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천만에, 류 감독. 당신 말은 틀렸습니다

조회수 2015. 11. 2. 09: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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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시즌 때 경기 후 인터뷰는 의무다. 이긴 팀 감독에게는 물론이고, 패장에게도 해당된다. 순서는 언제나 진 팀이 먼저다. 물론 업자끼리의 배려다. 괴로운 자리에 1분이라도 더 있고 싶겠나. 빨리 하고 보내드리겠다는 취지다.

어찌 보면 잔인한 자리다. 간혹 철 없는 기자가 "패인이 뭡니까?" 따위를 직설적으로 묻다가 눈총을 받는다. 가급적 에둘러 묻고, 꼭 필요한 질문만으로 얼른 끝내는 게 상도의다.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질문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패장은 쿨했다. "완패였습니다." 쉽게 입에 올리기 어려운 '완패'라는 말을 두어 차례나 했던 것 같다.

서너 번 문답이 오갔다. 잠시 다음 질문의 간격이 생겼다. 그러자 인터뷰어가 되물었다. "됐습니까? 그럼 이만 하시죠." 그리고 일어서며 귀를 의심할 멘트를 남겼다. "빨리 가서 두산 축하해줘야지요."

2015시즌 최고의 한 컷

라소다 할아버지가 말한 그날이었다.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나는 날"이라던…. 그런가? 누구에게는 슬프고, 누구에게는 기쁘고 후련한 날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참 다사다난했다. 유독 사건사고도 많았고, 갈등과 화해가 어우러졌던 시즌이었다. 깜짝 놀랄 반전도 있었고, 감동적인 컴백도 있었다. 그 무수한 순간 중에 <…구라다>는 올 시즌 최고의 한 컷으로 단연 이 장면을 꼽는다.

여러 매체들의 보도로 이미 유명해진 장면이다. 그라운드는 두산 나인들의 차지였다. 한 켠에 삼성 선수들이 도열해 그들의 파티에 예를 갖추고 있다.

이 컷의 기획/연출자는 알려진대로 류 감독이다. 몇년 전 아시아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패자인 일본 팀(소프트뱅크)의 아키야마 고지 감독과 선수들이 끝까지 남아 축하해준 데서 받은 감명을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헹가레와 꽃가루와 샴페인을 봐야 했다. 무엇보다 유희관에게 붙어 있는 반창고까지 생생하게 목격하는 능멸(?)을 당해야 했다.

2등도 폼나고 멋있을 수 있다

기자회견에서 패장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의 2등은 비참하다. 선수 때 너무 많이 겪어봤다. 프로는 1등이 돼야 하는데 2등이 되면 비참하다."

당연하다. 맞는 말이다. 어떤 면에서 2등은 최악이다. 가장 늦게, 가장 큰 게임에서 지기 때문에 충격은 최대치다. 심지어 꼴찌보다 못할 때도 많다. 최하위 감독은 멀쩡해도, 준우승 팀에서는 풍파가 생기는 경우가 허다한 것도 그 때문이다(물론 류 감독의 경우는 단연코 아니겠지만).

특히나 그들은 더 아팠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지킨 페넌트레이스 1위의 이득을 누려보지도 못했다. 1차전 극적인 역전승의 분위기도 이어가지 못했다. 마카오 스캔들의 흠결을 메우지도 못했다. 그리고는 무기력한 4연패를 당했다.

그럴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치욕적이었다. 스스로 자부하듯이 21세기 최강 팀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준플레이오프부터 허덕허덕 올라온 '겨우' 3위 팀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그의 말마따나 비참하기 그지 없는 패배였다.

하지만 그 한 컷은 모든 팩트를 압도했다. 패배도, 굴욕도, 아픔도.

무려 20분간이었다. 기나긴 우승 세리머니 동안 2등의 모습은 너무나 강렬했다. 샴페인도, 꽃가루도, 갈채도 없었다. 묵묵히 서서 박수를 보내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장면의 공동 주연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2등은 비참하다"던 그의 말은 틀렸다. 때로는 훨씬 더 폼나고, 멋있는 패배도 있었다. 그와 그의 팀은 스스로 그걸 증명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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