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k.column] 아치발드 리치: 축구 경기장의 아버지

2015. 11. 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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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 안필드(리버풀), 하이버리(아스널), 올드 트래퍼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화이트 하트 레인(토트넘), 스탬퍼드 브리지(첼시)의 공통점은 무얼까? 설계자가 동일인물이다.

아치발드 리치(1865~1939). 스코틀랜드 건축가인 그는 영국 축구 경기장의 아버지로 불린다. 20세기 초, 리치는 많은 축구 경기장을 그리고 세웠다. 그의 설계는 21세기 오늘날까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손흥민이 뛰는 화이트 하트 레인의 외벽도 리치의 손길이 보존된 곳 중 하나다.

영국 축구 경기장 역사가 사이먼 잉글리스가 <포포투> 독자께 아치발드 리치를 소개한다. 프리미어리그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를 얻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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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축구경기장을 떠올려보자. 혹은 가장 좋아하는 경기장이어도 좋다. 선수들이 치열하게 뛰는 경기장보다 더 뜨거워지는 곳이 있다. 관중석이다. 축구장에서 팬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혹시 그곳을 누가 설계했는지 아는가? 아니면 한 번이라도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아마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어쩌면 당연하다. 축구장은 우리 팀을 응원하며 분위기를 즐기러 간다. 축구를 보러 가는 거지 설계나 건축 구조물을 탐구하러 가지 않는다.

1939년 4월 건축설계가이자 '영국 축구경기장의 아버지'인 아치발드 리치(Archibald Leitch)가 세상을 떠났다. 74번째 생일을 이틀 전이었다. 어떤 신문에도 그의 부고 기사가 실리지 않았다. 뉴스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리치가 속해있던 '기계공학학회'에서 발행한 소식지에 간단히 적혀있었다. 리치를 단지 공장의 설계와 건축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축구경기장에 대한 언급은커녕 어떤 공장이었는지조차 세부 설명도 없었다. 스타디움 사업에 대해 꽤 알았을 텐데 말이다.

지금이 1939년 4월이라고 상상해보자. 관중들이 풋볼리그(Football League) 경기를 보기 위해 축구장에 간다. 테라스(terrace; 입석)나 좌석으로 향하고 있다. 개중 30%는 아치발드 리치의 회사가 설계한 곳에 앉게 된다. 그는 1부 리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설계자였다. 클럽 대다수가 그를 한 번씩 고용할 정도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에버턴, 블랙번, 토트넘 홋스퍼, 아스널, 첼시, 풀럼, 크리스털 팰리스, 밀월, 찰턴, 사우샘프턴, 포츠머스, 애스턴 빌라, 울버햄프턴, 더비, 선덜랜드, 미들즈브러, 허더즈필드, 셰필드 웬즈데이, 셰필드 유나이티드, 브래드퍼드 시티, 브래드포트 파크 애버뉴. 1900년부터 1939년까지 리치를 찾았던 고객 명단이다.

이렇게 리치는 잉글랜드에서 많은 클럽과 역사를 써나갔다. 그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도 바빴다. 아이브록스 스타디움(레인저스), 타인캐슬 스타디움(하트 오브 미들로디언), 덴스 파크(던디), 럭비 파크(킬마녹), 뉴 더글러스 파크(해밀턴) 그리고 햄든 파크(국가대표팀)를 건립했다.

그 밖에도 윈저 파크(벨파스트), 델리마운트 파크(더블린), 트위크넘 럭비 스타디움의 관중석, 그레이 하운드 스타디움 등을 설계했다. 축구뿐이 아니었다. 웨스트햄의 그레이하운드 경주 트랙과 모터레이스 트랙도 그가 설계했다. 웨스트햄은 1930년대 초 풋볼리그 클럽을 창설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전신은 따로 있다. 테임즈 AFC다.

다른 설계가나 건축 회사들은 축구경기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축구뿐만 아니라 스포츠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리치는 어쩌다 축구장을 설계하기 시작한 걸까?

# 축구 사랑

다시 리치의 본업을 생각해보자. 그는 공장 건축가였다. 적은 예산으로 기능성을 갖춘 건축물을 빠르게 짓곤 했다. 축구에 안성맞춤이었다. 당시 클럽들의 예산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리치는 훌륭한 외판원이기도 했다. 건축가로서 큰 장점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축구에 대한 애정이었다. 리치는 축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특정 팀의 서포터즈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데 20세기가 다 지나도록 제대로 된 축구장이 없었다. 리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직접 소매를 걷어붙였다. 축구계에서도 그는 꽤 믿음직한 사람으로 통했다.

리치와 함께 시작한 축구장의 역사를 돌이켜보자. 그는 글래스고 태생이다. 부고 표현처럼 그곳에서 '공장의 건축과 설계를 상담하는 사람'으로 활동했다. 리치는 첫 번째 축구장을 설계하기 위해 레인저스로 향했다. 레인저스가 그가 열렬히 사랑했던 팀이다.

그러나 축구장과 공장은 엄연히 달랐다. 공장은 이미 수년에 걸쳐 존재했다. 축구장은 상황이 달랐다. '축구경기장'이란 개념도 없을 때였다. 임시방편으로 설치해놓는 정도였다. 그저 좌석 몇 개 나란히 놓고 테라스(입석) 세워놓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80,000명 관중을 수용할 축구장을 세운다는 건 '맨땅에 헤딩'이나 마찬가지였다. 리치는 관중석을 설계하기 위해 극장이나 콘서트 홀을 찾았다. 또한, 콜로세움이나 다른 유적들을 통해 배우기도 했다. 기초적인 지질학 공부도 했다. 관중이 경기를 보는 시선 각도를 고려하기 위해서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 번째 축구장 프로젝트였던 만큼 압박이 컸다. 소재를 구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마침내 레인저스 최초의 스타디움 아이브록스 파크가 건립됐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 실패를 딛고 일어서다

1902년 4월 5일, 아이브록스에서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과 올드 에너미(Auld Enemy)의 평가전에서 신축 경기장의 테스트가 병행되었다. 관중석은 목제 테라스(입석)였다. 칸별로 나눠 골대 뒤에 세웠다. 그런데 관중들이 입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터졌다. 테라스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진 것이다. 결국, 25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리치는 자신이 만든 첫 번째 축구장에서 벌어진 일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의 설계자 삶에 있어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 순식간에 악몽으로 바뀌었다. 성공과 기쁨은 없었다. 오직 실패와 비극뿐이었다.

그와 비슷한 예가 있다. 다른 건축설계자 토마스 바우치도 그가 1879년 완공한 테이 브리지(던디)의 붕괴를 봤다. 그리고 '망가진 사람'이라는 오명에 괴로워했다. 리치도 마찬가지였다. 이후에 사고 원인이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리치의 불찰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레인저스는 재건을 위해 새로운 건축가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리치는 다시 한 번 절망했다. 다시는 축구계에 발을 디디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이런 상황에 부닥쳤다고 생각해보자.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냉큼 회의실로 갈 수 있을까? 가서 맥주를 마시며 재치 있는 농담을 건네며 설득할 수 있을까? 아마 회의실로 찾아간다는 생각조차 못 할 것이다. 그러나 리치는 달랐다. 그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신 있게 회의실로 향했고 특유의 입담을 발휘해 레인저스를 설득했다. 그리고 해냈다. 축구장 건축가로 제대로 발돋움했다.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 테라스를 새롭게 설계하다

그는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축구장을 설계했다. 풀럼의 크레이븐 코티지와 첼시의 스탬퍼드 브리지가 대표적인 예다. 모두 1905년 완공했다. 리치는 두 그라운드에 새로운 형식의 테라스(입석)를 도입했다. 아이브록스에서 드러난 모든 약점을 보완했다. 관중들이 서는 목재 판 뼈대를 강철로 만들었다. 그리고 튼튼한 흙더미나 무너진 탄광 위에 세우며 안정감을 줬다.

계단도 놓치지 않고 신경 썼다. 오르내리는 통로와 양옆 통로의 간격도 일정하게 띄었다. 그리고 통로에선 축구를 관람하지 못하도록 했다. 재료가 부족해 임시로 사용했던 나무 기둥과 난간을 없앴다. 대신 강철을 사용해 콘크리트 벽과 난간을 조였다. 훨씬 튼튼해졌다.

리치는 1906년에 자신의 설계 방식에 특허를 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 그라운드의 입석과 부속품을 위한 새로운 설계 방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어디에나 존재했다

1966년 홀트 엔드(빌라 파크)에 처음 가봤는데 딱 리치가 만든 입석이었다. 한동안 그런 사실을 모른 채 홀트 엔드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나는 리치의 특허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가 만든 입석에서 열심히 우리 팀을 응원했다. 아마 나와 비슷한 관중들이 많았을 것이다.

몰랐던 사실이 하나 더 있다. 1924년 빌라 파크에 트리니티 로드 스탠드(Trinity Road Stand)가 들어섰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같은 사람이 설계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아마 내가 축구 건축사를 공부하게 한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제는 거의 집착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리치를 다룬 책을 출판한 후 점점 많은 사람이 그를 알기 시작했다. 셀터게이트(체스터필드)에서 일한 사실도 알려졌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메이플라워 스탠드(플리머스)가 등장했다. 이에 사람들이 의심하기 시작했다. 리치의 손길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나. 아니나 다를까, 역시 그의 회사가 설계한 것으로 밝혀졌다. 리치 회사가 1956년 문을 닫기 전 마지막 임무였다. 이는 러셀 무어의 < Home Park, a Pictorial History> 에서 알 수 있다.

이제 리치의 작품은 세월 속에 대부분 사라졌다. 내가 첫눈에 사랑에 빠진 트리티니 로드 스탠드도 2000년 모습을 감췄다. 힐즈브러 참사(1989)의 결과물인 <테일러 보고서>가 가장 큰 이유다. <테일러 보고서>는 안전상 이유로 모든 입석을 철거하고 전(全)좌석 경기장의 의무화를 권고했다.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1905년 건립된 조니 헤인스 스탠드(크레이븐 코티지)와 근처 경기장에 아직 남아있다. 이들은 영국 정부의 '2등급 문화재(보존을 권고하는 건축물)'으로 등재되었다. 풀럼이 잘 지키고 있다. 1922년 던디에 세워진 입석도 아직 건재하다. 사우스 스탠드(아이브록스, 1929)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스탠드를 관리하는 일자리가 따로 있다.

# 건축물은 잊어도 리치는 잊지 말자

1906년 리치는 안필드에 콘크리트로 메인스탠드를 세웠다. 오랜 세월 안필드를 상징하는 스탠드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대대적인 증축을 시작했다. 구디슨 파크(에버턴)과 이스트 스탠드(토트넘)도 확장 계획을 세우고 있다. 토트넘은 내년에 착공한다. 크리스털 팰리스의 메인스탠드도 마찬가지다. 포츠머스의 두 스탠드와 하츠도 꽤 오랫동안 보존하고 있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리치가 세운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관중석이 있다. 잉글랜드의 셀터게이트(체스터필드)다. 2010년에 그라운드를 철거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얼른 체스터필드에 연락해 남아있는 시설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흔쾌히 허락했다.

현재 그 시설들은 맨체스터의 국립축구박물관과 햄든 파크의 스코틀랜드축구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리치가 세운 관중석에서 햄든 파크를 꼭 기억하자. 가장 많은 관중을 기록한 곳이다. 1937년 햄든 파크에서 개최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A매치에는 무려 149,000명이 몰렸다.

축구가 존재하는 한 리치는 쉽게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오늘날 또 다른 축구장 건축가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웹사이트나 잡지, 일간지 혹은 TV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을 접할 수 있다.

게다가 열악했던 과거 상황과 다르다. 회사의 마케팅 그리고 회의나 전시회 등의 행사를 통해 오늘날 스타디움과 아레나가 발전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 리치가 뭐라고 말할까? 분명 기뻐할 것이다. 열광할지도 모르겠다. 아, 그가 사랑하는 레인저스에 대해서는 얘기해주지 말자.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편집자 주- 레인저스는 2012년 재정부실로 4부로 강제 강등되어 현재 2부까지 올라왔다.)

에디트=홍재민, 글=Simon Inglis, 번역=정재은,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포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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