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S담쓰談]韓 야구 선전 반갑지만 우리도 지켜봐 주세요

조회수 2015. 11. 12. 03: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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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민 스포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근소한 차이로 야구가 꼽힐 것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축구의 인기도 만만치는 않다. 다만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가 폭발성 면에서는 그 파괴력이 엄청나지만 프로야구는 상대적으로 많은 경기 수로 열기가 꾸준하게 이어진다. 단순히 한 경기가 아니라 전체 일정의 합, 규모에서 야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절대 유리하다.

< '왜 이렇게 세게 때려?' 한국 야구 대표팀 이대호(가운데)가 11일프리미어12 도미니카와 경기에서 7회 역전 결승 홈런을 때린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동료들의 격한 축하에 역시 격하게 반응하고 있다.(타오위앤(대만)=일간스포츠 김민규 기자) >

때문에 야구는 다른 종목의 일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겨울스포츠인 농구, 배구는 개막과 플레이오프 등 시즌 전후가 프로야구 일정과 맞물리기 마련이다. 이들의 개막은 프로야구의 꽃인 포스트시즌과 겹치고, 반대로 농구, 배구의 플레이오프는 KBO 리그의 개막과 오버랩된다.

그래서 스포츠 팬들의 주목을 뺏기지 않기 위해 겨울 종목들은 일정 조정에 애를 먹는다. 프로농구(KBL)는 2015-2016시즌 개막을 예년보다 한 달 정도 앞당겼다. 촘촘한 일정에 대한 선수들의 체력 부담을 덜어주는 목적이 컸지만 '가을 야구'와 겹치기 개막을 피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프로배구 V리그와 여자프로농구(WKBL) 관계자들도 야구와 일정이 맞물릴까 전전긍긍하거나 아예 마음을 비운다.

프로 스포츠인 농구, 배구가 이럴진대 하물며 다른 종목들은 오죽할까. 이른바 비인기에 군소 아마추어 종목들은 진격의 거인과도 같은 야구의 거대한 그늘에 가려지기 일쑤다. 때문에 그나마 각 종목 빅 이벤트는 최대한 야구 일정과 엇갈리게 하기 위해 해당 종목 관계자들은 안간힘을 쓴다.

지난달 남자프로테니스(ATP) 챔피언스투어 '기아 챔피언스 컵 테니스 2015'를 주최했던 지선스포츠마케팅 관계자들은 KBO 리그 플레이오프(PO)가 어떻게 해서든 4차전에서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PO가 5차전까지 갈 경우 대회 첫 날인 24일에 열리기 때문이었다.

마이클 창과 마라트 사핀, 고란 이바니세비치 등 모처럼 한국에서 펼쳐지는 테니스 전설들의 명승부가 행여 묻힐까 하는 걱정이었다. PO는 불행하게도(?) 5차전까지 갔지만 다행히도 멋진 경기가 펼쳐져 나름 대회는 괜찮게 마무리됐다. 다만 PO가 4차전에서 끝났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심을 얻었을 터였다.

< '왕년의 스타들' 마이클 창(왼쪽)과 마라트 사핀이 지난달 열린'기아 챔피언스 컵 테니스 2015'에서 익살스럽게 경기하는 모습.(자료사진=연합뉴스신준희 기자) >

때문에 11월은 다른 종목에게는 '기회의 달'이다. 프로야구가 가을야구를 끝내고 비로소 휴식기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리그 챔피언들의 아시아시리즈가 열리기는 했지만 이벤트 성격이 적잖아 관심이 떨어졌고, 그나마도 스폰서 문제로 드문드문 열렸다. 바야흐로 겨울스포츠와 다른 종목들이 팬들의 관심을 끌어올 시기의 시작되는 달이다.

하지만 올해는 야구가 11월에도 펼쳐진다. 지난 8일 개막한 국가대항전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SBC) 프리미어12'다. 세계 랭킹 12위까지 나서 자웅을 겨루는 대회로 한국은 KBO 리그 홈런왕 박병호(넥센)와 대표 좌완 김광현(SK) 등과 이대호(소프트뱅크), 이대은(지바 롯데) 등 해외파까지 정예를 망라했다.

메이저리거들이 나서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는 못 미치지만 한일과 대만 등이 국가대표 스타급 선수들을 내보낸 만큼 아시아시리즈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대회는 조별리그를 거쳐 8강 토너먼트까지 8일부터 오는 21일까지 대만과 일본에서 펼쳐진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비록 8일 일본과 개막전에서 0-5 완패를 안았지만 12일 2013년 WBC 우승팀 도미니카공화국과 B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10-1 대승을 거뒀다. 일본시리즈 MVP 이대호의 홈런과 한국시리즈 우승 주역 장원준의 호투, 김현수(이상 두산)의 쐐기 싹쓸이 3타점 등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완전히 되살아났다. 스산한 11월까지 야구 열기가 이어질 조짐이다.

< '일본전 충격 벗어났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11일 도미니카공화국과 프리미어12 B조 2차전에서 승리한 뒤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타오위안(대만)=뉴스엔 표명중 기자) >

야구 대표팀의 선전은 반갑기 그지 없지만 이 시기에 빅 이벤트가 펼쳐지는 다른 종목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혹독하게 소화해온 훈련의 결실을 막 이루려는 참에 익숙했던 무관심의 설움을 또 다시 겪어야 할 수도 있다.

남녀 정구 대표팀은 지난 10일 제 15회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출국했다. 탁한 공기에 마스크를 쓸 만큼 열악한 인도 사정이지만 최강 '정구 코리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현지 적응 훈련에 들어갔다.

한국 정구는 세계 정상이다. 최근 3번의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정구는 전체 금메달 7개 중 5개 이상을 따냈다. 2007년 13회 대회는 남자 단체전을 빼고 모두 우승을 휩쓸었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남녀 단복식과 단체전, 혼합복식까지 전 종목을 석권했다.

이런 실력에도 대표적인 비인기 종목으로 꼽힌다. 대체로 테니스와 비슷한 종목 정도로 일반에 알려져 있다. 세계 정구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노리는 여자 복식 김애경-주옥(이상 NH농협)은 "우승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기시는데 우리도 한여름 땡볕에 정말 열심히 힘들게 훈련한다"면서 "정구도 알고 보면 재미있는 스포츠인데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번 세계선수권은 정확히 프리미어12와 일정이 겹친다. 오는 17일 개막하는 세계정구선수권대회는 프리미어12 결승전이 열리는 21일 남녀 단체전과 시상식으로 폐막한다. 낭보가 묻힐 가능성이 적잖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목표한 바를 이루고 오겠다"고 다짐했다.

< '마이 아파요' 정구 국가대표 선수단이 10일(현지 시각) 제 15회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인도 뉴델리에 입국한 모습(위)과 현지 적응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포즈를 취한 모습.(사진=대한정구협회) >

정구뿐만이 아니다. 야구가 '국민 스포츠'라면 '민족 스포츠'인 씨름도 있다. 씨름인들의 최대 축제 천하장사 대회도 프리미어12와 기간이 겹친다. 오는 16일부터 충남 청양군에서 열리는 올해 천하장사 대회는 22일까지 열린다.

현재 대한씨름협회는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 대한체육회의 회장 인준이 미뤄지면서 정부 보조금이 중단된 처지다. 지난 9월 열린 추석장사대회 운영비는 5억 원에서 3억 원으로 줄었고, 우승 상금도 2000만 원에서 반토막이 났다.

이런 가운데 천하장사 대회는 모처럼 씨름 열기를 지필 호재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전통의 천하장사 대회는 분위기를 반전해 위기를 극복할 계기가 될 만하다. 하지만 프리미어12와 일정이 맞물리는 녹록치 않은 상황을 맞게 됐다. 그나마 천하장사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결승 등의 상위 토너먼트는 프리미어12 결승전 다음 날인 22일 열린다.

당구 역시 프리미어12의 유탄을 맞은 모양새다. 대한당구연맹은 지난 9월부터 3쿠션 역대 최대 규모 상금의 대회의 11월 개최를 야심차게 준비해왔다. '2015 LG U+ 3쿠션 마스터스' 대회다.

< '유일한 토종 4강' 역대 최대 상금 대회인 '2015 LG U+ 3쿠션 마스터스'에서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4강에 오른 강동궁.(사진=대한당구협회) >

총 상금 1억1000만 원은 세계 3쿠션 단일 대회 중 역대 최고액이다. 우승 상금만 어지간한 대회의 총 상금 규모를 넘는 5000만 원이다. 연맹이 처음으로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 마련한 대회로 세계 톱 랭커 16명을 초청했다. (대회 출전 구성으로만 보면 프리미어12와 흡사하다.)

하지만 이 대회도 프리미어12와 겹친다. 대회 개막식이 열린 8일은 프리미어12 최고의 흥행카드인 한일전이 열렸다. 3쿠션 4강과 결승전이 열리는 12일은 프리미어12 한국과 베네수엘라의 경기도 열린다.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날 '3쿠션 마스터스' 결승전은 오후 4시 30분부터 케이블 채널 SBS 스포츠를 통해 생중계된다. 그런데 SBS 스포츠는 '프리미어12'의 한국 독점 중계 방송사다. 때문에 오후 1시부터 열리는 한국-베네수엘라의 경기를 먼저 생중계한다. 자칫 경기 시간이 길어지면 '3쿠션 마스터스' 결승 경기 중계에 영향을 미친다.

3쿠션 결승전은 빌리어즈TV를 통해서도 중계가 된다. 그러나 인지도나 케이블 채널 송출 규모에서 SBS 스포츠에 아직은 비할 바가 못 된다. 연맹 측으로서는 최대한 빨리 야구 경기가 끝나야 한다. 연맹 관계자는 "최근 선수들의 기량이 향상돼 35점 경기는 한 시간 정도면 끝난다"면서 "야구가 길어져 결승 경기 중계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1년 만의 대외 활동인데...' 탁구 스타 현정화 렛츠런파크 감독이 주도적으로 나선 동호인 대회 '탁구 더비'는 오는 15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데 이날은 프리미어12 한국과 미국의 B조 최종전이 열린다.(사진=렛츠런파크) >

물론 이들 종목이 한국 야구의 선전을 바라지 않는 게 아니다. 또 다른 종목의 한 관계자는 "나도 프로야구 광팬"이라면서 "임 기자의 야구 기사 잘 보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한다. 이들 중 적잖은 인사들 역시 수많은 야구 팬들 중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간절한 바람은 화려한 조명 뒤에서 묵묵하게 땀 흘리는 자신들의 노력을 팬들과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메이저 스포츠의 광대한 우산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잠깐 든 햇볕을 쬐고 싶은 절절한 마음인 것이다.

프로야구는 최근 '도박 스캔들'로 홍역을 치렀다.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들이 수억 원대의 해외 원정 도박을 했다는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또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간판급 선수들도 도박 의혹을 받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뇌관이 아직 터지지 않았다는 불안한 소식도 들린다.

이들 중에는 수십억 원의 FA(자유계약선수) 대박을 터뜨린 선수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최대 규모라는 당구 대회나 운영비를 줄인 씨름 대회 총 상금의 몇 배, 아니 수십 배나 되는 몸값의 선수들이다. 이런 대회를 몇 개나 더 치를 수 있는 금액의 판돈이 오간 도박판이라니…. 대세인 야구와 다른 스포츠의 위상과 인기 차이가 아득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바라는 것은 야구 선전에 대한 응원과 함께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 땀 흘리는 다른 종목에 대해서도 조금은 박수를 보내달라는 당부다. 뉘라서 그 땀이 가치있고 소중하지 않을까. 야구를 열렬히 즐기고 더 크게 환호하라. 다만 그것이 끝난 뒤에는 주위도 좀 돌아보라. 한 해 야구의 마지막 경기는 슬픈 게 아니라 다른 축제도 열리는 흐뭇한 날이기도 하다.

물론 그들의 소식을 충분히 전하지 못한 나 자신부터 반성할 일이다. 미처 언급하지 못한 종목과 대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야구의 뜨거운 인기와 선수들의 천정부지 몸값, 화려한 플레이, 이에 대한 엄청난 조명과 쏟아지는 기사에 눈이 멀고 팔려 작지만 소중한 가치들을 놓쳐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글=CBS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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