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들숨날숨] 황금신 위에 '헌신'을 포갠 진짜 빛나는 이승우

조회수 2015. 10. 18. 13: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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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을 구해줄 영웅이라 생각했다. 그가 가진 빛나는 황금 축구화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황금신발에서 나오는 빛이 종종 지나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워낙 좋은 신발이니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아직은 길들여지지 않은 새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위로도 있었다.

벗자니 분병 아까웠다. 그렇다고 그냥 신고 다니자니 거슬리는 면이 있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황금신의 주인공이 현명한 생각을 갖는 것인데, 다행히 답을 찾은 모양새다. 황금신 위에 '헌신'을 포개 신으니 금상첨화다.

최진철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U-17 축구대표팀이 18일 오전(한국시간) 칠레 코킴보의 에스타디오 프란시스코 산체스 루모로소 코킴보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2015 FIFA 칠레 U-17 월드컵' B조 예선 1차전에서 1-0으로 승리했다. 후반 34분 장재원의 선제골이 결승골이 되면서 16강행 청신호를 밝혔다.

[영상] 브라질 격침한 장재원의 결승골

브라질은 이번 대회 우승후보로 꼽히는 팀이다. 이미 한국 선수들도 브라질의 강함을 경험한 바 있다. 지난 9월 국내에서 열린 수원컵에서 최진철호는 브라질에 내내 고전하다 0-2로 완패했다. 당시 경기는, 뭘 해도 안 되는 '넘사벽' 느낌이었다. 그러나 40여일 만에 확 달라졌다. 브라질이 전전긍긍이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이승우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황금신'의 이승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국제축구연맹(FIF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라지만 당장의 주목도가 떨어지는 어린 선수들의 경연장인 U-17월드컵은 관심이 덜하게 마련이다. 심지어 한국에서 개최됐던 2007년 대회도 반응은 뜨겁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역시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는 이승우의 존재 때문이다. 비록 장결희가 대회 직전 부상으로 낙마해 '바르샤 듀오'의 콤비 플레이는 볼 수 없게 됐으나 어려서부터 황금 축구화를 신고 성장한 이승우가 출전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은 충분했다.

이승우가 이번 대회 성패의 키를 쥐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하지만 열쇠이자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날이 안쪽을 향해 최진철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지난 수원컵에서 브라질이 그 위험성을 예고해줬다.

숫제 이승우에게 향하는 패스를 막아버리며 원천 봉쇄에 성공한 브라질은 아주 여유롭게 흥분한 이승우와 당황한 한국을 꺾었다. 그래서 이번 대회를 앞두고 우려가 컸다. 그런데 뚜껑을 열자 상황이 달라졌다. 승리의 주역은 분명 이승우였다. 하지만 스스로 포인트를 올리며 적을 쓰러뜨리던 선봉장은 아니었다. 역할이 달라졌다. 주인공이 되려는 욕심을 버린 움직임이 경기 내내 나왔다. 마인드를 바꾸니 플레이 패턴도, 위치도 달라졌다.

경기 시작부터 팀에 녹아들겠다, 팀을 위해 뛰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전방에 미리 올라가 있다가 공을 달라 몽니만 부리던 이전의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이 궂은일을 맡았다. 2선까지 내려와 공을 받아 전달에 힘썼고 측면으로도 이동해 넓게 움직였다. 이 과정에서 브라질 수비들의 혼선을 야기 시켰다.

[영상] 이승우에 몰린 브라질 수비를 활용한 공격전개

전방에 있는 이승우를 고립시키면 됐던 상대 수비는, 이승우가 움직이는 대로 함께 품을 팔아야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했다. 브라질 선수들 2~3명이 이승우를 쫓아다니니 자연스레 공간이 생겼고 동료들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지나친 드리블을 자제하면서 연결고리 역할에 충실하려 했던 것도 박수 받을 일이다. 이승우를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공이 곧바로 다른 쪽으로 이동하니 상대는 맥이 빠졌다.

[영상] 이승우 '파이팅 넘치는 수비 가담'

수비가담에도 적극적이었다. 권위의식과 스타의식을 내려놓은 듯 전방에서부터 부지런히 압박했다. 자세도 달라져 있었다. 상대 선수와의 불필요한 마찰을 자제했고 동료가 다쳤을 때는 가장 먼저 달려가 상태를 파악하고 위로를 건네는 리더 역할도 톡톡히 했다. '헌신'이었다. 그 헌신과 함께 한국이 대회 첫 경기에서 대어를 낚는데 성공했다. 승리와 함께 또 다른 이승우를 얻었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영상] '흥분하지마' 상황을 정리하는 이승우

여전히 황금신을 신은 이승우는 최진철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상대의 경계 1순위다. 어느 순간 폭발적인 드리블과 슈팅으로 헤집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 한국을 만나는 팀은 또 다른 이승우도 고려해야한다. '헌신'을 신은 이승우와 '황금신' 이승우의 시너지. 한국 대표팀이 대회를 앞두고 진짜 빛나는 무기를 얻었다. 에이스가 희생하면, 그 팀은 강해진다.

글= 임성일[뉴스1 스포츠부/lastuncle@daum.net]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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