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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의 타인의 시선] 한국축구는 이천수에게 빚이 있다

조회수 2015. 11. 7. 14: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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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와 21세기 축구선수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을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차범근, 박지성과 같은 선수들은 대중에 공개되는 인터뷰에서 항상 정답만을 말했다. 이들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다. 이들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겸손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지성과 같은 해(1981년)에 태어났지만 21세기 선수로 분류하고 싶은 이가 있다. 며칠 전 선수 은퇴를 선언한 이천수다. 이천수는 그를 싫어하는 이들이 별명에 '혀'를 넣었을 만큼 거침없는 말로 유명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심지어 잘못했을 때(몇 차례 거짓말도 했지만)도 그랬다. 6일 '풋볼리스트' 정다워 기자와 인터뷰에서 밝힌 그대로였다.

"하면 안 되는 일들을 했다. 공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했다. 인정한다. 나는 철이 없었고, 어리석었다. 물론 오해도 있다. 억울했던 것도 있다. 그래도 제일 잘못된 건 나 자신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내가 늘 책임져왔다. 욕을 먹고 꾸지람 당하고 벌을 받았다. 가끔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알려지는 건 아쉬웠다. 하지만 내가 그것 또한 내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거다."

10년 전, 축구판에 발을 디뎠을 때 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이천수는 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라고. 흔히 이 판에서 말하는 '야마(주제)'를 잘 던져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천수는 누구나 가슴에 품을 수 있지만 감히 바깥으로 내보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겁 없는 아이였다.

프로축구는 학교가 아니다. 선수는 학생이 아니다. 폭력적인 말, 차별적인 말 그리고 야만적인 말이 아니라면 허용될 수 있는 세계다. 하지만 이천수 이전에는 모두 일정한 선을 넘으려 하지 않았다. 물론 가끔씩 예외적인 '사고'는 있었을 것이다. 주제 무리뉴의 어법에 환호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국내에서 나오면 '입만 살았다'고 평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천수가 축구계 전면에 등장하면서 이 세계의 어법은 바뀌었고, 허용되는 말의 수위(선)도 올라갔다. "말디니의 머리를 일부러 걷어찼다", "서울이 언제부터 강팀이었다고"와 같이 여전히 회자되는 말들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각 발언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분명한 것은 이천수 때문에 축구가 주목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축구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이천수에게 크고 작은 빚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이천수도 축구에 빚을 졌다). 이천수가 허용되는 선을 저 멀리까지 확장시켰기 때문에, 그의 동료나 후배들은 좀 더 편안하게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그의 발언에 대리만족을 느낀 이들도 있을 것이다. 후배들이 이천수를 따르는 이유가 축구를 잘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이천수가 말로만 우리를 즐겁게 한 것은 아니다. '2002 한일월드컵'과 '2006 독일월드컵'에서 보여준 그의 기량은 여전히 빛을 잃지 않았다. 세계적인 수비수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드리블과 날카로운 프리킥은 한국의 강력한 무기였다. 독일월드컵에서 토고를 상대로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넣었을 때, 환호하지 않았던 한국인이 있었을까.

스페인과 네덜란드 리그에서 방황하던 때도 나름 의미가 있다. 모두가 자신의 실패를 포장하기에 바쁜데 이천수는 자신의 실책을 순순히 털어놨다. 선수는 성공으로만 누군가에게 의미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은 성공만 거듭하는 이에게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박탈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천수는 자신도 보통사람이었음을 인정하며 또 다른 의미를 줬다.

"언어, 생활 문제에 부딪히고 성격도 안 맞았다. 외로운 것도 힘들었다. 그때 참았어야 했다. 버텼어야 했다. 나 스스로 너무 힘들다고 해서 한국을 그리워했다. K리그에서 이미 성공을 해서 그런지 그걸 계속 마음속에 갖고 있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니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힘들 때 너무 일찍 포기했던 것 같다."

이천수가 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박지성에 관한 것이다. 여전히 이어져오는 논쟁 중 하나가 박지성과 이천수 중에 누가 더 축구를 잘하냐는 것이다. 이에 이천수는 완벽한 답을 제시한다. 필자와 대면했을 때 이천수는 이렇게 말했다. "(박)지성이형이 축구를 훨씬 잘한다. 맨유에서 아무나 계속 뛸 수 있는 게 아니다. 실력은 생활과 모든 것을 합한 종합적인 것이다."

"그래도 기술은 내가 더 낫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했더라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지성이 프리킥으로 득점을 올리고, 화려한 기술을 올리는 선수는 아니지 않나. 하지만 이천수는 실력이라는 게 그런 부분적인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고백이다.

이천수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떠 있는 영웅이 아니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일찍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방황도 했고 사고도 쳤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다. 축구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희로애락을 모두 보여줬다. 그럴 때마다 당당했다. 인간 이천수에 관해서는 감히 이야기할 수 없지만, 축구선수 이천수는 분명히 큰 의미가 있다.

해설자 데뷔하는 그의 두 번째 인생을 기대한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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