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박병호가 헤매는데, 내가 왜 미안하지?

조회수 2015. 11. 13. 10: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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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소호(49ㆍLuis Sojo)는 대단한 사람이다. 평생 1개도 어려운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5개나 갖고 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까지 양키스 전성시대를 지킨 유틸리티 내야수였다. 당시 그의 별명은 '최고의 2할 타자'였다.

당연히 그의 조국 베네수엘라에서도 전설이다. 마치 우리가 아쉬울 때마다 김인식 감독 얼굴 쳐다보듯이, 벌써 10년째 국대 감독을 도맡고 있다. 세번의 WBC 사령탑에 이어(2009년 대회 3위), 이번에도 대표팀을 지키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제(12일)는 몹쓸 기억으로 남는 하루였다. 덕아웃 턱이 닳도록, 마운드를 오락가락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겨우 7회만 하면서, 투수를 7명이나 쏟아부었다. 그러고도 참극을 막지 못했다. 야구 강국의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날이었을 것이다.

5번 타자만 빠진 선발 전원안타

뭐 이런 팀이 다 있나 싶다. 도대체 어디 숨 쉴 곳이 없다. 1번부터 9번까지 다 잘친다. 상위 타선은 그렇다 치자. 아래로 가면 더 무섭다. 7번 타자는 홈런 2개도 모자라 안타 2개를 보탰다. 4안타 경기다. 가장 허접하다는 9번 타자는 안타 2개에 볼넷 1개. 100% 출루다.

사기 캐릭 같은 타선이다. 당연히 선발 전원안타라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딱 한군데가 허전하다. 그것도 중심타선이다. 5번 자리에 구멍이 생겼다. 3타수 무안타. 볼넷 출루가 유일했다.

그 전날(11일ㆍ도미니카전)도 그랬다. 팀이 11안타로 10점을 내며 모처럼 신바람을 냈다. 하지만 유독 5번 타자만은 뚜렷한 '차별화'를 선언했다. 5타수 무안타. 삼진만 3개를 당했다. 대승을 거둔 2경기에서 안타는 고사하고, 외야로 보낸 타구조차 없었다.

그의 이슈는 대표팀에 손해일 수도

벌써 며칠째다. 그는 이슈의 한복판에 있다. 포스팅 액수가 알려지고, 교섭권을 가진 팀이 발표됐다. 관련된 뉴스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건씩 쏟아진다. 분명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영광이자, 기회다. 그리고 우리 리그와 팬들에게도 커다란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애석하다. 지금은 충분히 즐기고, 누릴 수 있는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그는 지금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그 팀과 동료들은 아주 중요한 미션을 수행 중이다. 자칫하면 엄청난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 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그의 이슈는 대표팀에게는 절대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반대다. 그가 잘 되는 걸 배아파 하는 동료들 때문에? 설마 그럴 리가. 그렇게까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그 정도 수준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본인이나, 팀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는 방해요소로 작용할 우려가 크가. 모든 미디어들의 포커스가 경기 외적인 부분으로 쏠리고, 팬들의 궁금증이 한 곳으로만 집중되면서 대표팀의 일사분란함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은 당연하다.

물론 대표팀을 관리하는 KBO나 코칭스태프에서도 이런 부분을 짐작하고 대처했을 것이다. 또 현장을 커버하는 미디어들도 상식에 어긋나는 행태를 보일 리 없다.

극복해야 할, 어쩔 수 없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대회 기간 내내 그에 대한 시선이 남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표팀의 5번 타자' 못지 않게, '미네소타의 지명타자'가 궁금한 건 사실이니까. 그 팀이 어떤 팀이고, 가게 되면 그 구장에서는 홈런을 몇개나 칠 것 같은지, 도대체 연봉은 얼마나 받게 될 것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관심거리다.

때문에 현장에서도 그를 특별한 관심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조심하고, 배려한다고 해도 각자 해야할 '일'이라는 게 있다. 미디어의 공급자는 소비자의 수요에 맞춰 물건(?)을 생산한다. 그게 시장의 당연한 논리다. 그걸 '너무 한다', '지나치다' 탓하기 어렵다.

그런 점은 아마도 본인이 가장 잘 느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갈수록 신중하다. 극도의 조심성 뿐이다. 혹시나 팀에 '민폐' 안 되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살얼음이다. 마찬가지로 동료들도 이해하고, 무던하려고 애쓰는 분위기다.

<…구라다> 역시 그렇다. '싱글A 투수들 볼도 못치나?' 그런 생각 안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건 사려 깊은 헤아림이 아닐 것이다. 그런 걸 알기에 그의 부진이 더욱 안타깝고, 안쓰럽다. 손가락질은 커녕, 오히려 미네소타 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뉴스 소비자'로서 미안할 따름이다.

그 도루, 미안함의 표시 아닐까

켄 로젠탈은 미국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야구 기자다. FOX 스포츠의 간판스타다. 그의 박병호에 대한 평가는 야박하기 짝이 없다. 이를테면 '50홈런? 의미 없다. (빅리그에서 퇴출된) 에릭 테임스도 47홈런을 쳤던 리그'라고 쌀쌀맞게 서술했다. 게다가 '아직 계약이 완료되지도 않았는데, 프리미어12에 출전하고 있다. 부상 위험이 있는 데도…'라면서 걱정했다.

맞다. 곧 몇 천만불짜리 빅딜이 있을 지 모른다. 가장 민감한 메디칼 테스트도 거친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시기다. 그런데 그는 국가대항전에 출전하고 있다. 그뿐인가? 어제는 2루 도루까지 감행했다. 그걸 알았다면 로젠탈은 쓰러졌을 것이다.

5번타자는 분명 미안해 하고 있다. 그 도루는 아마 그런 뜻이었을 거다. 본인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괜히 주변에 민폐끼치는 게 불편한 탓이리라.

그래도 다행이다. 그의 부진은 아직 큰 허물이 아니다. 동료들이 열심히 해서 덮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남은 경기에서는 반대가 됐으면 좋겠다. 팀 타선이 막혔을 때, 그의 호쾌한 스윙으로 게임이 풀렸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도, 우리도 미안함을 덜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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