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들숨날숨] 이승우, 겸손한 만민평등 스포츠 축구를 배우다

조회수 2015. 10. 30. 14: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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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 생애 첫 번째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아쉬운 감정이야 어쩔 수 없으나 나쁜 결과는 아니다. 브라질 꺾고 잉글랜드 떨어뜨리며 16강에 올랐다. 실패도 아니다. 마침표는 더더욱 아니다. 앞길 창창한 이승우의 긴 축구여정을 생각한다면 징검돌을 하나 밟았을 뿐이다. 돌을 보다 멀리 던져놓고 싶었겠으나 8강이나 4강에 올랐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훗날 돌아봤을 때 2015년 17세의 나이로 또래들과 나갔던 칠레 대회는 과정이고 추억일 뿐이다. 한두 걸음 더 나갔다고 해서 궁극적인 지향점에 빨리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지금은, 도약을 위해 힘껏 밟을 수 있도록 징검돌을 '바르게' 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후속작업의 중요성이다. 대회를 앞뒀을 때보다 세심한 관리가 있어야한다.

벨기에전이 끝난 뒤 이승우는 필드에 엎어져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페널티킥 실패까지 합쳐져 더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승우를 위해 여러모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 세상이 이승우에게 '축구'를 가르쳐줬다. 모순된 이야기다. 이승우는 어려서부터 축구를 했고 축구를 잘하는 이들만 합류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 소속이다. 하지만 '스킬'과는 다른 문제다. 드리블과 슈팅이 축구의 전부는 아니다.

축구는 겸손한 스포츠다. 아무리 잘해도 혼자서 원맨쇼를 펼치기는 어렵다. 메시와 호날두처럼 특이한 경우가 가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기는 하지만, 결국 11명이 힘을 합칠 때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종목이다. 이승우는 팀의 힘, 팀의 소중함을 칠레에서 배웠다.

내가 골을 넣지 않아도 팀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브라질과의 1차전, 기니와의 2차전을 통해 깨달았다. 자신이 최전방에서 공을 잡아 슈팅을 시도하지 않아도, 동료들에게 볼을 공급하는 연결고리 역할에 충실해도 브라질이라는 대어를 잡을 수 있음을 1차전에서 확인했다. 스타의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조연의 임무를 숙지한 이승우는 앞에서 수비 가담에 충실하면 뒤에 있는 동료들이 수월해질 수 있다는 것을 기니와의 2차전에서 경험했다.

팀에 대한 소속감, 동료애의 따뜻함도 느꼈다. 다 같이 눈물인 듯 땀인 듯 동고동락했을 때의 행복을 깨달았다. 한 팀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비단 선수들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님도 알았다. 대회 기간 중 대한축구협회는 선수들에게 김치찌개를 먹었다. 한국 음식이 그리울 이들을 위해 어렵사리 김치를 공수해 제공한 것인데, 모든 선수들이 신나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맛있게 먹던 이가 이승우다.

이승우는 연방 감탄사를 내뱉는 등 다소 과한 리액션과 함께 정신없이 찌개에 밥을 말아 먹었다. 준비해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한 일종의 너스레였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그래서 선입견이 무섭다. 승부욕이 강한 플레이만 보고 '버릇없다' '이기적이다'는 말이 많았는데 의외로 따뜻하다. 딱 그 나이답다. 천진난만한 10대"라는 경험담을 전했다. 뻣뻣할 것 같았던 이승우는 누구보다 먼저 스태프에게 다가갔다는 후문이다.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님을, 11명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님을 느꼈을 대회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선수도 '실수'라는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기 힘든 문제와 직면하면 초라해진다는 것도 느꼈다. 이승우의 페널티킥 실축은, 경험 부족과 맞물린 실수였다. 잠시 멈칫했던 것은 골키퍼를 따돌리고 싶었던 이승우의 선택이다. 이승우가 공을 보내고 싶었던 방향은 보다 구석이었을 것이다. 실축이다. 하지만 이게 축구다.

축구는 실수가 자연스러운 스포츠다. 모든 이들이 잘하기 위해 훈련을 하지만 모순되게도 실수가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빈도를 따질 때, 축구에서 골이 나오는 확률은 한쪽이 잘해서보다 다른 쪽이 못했을 때가 더 많다. 이성의 통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신체부위인 발을 주로 사용해 둥글고 큰 공을 차는 플레이가 축구라는 종목의 근간이다. 부정확해야 정상이다. 실수가 나올 수 있는 배경들이 수두룩하다. 골키퍼와 스로인 등이 아니면 공을 손으로 잡아 던질 수 없다.

아직도 K리그에서 가장 골을 잘 넣는 공격수로 꼽히는 이동국은 "물론 자신이 원하는 궤적으로 슈팅이 나오면 정말 짜릿하다. 하지만 드물다. 생각했던 것보다 높든지 낮든지 옆으로 간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면서 "빗나간 슈팅도 골이 될 수 있고 잘 찬 슈팅은 막힐 수 있다. 공격수가 실수하든 골키퍼가 실수하든, 실수로 골이 나올 확률이 높다"는 뜻을 전했다. 천재도 실수한다. 우쭐하는 순간 발을 헛딛는다. 모두가 똑같다.

마지막 위로는 스스로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작은 체구에 대한 부분이다. 이승우의 하드웨어는 다소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던 게 사실이다. 힘 싸움에서 이겨내는 빈도가 떨어졌다. 과거 박지성이 유럽 무대에 처음 진출했을 때 왜 웨이트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 오버랩 됐던 장면들이 많았다. 물론 몸집을 키우는 게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체질상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체질을 비롯한 선천적 조건이 반드시 한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축구는 만민평등을 실천하는 종목이라 생각한다. 타고난 신체 조건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스포츠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두 다리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하다. 심지어 건강하지 않은 다리로도 최고가 될 수 있음을 과거 가린샤라는 슈퍼스타가 증명하기도 했다.

펠레와 함께 1950~1960년대 최강 브라질을 이끌었던 가린샤는 등뼈가 굽어 있었다. 오른쪽 다리는 안으로, 왼쪽 다리는 밖으로 휘어 있었다. 왼쪽 다리가 반대편보다 6cm 가량 짧은 통에 제대로 된 걸음걸이도 쉽지 않았다. 소아마비의 영향이었다. 세상의 눈으로는 보기에 흉측하니 일반적인 생활도 불편했을 조건이다. 하지만 가린샤는 적어도 필드에서만큼은 그보다 아름다운 이가 없었다.

불편한 몸으로 어찌 가능할까 싶은 주력을 지녔었는데, 마치 지금 선수들처럼 스피드를 살린 방향 전환을 트레이드마크처럼 보여줬다. 그의 드리블은 획기적이고 파격적이었다. 당시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플레이에 상대는 속수무책이었다. 굽은 다리로 인한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속임 동작에 활용했다.

가린샤를 생각한다면 키가 작은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는 거의 종교적인 마라도나의 키는 165cm 정도다. 가린샤와 마라도나는 돌연변이가 아니라 노력의 결실임을 후배 리오넬 메시가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메시의 키는 프로필상 169cm였다. 그보다 작아 보인다. 메시 역시 어렸을 때 선천적 장애로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은 케이스다.

물론 작은데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보다 키 크고 잘하는 선수들이 더 많다. 가린샤나 마라도나나 메시는 표본으로 삼기에는 너무 거대한 인물이기는 하다. 하지만 다른 예도 많다. 이태호와 김은중과 곽태휘의 공통점은 모두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지성은 평발에 가깝다고 한다. 장애도 핑계인데 체구가 다소 작은 것은 일도 아니다. 베짱이가 아니라면 가능하다. 이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베짱이는 불가능할 수 있다.

당장은 아팠겠지만 덕분에 많이 배웠다. 고맙게도 세상이 열일곱 축구 선수에게 많이 가르쳐줬다. 축구는 같이 하는 것이라 어지간한 어려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우샤인 볼트가 드리블을 해도 패스보다 빨리 상대 진영까지 가기는 어렵다. 앞이 꽉 막혔다고 생각했을 때 패스를 하면 앞이 쉽게 열린다. 이번 칠레 대회가 앞길이 구만리인 이승우에게 겸손한 만민평등 스포츠인 축구를 가르쳐주었다. 축구를 알아야 진짜 보석이 될 수 있다. 축구를 안다고 자만했다가 그냥 돌멩이에 그쳤던 재능들이 수두룩하다.

글= 임성일[뉴스1 스포츠부/lastuncle@daum.net]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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