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F 칼럼] 김동현, 대놓고 "UFC 서울서 매미 되겠다" 예고한 이유?

이교덕 기자 2015. 11. 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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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2004년 9월 11일 스피릿MC 5가 열린 서울 장충체육관, 사쿠라바 가즈시의 등장곡 '스피드2 TK 리믹스'가 울려 퍼졌다. 수더분하게 보이는 길쭉한 한 청년이 노란색의 이소룡 '쫄쫄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등장해 호기롭게 쌍절곤을 돌리기 시작했다.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띄우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이 청년은 뜬금없는 뒤돌려차기까지 선보였다.

그런데 관중들은 냉담했다. '쟤, 뭐하는 거지?' 이런 반응이었다. 차가운 공기에 청년은 쭈뼛쭈뼛했다. 결국엔 창피한 듯 얼른 트레이닝복을 벗고 링으로 향했다. 함께한 세컨드들도 부끄러웠는지 허탈하게 쓴웃음을 지었다.

프로 두 번째 경기에 나선 신인 김동현(33·부산 팀매드)의 화려한(?) 등장 퍼포먼스 추억. 이후 다시는 등장 퍼포먼스를 하지 않았다는 슬픈 전설이 내려온다.

당시 김동현은 직접 트레이닝복과 쌍절곤을 구입하는 등 퍼포먼스에 큰 공을 들였다고 한다. 10년이 지나 한 인터뷰에서 "사쿠라바를 좋아해서 그처럼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 부끄럽기도 하다"며 "우리나라 종합격투기 초기에는 그런 퍼포먼스가 거의 없었다. 내가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물론 뒤돌려차기는 정말 아니었다"며 웃었다.

누구에게나 '흑역사'는 있는 법이다.

2011년 1월 2일 UFC 125에서 김동현은 네이트 디아즈를 판정으로 꺾었다. 옥타곤 5승째였다. 그가 조 로건과 옥타곤 인터뷰에서 던진 말은 "땡큐 UFC 팬. 마이 네임 이즈 스턴건. 아이 원트 GSP!(Thank you UFC fans. My name is Stungun. I want GSP!)"였다. 준비한 전략은 무엇이었는지 묻는 로건의 질문과는 전혀 관계없던 GSP(조르주 생피에르) 발언, 관중석에선 야유가 나왔다. 감격에 겨웠던 그는 정신이 없었는지 인터뷰 내내 횡설수설했다. 이것도 웬만하면 잊고 싶은 기억이다.

2011년 7월 3일 UFC 132에서 카를로스 콘딧에게 KO패한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떠올리기 싫은 장면이 아닐까. 김동현은 콘딧의 플라잉 니킥을 맞은 뒤 쓰러졌고 파운딩 연타에 눈이 풀려 1라운드 2분 58초 만에 패했다. 2004년 4월 프로 데뷔한 이후 첫 번째 패배였다. 야속하게도 UFC 명장면 가운데 하나로 자주 꼽힌다. 잊을 만하면 나오고, 잊을 만하면 나온다.

"2003년 투혼 정심관을 무작정 찾아가 선수로 등록해 달라고 했었다. 자신감이 과해 '지금 프로 대회에 나가도 다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선배들이 어이없어 했다. 개념이 없었다. 지금도 UFC 가면 다 이길 수 있다고 하면서 체육관을 찾아오는 분들이 있다. 두들겨 맞고 조용히 돌아간다", "2005년 종합격투기를 그만두겠다고 결정하고 보안업체나 PC방 아르바이트 등 별의별 일을 다 해 봤다. 너무 힘들어서 한 달 만에 그만두곤 했다", "2007년 프라이드와 계약을 했는데, 프라이드가 갑자기 공중 분해됐다. 꿈꿔오던 무대가 사라지니 허탈했다."

12년차 프로 파이터 김동현은 굽이굽이 고개를 여러 번 넘어 여기까지 왔다.

물론 평생 기억하고 싶은 순간도 많다. 2007년 8월 5일 일본 딥(DEEP)에서 챔피언 하세가와 히데히코에게 3라운드 KO승하고 프로 9연승, 일본 무대 7연승을 달렸다. 김동현이라는 이름 석 자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프라이드가 망하고 갈 곳을 잃은 김동현은 2008년 스피릿MC와 계약하려고 했지만, 예상치 않게 UFC 계약 요청을 받게 됐다. 그때를 생각하면 "스피릿MC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날, UFC에서 연락이 왔다. 만약 스피릿MC와 계약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며 웃는다. 행운도 따랐다.

김동현 파이터 인생 최고의 명경기는 2013년 10월 10일 UFC 파이트 나이트 29에서 가진 에릭 실바 전이었다. 당시 UFC에는 퇴출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친한 동료 일본의 오카미 유신은 당시 최근 5경기 전적이 3승 2패로 준수했는데도 방출됐다. 김동현과 같은 그래플러들은 몸을 사려야 했다. '적색경보'였다.

그래서 그는 '매미'에서 '스턴건'으로 돌아갔다. '묻지마 태클'로 상대를 그라운드 지옥으로 끌고 가던 스타일에서 180도 변화를 줬다. '닥치고 돌진' 전략으로 무조건 상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펀치를 던지고 클린치 싸움을 걸었다.

예상치 못한 변화에 당황한 실바는 김동현의 강력한 왼손 펀치에 정신을 잃고 대자로 누웠다. 500전 이상 소속 선수들의 경기를 함께해 온 팀매드의 양성훈 감독도 "내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승리였다"고 회상하는, 우리나라 종합격투기 역사에 남을 경기였다.

2014년 3월 1일 TUF 차이나 피날레에서 메인이벤트에 선 김동현은 존 해서웨이를 3라운드 1분 2초에 백스핀 엘보로 쓰러뜨렸다. UFC에서 처음으로 뛴 메인이벤트 경기에서 거둔 2연속 KO승. 더군다나 삼일절에 따낸 승리에 김동현은 마카오를 찾은 우리나라 팬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는 28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UFC 파이트 나이트 서울 대회(UFC FIGHT NIGHT SEOUL)'야말로 인생 최고의 기억으로 남길 것이라고 기대한다. 첫 UFC 대회인데다가 김동현이 11년 만에 치르는 우리나라 경기다.

김동현은 "국내에서 활동해온 파이터들은 국내에서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이지만, (함)서희나 나처럼 적지에서 줄곧 경기해온 선수들은 우리나라에서 싸우면 많은 분들의 관심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평생에 남을 첫 번째 UFC 한국대회에서 최상의 기량으로 팬들과 승리의 기쁨을 함께하겠다"고 한다.

반드시 승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엔 대놓고 매미가 되겠다고 공언한다. 지난 5월 UFC 187 조시 버크맨 전처럼 순도 높은 그래플링 공방전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화끈한 경기는 벤 헨더슨, 미르코 크로캅, (추)성훈 형에게 맡기겠다. 난 이기는 경기를 하겠다"고 뻔뻔하게(?) 말했다.

상대 호르헤 마스비달은 38전 29승 9패의 타격가다. 11번의 KO승이 있다. 최근 5경기에서 4승 1패로 상승세다. 지난 7월 웰터급으로 돌아와 세자르 페레이라를 1라운드 4분 22초 만에 쓰러뜨렸다. 타격으로 맞불을 놓기엔 부담이 있는 상대다.

"마스비달은 지금까지 내가 싸워 온 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파고들면 다른 내용이 많겠지만 큰 틀에선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 약점이 있는 선수로,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위험성이 적다. 자신감을 갖고 내 스타일대로 경기를 이끌어 갈 계획"이라는 김동현은 "내가 마스비달을 넘길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상대 역시 테이크다운 방어 훈련을 많이 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전략을 숨길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나와 싸운 상대 역시 내가 태클을 시도할지 알고 있었다. 연습을 안 해 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넘어갔다. 마스비달 역시 훈련을 해도 안 된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라며 대놓고 태클을 노리겠다고 밝혔다.

베이브 루스의 예고 홈런과 다를 바 없다.

도발성 멘트도 아끼지 않는다. "마스비달은 올림픽 체조경기장의 천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온전한 얼굴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그는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난 마음이 약한 편이라, 착한 선수들은 부드럽게 대한다. 상위 포지션에서도 팔꿈치를 사용하지 않고 좋게 좋게(?) 판정으로 끌고 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팔꿈치를 충분히 활용할 생각"이라고 했다.

관중들의 기에 눌려 쭈뼛쭈뼛하는 청년 김동현은 이제 없다. 주말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예능감을 뽐내는 방송 베테랑 김동현이 있을 뿐이다. 감정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김동현도 없다. 상대가 도발하면 배로 되갚아 주는 '센스 만점' 김동현이 됐다. 마스비달이 인스타그램에 자신은 핏불에, 김동현은 푸들에 비유하는 사진으로 약을 올리려고 하자, 김동현은 마스비달을 자신의 애견 '봉봉'에게 먹이로 주는 합성사진과 함께 '봉봉아 먹어!!(마스비달이 먼저 했음)'이라는 글로 받아쳤다.

지우고 싶은 기억도, 간직하고 싶은 기억도 쌓으며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그가 나중에 선수 생활을 추억할 때, 오는 28일을 가장 잊을 수 없는 날로 만드려고 한다. 1만5,000명 관중의 응원에 11년 만에 나선 국내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그는 이날의 기억을 평생 간직할 것이다.

그래서 팬들에게 부탁의 말을 전한다. "2002 월드컵 축구에서처럼 한국팬들이 전부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이나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친다면 짜릿할 것이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나 한 사람을 위해서 모두 응원가를 불러준다면 감격할 것 같다"며 "브라질이나 영국엔 자신들만의 특별한 응원가가 있다. 상대를 위축되도록 만든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김!동!현!'을 외쳐주시기보다 상대의 기가 꺾일 만한 응원가를 함께 불러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리나라 팬들의 열렬한 환호가 있다면, 그는 오래 전 서랍 속 깊이 넣어둔 이소룡 트레이닝복을 다시 꺼낼지 모른다. 그때는 뒤돌려차기를 해도 응원가가 올림픽 체조경기장을 가득 채우지 않을까?

[사진] 한희재 기자 [그래픽] 김종래 제작 [영상] 송경택 편집 ⓒ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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