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타인의 시선] U-17 월드컵이 남긴 숙제, 교육의 일관성

조회수 2015. 10. 31. 13: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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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만 다녀오면 애가 이상해져요"

취재하다 만난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와 학교나 클럽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선지도자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이다. 전임지도자는 선수가 학교에 다녀오면 움직임이 달라진다고 이야기하고, 일선지도자들은 대표팀만 다녀오면 무언가 바뀐다고 이야기한다.

이 문제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한국 유소년 축구가 지속적으로 겪어왔던 것이다. 전임지도자가 옳은 방식으로 지도하고, 일선지도자가 그른 방식으로 가르친다는 의미가 아니다. 양측, 더 나아가 한국 유소년 교육이 통일된 철학과 교육방법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이다. 각자의 방식이 모두 옳을지라도 양측을 오가는 아이들에게는 혼란을 줄 수 있다.

각 팀에서 쓰는 전술과 전략은 다를 수 있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교육의 통일은 그보다 더 고차원에 대한 것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선발하고, 연령대별로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중점적으로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해서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한국 축구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 그래야 어린 아이들이 사는 곳이 바뀌고 소속 팀이 바뀌어도 방황하지 않을 수 있다.

한국 축구가 좋은 선수들을 계속 배출하면서도 전체적인 수준에서는 세계의 벽을 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차범근과 박지성 그리고 손흥민이 등장해서 세계적으로 주목 받았지만, 여전히 한국적인 축구 혹은 한국축구의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유소년 교육 시스템의 질을 따질 필요도 없이, 일관된 교육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더 옳은 지를 따지자는 말은 아니다. 정책수립 과정부터 축구협회와 구단의 유소년 관계자 그리고 학교의 지도자들이 모두 모여서 토론하며 전체적인 틀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가 의논하고 합의해서 틀을 만들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그 틀대로 아이들을 교육해야 한다.

벨기에의 전임지도자이자 U-17 대표팀 감독(바로 우리를 이겼던) 밥 브로웨이스는 지난해 '풋볼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이웃인 프랑스가 우승을 차지하고, 또다른 이웃인 네덜란드가 4위를 차지한 이후 벨기에 유소년 정책을 대대적으로 손봤던 과정을 설명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일관성과 시간이었다.

"처음 철학을 세우고 계획을 짤 때부터 주요 구단의 유소년 관계자들이 모여 토론하며 함께 만들었다. 클럽들과의 협업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다. 그들이 직접 만든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시킬 필요 없이 우리의 유소년 교육 방침을 따르고 있다. 청소년 대표팀, 지도자 교육 과정, 각 구단별 유소년 팀에서 모두 같은 시각을 공유했다. 그 기간이 15년 정도였다. 15년은 7, 8세가 22, 23세로 성장하는 기간이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나야 유소년 정책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10년이다. 벨기에엔 10년 넘게 유소년 축구계에서 일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지속성 있게 비전을 추구할 수 있었다. 철학을 세우는 것보다 오래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틀을 정한 이후에는 적어도 10년 정도는 유소년을 가르칠 수 있는 적합한 지도자를 선발해야 한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적어도 협회 전임지도자들은 10년 이상 같은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선수들을 일관된 방식으로 선발하고 지도할 수 있다. 브로웨이스 감독도 U-17 대표팀을 9년 동안 맡고 있다. 그 자리는 성적을 내는 자리가 아니라 가르치는 자리다. 한국에서는 아직 전임지도자가 다음 단계를 위한 디딤돌로 인식되고 있다.

선수들을 선발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지금까지 한국의 유소년 교육은 지금 이기는 데 집중해 왔다. 아이들에겐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 중요한데, 지금 이기려다 보니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많았다. 벨기에에서 괜히 선수들을 선발할 때 성격과 정서적 안정성, 현명한 의사결정능력을 보는 게 아니다. 근력은 성장이 끝난 뒤에도 기를 수 있지만, 창의적인 능력은 이후에 키울 수 없다.

프랑스는 '1998 프랑스월드컵'과 '유로2000'에서 우승하며 각광을 받았다. 이후 그들의 교육기관인 '클레르퐁텐'이 주목 받았다. 하지만 프랑스 축구는 이후 15년이 넘게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다가 이제야 폴 포그바와 같은 선수들을 키워내며 가능성을 인정 받고 있다. 이들의 방황은 클레르퐁텐의 실책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클레르퐁텐이 한동안 신체능력이 좋은 선수들에만 집착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협회와 지도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일관된 틀을 만들고 지금 당장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긴 시간을 두고 투자하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10년이 아주 긴 시간이 아니다. 지금 당장 유소년 시스템을 바꾸고 10년을 투자하면, 2015년에 처음으로 키워낸 선수가 34살의 손흥민과 같이 대표팀에서 활약할 수 있다. 한 번 제대로 틀을 잡으면 그 이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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