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들숨날숨] 꼬인 시즌을 우승으로 풀어낸 전북, 그들은 강호다

조회수 2015. 11. 10. 16: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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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K리그 클래식 1라운드가 열린 것은 지난 3월7일이었다. 마지막 38라운드는 오는 29일 펼쳐진다. 1월과 2월 그리고 12월만 빠지는, 거의 1년을 관통하는 일정이다. 장기레이스다. 토너먼트 대회나 국가대표팀의 운영이 단거리 달리기에 비유된다면 정규리그는 긴 호흡으로 큰 그림을 따라가야 원하는 지점에 도착할 수 있다.

4월의 1위가 11월에 강등권으로 추락할 수 있으며 5월에 10위였던 팀도 마지막은 훈훈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럴 수 있다'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해당 클럽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시즌 초중반 매서운 돌풍을 일으켰던 울산현대와 전남드래곤즈의 행보는 그룹B에서 마무리됐다. '서울의 봄'이 더뎌도 너무 더뎌 한때 강등권까지 곤두박질쳤던 FC서울의 2015년은 결국 괜찮았던 시즌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요컨대 꾸준하기가 참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2연패를 달성한 전북의 한결같음은 박수가 아깝지 않다.

2015년 전북의 순위는 3위, 2위, 1위 딱 3개뿐이다. 최악(?)의 성적이었던 3위는 아직까지 순위 나열이 큰 의미 없던 3월 셋째 주에 찍은 순위다. 2위 역시 4월 초가 끝이다. 전북은 4월12일 1위로 도약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다른 팀에게 내준 적이 없었다.

단 하루라도 다른 팀 이름이 순위표 최상단에 오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전북은 지난 8일 제주 원정으로 열린 시즌 36라운드에서 1-0으로 승리, 우승을 확정지었다. 잔여 2경기 결과는 전북의 순위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결국 시즌 종료일인 11월29일까지도 전북은 1위다. 9개월 장기 레이스 중 8개월 동안 흔들림 없는 아성으로 일군 우승이다. 큰 의미가 없어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개막 후 2주까지도 1위는 전북이었다.

결과적으로 시즌을 앞두고 모든 팀들이 우승후보로 전북을 꼽았던 예상은 맞았다. 순위상으로는 단 한 번도 위기 없이 질주했으니 '절대 1강'이라는 전망도 틀리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다소 다르다. 올해 전북은 '꼬인 시즌'이었다. 최강희 감독과 전북 구단이 구상했던 시나리오에서 어긋났던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즌 개막 전부터 최강희 감독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고민이 컸던 중앙미드필더 자리의 적임자로 점찍은 권경원을 중동의 머니파워에 빼앗겼다. 김남일이 일본으로 떠나고 신형민의 군 입대로 구멍이 났던 중앙을 권경원으로 메우려했는데 UAE 전지훈련 도중 거금을 제시한 알 아흘리의 제안에 두 손 들었다.

최 감독은 고민과 걱정이 컸다. 팀의 아킬레스건 해소를 위해 권경원은 꼭 필요한 자원이었다. 일부에서는 이전까지 전북에서 큰 활약이 없었던 권경원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겠나 싶었고, 기존 면면으로도 충분히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적중했다. 전북의 허리는 시즌 내내 최강희 감독을 괴롭혔던 곳이다. 시즌 막판 최철순이 중앙MF로 뛰었던 것은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한 변칙 전술이기도 했지만 마땅한 적임자가 없었던 것에서 나온 고육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과연 고액의 가치가 있을까 싶었던 권경원은 알 아흘리에 빠르게 뿌리내려 ACL 결승을 누비고 있다.

전북이 자랑하는 '닥공'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6년 만에 K리그로 복귀시켰던 에두는 히트 상품이 되는 분위기였다. 공백이 무색할 만큼 에두는 리그를 지배했고 전반기에만 11골을 터뜨렸다. 그런데 지난여름 이번에는 중국의 파격 제안에 좌절했다. 2부리그 허베이 종지가 1981년생인 에두에게 연봉 300만불(약 34억원)에 2년6개월 계약을 제시했으니 전북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에두가 한국을 떠나기 전 20경기에서 터뜨렸던 11골은 지금까지도 득점랭킹 8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공백이 컸다.

엎친 데 덮쳐 '녹색 독수리' 에닝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승부욕 강한 에닝요는, 스스로 물러났다. 떠나는 순간까지 에닝요는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다. 에두와 에닝요는 ACL 제패와 리그 2연패를 위해 최강희 감독이 야심차게 꺼내든 카드였다. 나이가 많았으나 2015년은 분명 '결과'가 필요한 시즌이라는 판단으로 경험이 풍부한 굵직한 이름을 택했다. 그런데 꼬여버렸다. 심지어 ACL 8강을 앞두고 발생한 누수였다. 실패의 원인을 모두 에두의 공백 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으나 타격은 컸다. 급히 찾을 수밖에 없었던 대체자 베라는 냉정히 말해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했다.

팀 전력의 키플레이어로 꼽았던 이들이 숫제 뽑혀버린 셈이다. 크고 작은 흔들림도 많았다. 한교원은 경기 도중 상대 선수와 충돌하면서 구설수에 오른 뒤 흐름이 꺾였다. 이재성은 대표팀 차출이 잦아지면서 팀 기여도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급히 공수한 루이스도 포인트 상으로는 14경기에서 1골2도움을 적어내는 것에 그쳤다. 최강희 감독의 우승의 공신으로 꼽았던 것처럼, 센터백 김기희는 측면 풀백으로 많이 뛰어야했다.

돌아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최강희 감독이 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뒤 "올해는 이기는데 급급했다. 1위를 지키기 위해 우리 경기를 펼치지 못하고 상대에 맞춤 경기를 했다"며 아쉬움을 표한 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최 감독은 자주 "우리가 이렇게 빨리 1위에 오를지 몰랐다. 빨리 1위에 오르는 것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는 말을 해왔다. 가뜩이나 '공공의 적' 이미지가 깔려 있는데 일찌감치 선두라는 족쇄를 차게 되면 견제가 더 심해지는 까닭이었다. 최 감독의 걱정대로 전북은 안팎의 괴로움 속에서 흔들렸다. 하지만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았다. 최 감독도 직접 밝혔듯, 전북이 패했을 때 추격자 수원도 같이 패했고 포항과 서울의 발동이 뒤늦게 걸렸다는 일종의 행운도 따랐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전북이 잘 버텨냈기에 따낸 열매다.

당연한 우승은 없다. 모든 종목이 마찬가지다. 좋은 선수가 꼭 우승의 절대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2015년 전북의 스쿼드는 2009년과 2011년 그리고 지난해 우승 멤버들과 견줘 더 화려하다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이 평준화 됐다는 K리그에서 12년 만의 2연패를 완성했다. 꼬인 시즌을 우승으로 풀었다.

FC서울 최용수 감독은 시즌 중간중간 "전북이 계속 1위를 달리고 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올라가는 것도 어렵지만 그 자리를 줄곧 유지한다는 것은 보통 내공이 아니면 어렵다. 위기 상황이 꾸준하게 있는데도 잘 버티고 있다. 그만큼 강팀이라는 뜻"이라는 말로 상대를 인정했다. 7년 사이 4회 우승. 이제 전북은 강호다.

최강희 감독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5년 7월14일, 선수단 상견례를 겸했던 덕유산 등반을 시작으로 전북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전까지 감독 경력이 전혀 없던 최강희 감독은 사상 최초로 4회 우승을 달성한 '명장'이 됐다. 그해 곧바로 경질 위기에 놓이면서 역대 최단 기간 감독이 될 수도 있었던 그가 파리 목숨과 모기 목숨이 떠도는 K리그 판에 당당히 장수 감독으로 뿌리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저 '지방구단'이던 전북현대는 이제 한국의 맨체스터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은 수준이 됐다. "앞으로는 전주월드컵경기장도 팬들로 꽉꽉 찰 것"이라던 10년 최강희 감독의 허황돼 보이던 야망도 "최종전에서 4만 관중이 모이면 선수들 상의를 벗기겠다"는 공약을 내걸 정도의 현실이 됐다. 이제 전북은 빅 클럽이 됐다.

글= 임성일[뉴스1 스포츠부/lastuncle@daum.net]

사진= 전북현대/스포츠공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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