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구심은 왜 장원준의 몸쪽에만 관대했나

조회수 2015. 10. 30. 10: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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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에 앞서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이 글은 심판의 판정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명확히 한다. <…구라다>는 이전에도 몇차례 밝혔다. 판정 문제는 결코 즐거운 소재가 아니다. 더우기 심판 탓에 경기가 어찌 됐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방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누굴 봐준다'라든지 '장난친다' '특정 팀에 편향됐다'는 식의 접근에는 별 흥미를 못 느끼겠다. 큰 설득력도 없고,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의 출발은 오래 전부터다. 예전 가을 야구 때면 단골처럼 불거지는 논란이 심판 문제였다. 몇몇 야구인들의 낡은 방식이었다. 목에 핏발 세우고, 격한 행동도 서슴치 않았다. 관중과 팬들을 볼모로 잡고 여론전을 붙이기 일쑤였다. 그걸로 불리한 국면을 바꿔보겠다는 구시대적 발상이었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잔치는 클래식(고전)이 되지 못했다. 그냥 이기기 위한 싸움판일 뿐이었다. 그런데 비하면 요즘, 특히 이번 시리즈를 치르는 양쪽 감독과 선수단에는 경의를 표한다. 내키지 않는 대목이 제법 있었을텐데, 끝까지 인내심을 지키는 모습은 갈채받아 마땅하다.

3차전을 지배한 장원준의 몸쪽 공

어제(29일) 3차전은 장원준의 경기였다. 압도적이었다. 1회 잠시 비틀거린 것 외에는 무결점이었다. 덕분에 상대 타선은 기를 펴지 못했다. 말 그대로 제대로 '긁히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빠른 스피드, 면도날 같은 제구는 아트의 경지였다.

특히나 압권은 오른쪽 타자의 몸쪽(왼쪽 타자의 바깥쪽)을 뚫는 빠른 볼이었다. 140㎞대 중반을 오가는 강력함이 무릎 쪽에 박혔다. 타자는 움찔하면서 피하기 바빴다. 그러나 구심의 콜은 냉정했다. 공략할 수 없는 무기였다.

이 공은 전가의 보도였다. 장원준-양의지 배터리의 볼배합은 모두 여기서 변환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서 휘어지게(슬라이더) 하고, 떨어트리며(체인지업) 타이밍을 뺏고. 멀리 밖으로 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오고. 조금 보태서 말하면 원정 팀 타자들은 '몸쪽'에 대한 걱정만 하다가 끝나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상대 투수 클로이드다. 그도 여러차례 오른쪽 타자 몸쪽에 각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특히 주자가 있는 위기 상황에서는 더 그랬다. 그러나 웬만해서는 심판의 콜을 얻어내지 못했다. 당시 중계방송한 KBS가 제공한 그래픽에서도 드러났다. 장원준의 몸쪽 공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표시된 구역에서 약간 벗어난 것도 콜을 얻어냈다. 반면 클로이드의 투구는 그 보다 가까워도 구심이 외면했다.

물론 TV 중계방송 때 나오는 그래픽과 실제 구심이 적용하는 존은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미국도, 일본도 그렇다. 조금 벗어나는 것에 손을 들기도 하고, 완전히 들어온 것을 안주기도 한다. 심판마다 각자의 존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한 심판의 존은 일정해야 한다. 그런데 어제는 두 투수에게 조금 달랐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에 대한 몇가지 추론을 해보려 한다. 그러나 말했다시피 '오심'이니 '편파'니 하는 설정은 제외해놓고 해석할 것이다.

양의지의 프레이밍 능력

일단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각도다. 장원준은 좌완, 클로이드는 우완이다. 그러다 보니 투구의 궤적이 다르다. 같은 코스라도 시각적으로 차이난다. 그게 판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충분한 설명은 아니다. KBS가 '스포츠투아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공한 그래픽은 존을 통과하는 순간을 기준으로 했다. 즉 각도나 궤적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뭘까? <…구라다>는 그 원인을 포수에게서 찾는다. 흔히 말하는 '미트질' 말이다. 미국에서는 '프레이밍(Framing)'이라고 한다. 쉽게 얘기하면 스트라이크처럼 보이게 잡는 기술이다. 즉 애매하게 걸치는 공이라면 포구 능력에 따라서 스트라이크를 받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포수가 갖춰야 할 수비 능력은 여러가지다. 볼배합, 도루 저지, 블로킹 등등. 이 중 볼배합은 벤치나 투수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도 있다. 도루 저지는 투수의 영향(퀵모션/슬라이드 스텝)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프레이밍은 순수한 포수 개인의 능력이다. 그리고 점점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항목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몰리나 3형제(벤지, 호세, 야디에르)가 유명하다.

물론 세분하면 프레이밍도 다양하다. 낮은 볼을 잘 채주는 포수가 있는 반면, 바깥쪽 빠지는 데 강한 포수, 몸쪽을 잘 받쳐주는 포수가 있다.

양의지의 이날 완벽한 몸쪽 프레이밍은 보여줬다. 특히 그의 미트는 좌투수가 붙일 수 있는 최대각을 잡아냈다. 약간 빠지는듯한 공도 구심의 마음에 쏙 들도록 당겨줬다. 초반에 몇 개 성공하자, 장원준은 날개를 달았다. 전가의 보도였다. 막히면 몸쪽에서 다 풀렸다. 알아도 공략이 안되는 코스였다.

PO 5차전 때도 같은 구심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지 모르겠다. 장원준은 다이노스와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도 눈부시게 던졌다. 그때도 몸쪽 꽉 찬 공이 주효했다. 반대로 상대 투수 스튜어트는 내내 인코스에 애를 먹었다. 그러다가 결국 거기에서 무너졌다.

이쯤 되면 눈치 채시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당시도 구심은 어제와 같은 사람, 최수원 씨였다. 포수는 물론 양의지였다.

다시 부언한다. 판정에 대한 시비를 걸자는 게 아니다. 그리고 추호도 장원준의 빛나는 투구를 폄훼할 의도도 없다.

프레이밍은 기술이다. 그리고 그곳에 계속 던질 수 있는 것도 투수의 능력이다. 포수와 투수는 그날 구심의 존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300승 투수 톰 글래빈(역시 좌투수다)이 그랬다. "난 올라가면 구석구석 던지며 그날의 존을 판단한다. 같은 심판이라도 날마다 약간씩 변하기 때문이다. 그건 선발 투수의 책임이다."

장원준에게는 인생 경기였다. 127구에는 열정과 투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양의지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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