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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김경문 감독 - 치밀함을 운(運)에 숨기다

조회수 2015. 10. 20. 11: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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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MOON)이 떴다. 마산 하늘을 환하게 비췄다. 그가 그렇게 밝은 표정인 건 아주 오랜만이다. 본인 말마따나 올림픽 때보다도 기분 좋아 보였다. 승리의 순간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이 그랬다. 간결하고, 웬만해서는 들뜨지 않는 평소와는 달랐다. 특히 끌려가던 승부를 뒤집었던 8회말 장면에 대해서는 더했다. 짜릿한 역전승의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비기는 것 보다는 멋진 장면을 한 번 연출하고 싶었다. 베이징 올림픽 때 이상으로 고민했다. 홈 팬들에게 승리를 보여주고 싶어서 마음 속으로 빌었다." (히트앤드런에 대해)

"한 번 내봤다. 승부를 걸었는데 운 좋게 들어맞은 것 같다." (스퀴즈에 대해서)

그 기분 이해가 간다. 기세등등한 3위 팀에게 이틀 내내 끌려 다녔다. 일본식 표현대로면 하극상이나 다름 없었다. 16이닝 동안 공격다운 공격 한 번이 없었다. 꽉 막혔던 갑갑함을 작전으로 풀었다. 기지, 지략, 배짱, 뚝심…. 뭐, 그런 칭송들이 잔뜩 붙을만 했다.

무엇보다 결승점이 된 스퀴스 번트 순간이 그랬다. 과감한 선택이었다. 의외의 상황에 경험이 적은 상대 투수는 어이 없는 폭투를 범하고 말았다. 상당수 미디어들은 '어린 투수가 당황해서 그랬다'는 식으로 분석했다.

맞다. 20살 함덕주에게는 감당하기 벅찬 무게였으리라. 분명히 일리 있는 해석이다. 하지만 그건 한 단면일 뿐이다. 이면에는 훨씬 복잡하고, 깊은 수읽기가 숨어 있다. 간단히 배짱이나 운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운과 배짱으로 포장됐던 그 장면. 그 속에 숨겨진 치밀함을 간과하면 안된다. 오늘 <…구라다>가 하려는 얘기다.

수를 내고 싶을 때…볼카운트가 문제

원정팀의 수비는 견고했다.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내내 그랬다. 내/외야는 단단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집고 들어갈 헛점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8회 수비 때 아주 작은 틈이 생겼다. 기습적인 페이크 번트 앤 슬러시로 2루타를 맞은 직후다. 동점이 되고 계속된 무사 2루. 의외의 역습에 멘탈은 충격을 입었다. 이어진 보내기 번트 수비 때 내상의 흔적이 살짝 드러났다. 김태군의 번트를 잡은 3루수 허경민의 1루 송구가 자칫 악송구가 될 뻔했다. 베이스 커버 들어간 오재원이 간신히 잡기는 했지만 견고하던 내야진의 작은 균열이 노출됐다.

동점을 만들고 상승세를 탄 홈 팀은 1사 3루로 천금의 역전 기회를 잡았다. 당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자. ① 타석에는 대주자였던 김성욱이다. 타력보다는 작전 수행력에 기대치가 높다. ② 내야진, 특히 3루수 쪽에 불안감이 노출됐다. ③ 투수는 약관의 왼손잡이다. 3루를 등지고 있다. ④ 포수는 경험이 많긴 해도 경기 중간 갑자기 교체 투입된 전력이다.

종합해 볼 때 공격측은 뭔가 수를 내고 싶은 환경이다. 문제는? 볼카운트다. 적절한 시점이 마련돼야 성공률이 생긴다. 초구, 2구가 거푸 볼이 됐다. 드디어 때가 왔다. 홈 팀 벤치에서는 사인이 나왔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고급 레벨 - 돌발 피치아웃

다시 말하지만 8회 스퀴즈 플레이는 언뜻 너무 단순해 보인다. ▶ 1-1 동점이던 8회 1사 3루 ▶ 타격에 능하지 않은 타자 ▶ 왼손투수 상대. 짜내기를 성공시키기 위한 조건들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볍게 볼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다. 그건 상대 구질에 대한 예측이다. 과연 그 타이밍에, 무슨 공을 던질 것이냐를 알아야 하는 부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베어스 배터리는 3구째 몸쪽 커브 사인을 교환했다. 그리고 이 공을 던지다가 폭투를 범한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결정적일 지도 모른다.

당시 내야(특히 1, 3루수)는 전진 위치로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그 정도라면 땅볼에는 득점을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번트도 마찬가지다. 속도나 방향이 정확하지 않으면 성공 확률을 기대하기 어렵다. 만약 스퀴즈 플레이를 한다면 방법은 딱 하나다. 3루 주자는 무조건 스타트 하고, 타자는 땅에 굴려주는 것이다.

그럴 경우 공격측이 극복해야 할 위험 부담이 있다. 배터리가 이를 간파하고 공을 빼버리면 허무하게 횡사하기 마련이다. 간파는 사인 노출만이 아니다. 주자가 스타트 하는 순간에도 가능하다. 투수가 알아채고 던지는 순간 공을 빼버리는 '즉흥적인 피치아웃'이다. 물론 고급 레벨에 속하는 스킬이다. 하지만 대부분 팀들이 스프링캠프 때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 이런 걸 준비한다. 두산 정도의 수준이라면 포스트시즌을 앞두고도 충분히 대비했을 것이다.

커브를 잡고 있어서 난 '사고'

실전의 변수는 있었다. 함덕주가 3루를 등 진 왼손 투수라는 점이다. 지석훈의 출발은 보통 스퀴즈보다 무척 빨랐다, 마치 홈 스틸 같았다. 하지만 투수가 스타트를 몰랐을 리 없다. 뛰는 순간 내야수들의 콜이 있었을 것이다. 벤치에서도 큰 고함 소리로 경고음을 줬을 것이다.

그런데도 함덕주는 폭투를 범했다. 바꿔 말하면, '정확하게 피치아웃 하지 못한' 것이다. 얼토당토 않은 높이로 날아갔다. 긴장해서? 그게 아니다. 그건 그가 잡고 있던 구질의 그립과 깊은 연관이 있다.

즉, 그가 만약 그 순간 직구를 잡고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립은 커브였다.

말했다시피 '돌발 피치아웃'은 쉽지 않은 기술이다. 처음 던지려고 마음먹은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가능한 전제 조건은 투수가 직구를 준비하고 있을 때다. 반면 볼 컨트롤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변화구를 잡고 있다면 실전과 같은 '사고'가 날 확률이 커진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런 거다. 김경문 감독은 볼카운트가 2-0을 스퀴즈 타이밍으로 봤다. 여기에는 상대 배터리가 직구가 아닌 변화구(커브)를 택할 것이라는 깊은 수읽기까지 포함된 것이다. 그건 준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연구된 두산 배터리의 볼배합 패턴일 것이다. 즉, 변화구를 잡는다면 함부로 볼을 빼지 못할 것이고, 설사 빼더라도 실전과 같은 '미스'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했을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운이 좋았다"고 했다. 지석훈은 "스타트를 빨리 끊었다. 투수가 뛰는 것을 보고 잘못 던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만 간략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결코 운이나 돌발적인 사고가 아니었을 것이다. 달 감독의 깊이가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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