기성용'에 가려진 '받는 기성용'의 진가

조회수 2015. 11. 14. 09: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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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기본적으로 공을 '주고받는' 스포츠다. 우리 편 11명이 공을 옮겨가면서 마지막에 슈팅을 시도, 상대의 골문을 열어야 이길 수 있는 규칙을 지닌 스포츠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다. 개인이 드리블을 통해 홀로 적진을 유린한 뒤 골을 넣을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혼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고 기술이 뛰어난 선수도 원맨쇼만으로 상대 선수들을 낙엽으로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가끔 메시나 호날두가 이런 상식을 깨뜨려서 문제지만. 어쨌든 축구는 두 사람 이상이 공을 주고받으면서 풀어가는 종목이다. 따라서 패스는 축구의 기본이다.

패스가 이뤄지려면 최소 두 사람이 필요하다. 주는 사람 그리고 받는 사람이 갖춰져야 패스가 완성된다. 그런데 흔히 패스를 떠올리면 '공을 보내는 행위'에서 사고가 멈춘다. 좋은 패스는 주는 사람이 잘해서이고 패스 미스도 찬 사람이 잘못했을 때 발생하는 것이란 인식이 강하다. 잘못된 생각이다. 공을 주는 사람이 능동적 역할을 맡는 것은 맞지만 반대편에서 호흡을 맞추지 못하면 패스는 그냥 킥에 그친다. 때문에 잘 차는 것 이상으로 잘 받는 것도 선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항목이 되어야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기성용은 참 좋은 선수다.

기성용의 주는 능력은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이다. 지난 12일 열린 미얀마와의 월드컵 예선에서도 레벨이 다른 중장거리 패스를 선보였다.

기성용은 전반 18분 하프라인 아래에서 공을 잡아 전방을 향해 과감한 롱패스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의 발을 떠난 공은 그대로 미얀마 진영을 갈라 이재성 앞에 배달됐다. 선제골이 나온 과정이다. 이전까지 미얀마의 밀집수비가 완벽한 호흡으로 한국을 괴롭혔으니 당시 기성용의 롱패스는 막힌 맥을 뚫어주는 소화제 같던 한방이었다.

상대가 가드를 한껏 올리고 있어도 배후에 정확하게 떨어지는 패스가 공급되면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성용이 보여줬다. 경기 후 슈틸리케 감독은 "전반전이 끝난 뒤 선수들에게 기성용처럼 상대 뒷공간을 노리는 패스를 과감하게 시도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대부분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 패스 능력을 지닌 기성용이다. 하지만 기성용의 능력은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날 경기 후 슈틸리케 감독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꽤 중요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미얀마 같은 팀은 라인을 많이 내리기 때문에 공격수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없다"고 토로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아시아권 국가들을 만나면 자주 겪는 어려움인데, 이를 깨기 위해 슈틸리케 감독은 "일단 공간을 창출해 내야하고 두 번째로는 그쪽으로 적절한 패스를 넣어야한다"고 설명했다. 후자는 당연히 패스를 보내는 사람의 능력이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되는 '공간 창출'은 패스를 받는 이들의 몫이다. 공을 잘 받으려는 사람의 노력도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 대표팀에서 이 '받는' 역할을 가장 잘하는 선수를 꼽으라면 또 기성용이다.

축구 지도자들은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의 움직임이 진짜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결국 축구가 '주고받아'야 풀어갈 수 있는 경기인 까닭이다. 받는 사람이 패스가 완성될 수 있게끔 좋은 위치로 끊임없이 움직여줘야 틈을 만들 수 있다. 갈수록 압박이 심해지는 현대축구에서는 더더욱 중요하다. 패스로 푸는 '탈압박'의 출발은 받는 이의 위치다.

축구선수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덕목인데 '아쉽게도' 많은 선수들이 잘 갖추지 못하고 있다. 아쉽다고 표현한 것은, 이는 타고는 재능과 크게 관련이 없는 까닭이다. 물론 센스가 보다 좋은 위치를 찾아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성실하게 움직인다면 누구나 '받는 임무'를 잘 해낼 수 있다. 주는 것이 킥의 정확함을 동반해야하나 받는 것은 주로 '발품'에 따라 가치라 갈린다. 요컨대,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인데 많은 이들이 안한다.

신태용 올림픽 감독은 "대표팀에 들어올 정도의 선수라면 공을 달고 달리는 것은 누구나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이 없을 때 누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가 관건"이라는 견해를 밝힌 적 있다. 선수들이 들으라고 '받는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만큼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잘 지키는 선수가 기성용이다.

스완지의 경기든 대표팀의 A매치든 기성용의 플레이를 보면 느낄 수 있다. 동료에게 공을 주고난 뒤 공과 함께 기성용의 발도 따라 이동한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공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플레이한다. 공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을 받으려는 행동으로도 경기에 능동적으로 개입한다. 그 움직임이 팀에 얼마나 큰 영양가가 되는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미얀마전이 끝난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기성용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아주 짧게 답했다. 그는 "항상 모범적이다. 패스를 받으려는 움직임, 적극적인 수비가담 등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 주장답다"고 평가했다. 구구절절 말이 길지 않았다. 흘려들으면 별 내용 없다. 하지만 '받는 기성용'에 대한 칭찬이 들어가 있음을 주목해야한다. 주는 것 잘하는 기성용은 많은 이들이 입이 닳도록 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받는 기성용이 또 고맙다.

대표팀은 오는 17일 라오스와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있다. 2015년 마지막 A매치다. 이 경기에서도 기성용은 슈틸리케호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받는 기성용'에 주목하길 추천한다. 대표팀 에이스가 부지런함도 으뜸이다.

글= 임성일[뉴스1 스포츠부/lastuncle@daum.net]

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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