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타인의 시선] 16강 벨기에전, 승리보다 중요한 한 가지

조회수 2015. 10. 28. 21: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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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내지 못하면 좋은 감독이 아니다. 그러나 난 선수들의 능력을 발굴하고 발전시키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이 두 문장 중에 더 중요한 문장은 어느 것일까?

내가 준비한 대답은 두 가지다. 성인대표팀이라면 첫 번째 문장, 유소년대표팀이라면 두 번째 문장이 더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앞서 인용한 문장에서는 두 번째 문장을 더 유심히 봐야 한다. 벨기에 17세 이하 대표팀 감독 밥 브로웨이스가 한 말이기 때문이다.

말장난은 아니다. 경기하면 이겨야 한다. 하지만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경기는 하나의 결과이면서 하나의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런 결과이자 과정인 경기를 치르는 이들이 완성된 선수가 아닌 유소년 선수라면,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더 의미를 둬야 하지 않을까?

브로웨이스 벨기에 감독은 9년 동안 U-17 대표팀을 이끌어왔다. 성적은 신통치 않다. 월드컵에도 이번을 포함해 두 번 출전한 게 전부다. 벨기에는 이번 대회에서 1승 1무 1패로 D조 3위를 차지했다. '형들보다는 전력이 좋지 않다'는 평은 과장된 게 아니다(물론 벨기에는 세계 1위 등극을 앞두고 있지만). 2007년 한국 대회에서는 1승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가 한국 감독이었다면 이번 대회까지 지휘봉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연령별 대표팀 감독이 9년 동안이나 지휘봉을 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없고, 큰 대회에서 성적을 내지 못한 감독이 오래 감독직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브로웨이스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도 'FIFA'와의 인터뷰에서 큰소리를 '뻥뻥' 친다.

"선수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플레이를 하게 하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이 선수들이 프로선수로 성장하고, 성인 월드컵에 나갈 수 있는 선수로 만드는 것에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브로웨이스의 큰소리는 자기방어가 아니다. 벨기에 축구협회의 유소년 대표팀 관리 방식이 그렇다. 이들은 당장 성적이 아니라 유소년 선수들을 더 좋은 기량을 가진 성인 선수로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회도 중요하지만 더 큰 가치를 성장에 두고 있다. 그래서 지도자에게도 감독이 아닌 교육자의 역할을 맡긴다. 그리고 일관된 교육을 위해 지도자도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지난해 같은 회사 김정용 기자는 벨기에 현지에서 브로웨이스를 직접 만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벨기에가 주목하는 유소년 선수의 6가지 특징을 꼽았는데, 우리 기준과는 사뭇 달랐다. 앞서 언급한대로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위닝 멘털리티(이긴다는 자세), 성격, 정서적으로 안정성, 현명한 의사결정 능력, 가속할 때의 폭발력, 신체 지배력. 14세 때 기술이 좋다는 건 헤딩이나 롱킥을 열심히 연습했다는 뜻이 아니라,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자기 몸을 잘 다룰 줄 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신적 능력들과 함께 신체 지배력이 중요하다. 근력은 성장이 끝난 뒤 발달시킬 수 있으므로 중요하지 않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은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우승하는 것을 보고 유소년 교육체계를 뜯어고쳐 17년 만에 FIFA랭킹 1위를 차지했다. 조별리그 최하위로 2007년 한국대회에서 탈락했던 선수들 가운데는 낯익은 선수가 둘 있다. 에덴 아자르(첼시)와 크리스티앙 벤테케(리버풀). 이들은 당시에는 웃지 못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가 됐다.

20세 이하 월드컵은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그 밑 연령대 월드컵에서는 성적이 선수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은 끝없이 성장한다. 브로웨이스가 "내겐 유럽 대회나 월드컵이나 똑같다. 결국 성인 선수로 가기 위한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좋은 경험을 하는 대회라는 점이 중요하다"라고 말한 것에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린 선수들은 성적 자체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생각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승리는 상대가 잘하는 것을 못하게 만들어서 얻을 수 있기에 완전히 믿을 게 못 된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가려면 내가 잘하는 것을 통해 상대를 제압한다. 그런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유소년 단계에서는 승리보다는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2015 칠레 FIFA U-17 월드컵'에 참가한 한국 대표팀은 대단하다. 브라질과 잉글랜드 그리고 기니를 상대로 2승 1무의 성적을 거두고 조1위로 16강에 진출하다니.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성적만 좋은 게 아니다. 이들이 보인 경기력도 인상적이다. 전술적인 움직임과 필요할 때의 결정력까지. 최진철 감독의 지도력도 놀랍다.

U-17 대표팀 아이들은 벨기에에 이기든 지든 박수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축구계에 있는 어른들은 다른 고민을 해야 한다. 앞으로 8년 뒤에(2007년의 벨기에처럼)이 대회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유럽 명문구단에서 뛸 수 있도록 길을 놓아야 한다. U-17 대표팀이 우승을 해더라도 이 경험을 지닌 선수들이 좋은 선수로 성장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FC서울의 수비수 김진규는 후배 홍정호와 김영권을 보고 "얘들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두 선수는 U-20 대표팀 이전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사실은 의미 있으면서도 아프다. 협회 차원에서 어린 시절부터 관리한 선수들이 아닌 다른 선수들이 성공하는 건, 양쪽 모두에 아쉽다. 협회는 시간과 투자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고, 선수들은 더 성장할 값진 경험을 얻지 못한 셈이다.

어린 선수들에게는 항상 지금보다 내일이 중요하다. 현재가 아닌 미래의 실력을 키워낼 수 있는 유소년 시스템이 간절하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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