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전인지-오지현을 키운 '이방인 지도자'

김세영 기자 입력 2015. 11. 1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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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전부터 전인지를 지도하고 있는 박원 박원골프아카데미 원장. 지난주 ADT캡스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달성한 오지현도 그의 제자 중 한 명이다. 사진=박태성 기자

한국 사회에서는 학연과 지연이 성공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열쇠로 작용한다. 각 분야별로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은 장벽이 존재한다. 어느 대학, 어느 지역 출신인지가 능력에 앞설 때가 많다. 이런 불평등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좌절한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골퍼는 전인지다. 올해 한미일 내셔널타이틀을 포함해 국내외에서 메이저 5승을 거뒀다. 전인지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를 지도하고 있는 박원 박원골프아카데미 원장에게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지난주 ADT캡스 챔피언십에서 넉넉한 타수 차이로 첫 우승을 달성한 오지현도 박 원장이 지도하고 있는 선수다.

박 원장이 더욱 주목을 받는 건 소위 말하는 '정통파'가 아니어서다. 골프 지도자의 타이틀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나 미국 PGA 클래스 A 멤버가 아니다. 그는 골프계에서는 '이방인'이나 다름없었다. 골프와 관련한 학연이나 지연도 없다. 그래서 설움도 받았고, 비난에도 시달렸다.

그는 그러나 전인지라는 걸출한 스타를 길러내며 주류를 향해 지도자로서의 실력을 입증해 보였다. 이제는 당당한 '주류'가 됐다. 골프해설위원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인생 여정이 궁금했다. 그처럼 해당 분야에 학연이나 지연이 없어도 성공하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건전한 사회라고 생각한 것도 한 몫 했다. 2주 전 서울경제 문영퀸즈파크 레이디스 클래식 현장에서의 만남과 이후 몇 차례의 전화통화를 통해 그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 전인지(맨 왼쪽), 오지현과 연습 라운드 중인 박원 원장. 사진=박태성 기자

박 원장은 원래 미국 미시건 주립대 환경경영 박사 출신이다. 학위를 받을 때까지도 실제 골프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심은 늘 많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를 좋아했어요. 야구나 골프 기사를 관심 있게 읽었죠.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가끔은 일부러 은행에 가 골프잡지를 챙겨봤는데 그럴 때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죠."

그가 골프를 실제 배우게 된 건 박사 논문을 마치고 난 후다. 해가 뜨면 필드에 나가 해가 지면 돌아왔다. 혼자서 캠코더로 스윙을 촬영하면서 분석했고, 스윙 이론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우연히 '모델골프'를 접하게 됐다. 바이오 메커니즘을 이용해 스윙을 분석한 모델이다. 볼을 똑바로 멀리 치는 선수의 스윙과 모델골프의 스윙이 유사하다는 게 입증됐고, 미국 PGA도 스윙매뉴얼로 받아들였다.

박 원장은 모델골프를 한국에 소개하는 데 관여했다. "처음에는 모델골프로 사업을 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주는 차원으로 했어요. 그런데 외환위기가 터졌죠. 환경 박사라는 타이틀로는 어디 갈 곳도 마땅찮은 거예요. 그러던 차에 방송사에서 골프해설을 부탁해 왔죠. 그러면서 조금씩 골프 쪽 일도 많아지고, 선수들도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고, 점점 골프라는 늪에 빠진 거죠."

골프 쪽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자 그는 이때부터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텃세는 심했다. 기댈 곳도, 기댈 사람도 없었다. 결정적 계기가 찾아왔다. 해설을 맡고 있던 방송사의 한 간부가 그의 출연을 반대했다. 그 간부는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라. 당연한 결과다. 아니면 네가 좋은 선수 길러내 실력으로 입증해라. 그러면 인정해 주겠다"고 했다.

"맞는 얘기지만 화가 났죠. 대통령이 정치학과 나와야 하는 거 아니고, 신문방송학과 나와야만 기자하는 거 아니잖아요. 오기와 반발심이 생겼죠. 그때부터 이를 더욱 악물었어요.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지도 방법 등에서도 더 깊게 연구했죠. 지금 제 방에 보면 전공서적보다 골프 서적이 훨씬 더 많아요. 좋은 선수 길러내기 위해 일반인 레슨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고요. 제 목적은 돈이 아니라 골프 지도자로서 인정받는 거였으니까요."

이론과 실기를 겸하기 위해 해외에 나가서 배우기도 하고, 멘털 학회에도 가입해서 활동했다. 모델골프로 배웠던 지은희가 US여자오픈에서 곧바로 우승도 했다. 그럼에도 그를 바라보는 색안경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그러다 올해 전인지가 뜨면서 그에 대한 평가도 바뀌고 있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아마 인지가 5년 전에 지금과 같은 성적을 냈더라도 이런 주목을 받지는 않았을 겁니다. 여자 골프계의 파이가 커진 덕에 더욱 이슈가 됐고, 저에 대한 시선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 박원 원장은 선수들에게 멘털과 상황판단능력을 강조한다. 여기에 즐기는 골프를 접목했다. 연습 라운드 도중 그가 지도하고 있는 오지현, 김희망, 강예린(왼쪽부터)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태성 기자

그의 골프 지도 방법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그는 스윙 기술보다는 멘털과 상황 판단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종착점은 '즐기는 골프'다. 전인지도 코스 공략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인터뷰 때는 항상 "나만의 플레이를 재밌게 즐기려 한다"고 말한다. 매번 같은 말만 되풀이 하니 기자들에게는 재미없는 인터뷰 대상이다.

"오락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기록을 깨려다가 매번 게임이 끝나잖아요. 그런데 속상해 하면서도 다시 도전해요. 푹 빠지죠. 골프도 오락과 같아야 해요. 시합을 즐겨야 하고, 그 결과도 즐겁게 받아들여야 다음 경기에 더 몰입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거죠.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쉽지 않아요. 인지도 그런 멘털을 가지게 된 게 4년 동안 꾸준히 훈련한 결과에요. 최근에는 너무 뻔한 단답형 대답만 말고, 길게 나름의 이유도 좀 말하라고 조언해 주고 있어요."(하하)

여자 선수들이 이끄는 'K-골프'는 이제 세계적인 상품이 돼가고 있다.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점점 더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꿈은 선수뿐 아니라 향후 한국의 지도 방식을 외국에도 수출하는 거다.

"외국에서는 한국골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요. 어떻게 그렇게 좋은 성적을 내는지 궁금해 하죠. 덩달아 한국 지도자에 대한 수요도 많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요. 실제로 조금씩 조짐이 보이고 있죠. 현재 저희 아카데미에도 대만 선수가 와서 훈련하고 있어요. 골프라는 문화는 외국을 통해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역으로 우리가 트레이닝 방법 등을 수출할 수도 있어요. 스크린 골프도 마찬가지잖아요."

박 원장은 미국 유학 비행기에 오르던 순간 대학 교수를 꿈꿨다. 그러다 골프를 접하면서 지도자와 해설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지만 그는 이겨냈고, 당당히 자신의 색깔을 입힌 선수들을 길러내고 있다. 그의 인생 과정을 보면 새로운 꿈도 머잖아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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