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S담쓰談]염갈량의 야구는 실패한 것일까

조회수 2015. 10. 16. 02:28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포스트시즌(PS)에서 두 번째 탈락팀이 나왔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SK를 탈락시켰던 '영웅군단' 넥센이다. 두산과 준플레이오프(PO)에서 역사에 남을 뼈저린 역전패를 안으며 PO 진출이 무산됐다.

최근 3년 연속 가을야구에 나섰지만 염원했던 한국시리즈(KS) 우승 도전은 다시 좌절됐다. 2013년에 두산과 준PO에서 졌던 넥센은 지난해 삼성과 KS까지는 진출했으나 올해 다시 준PO 패배로 뒷걸음질한 형국이다. 시간과 발전이 꼭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적으로만 보면 넥센은 살짝 과거로 회귀한 모양새다.

< '목동에서의 마지막 모습?' 염경엽 넥센 감독이 14일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구원 투수 손승락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자료사진=넥센) >

그 3년의 세월, 넥센을 이끈 수장은 '염갈량' 염경엽 감독(47)이다. 2012시즌 뒤 전임 김시진 감독에 이어 지휘봉을 잡은 염 감독은 데뷔 시즌은 2013년부터 올해까지 넥센의 영광과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넥센은 이제 내년부터 고척돔 시대를 맞는다. 2008년 창단 뒤 목동 시대의 마지막 3년, 염 감독과 넥센의 야구는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PS 불펜 무리수' 실패에 가까운 2015년

올 시즌만 놓고 보면 염 감독의 야구는 실패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난해 정규리그 2위와 KS 준우승보다 가시적인 성적이 후퇴했다. 올해 정규리그 4위와 준PO 탈락, 2013년도 준PO에서 탈락했으나 정규리그 성적은 3위였다.

무엇보다 두산과 준PO에서 거짓말 같은 대역전패의 충격이 컸다. 넥센은 4차전에서 6회까지 9-2로 앞서 2승2패,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듯했지만 7회 2점, 8회 1점, 9회 무려 6점을 내주는 불펜 붕괴로 허무하게 시리즈를 마쳤다. 역대 PS 최다인 7점 차 역전패였다.

더군다나 넥센은 2년 전 두산과 준PO에서 먼저 2연승한 뒤 3연패를 당한 악몽이 있던 터였다. 2년 전 아픈 기억 이상의 쓰라림이 엄습해온 결과였다. KBO 리그 마지막 목동구장 경기는 잔인한 역사로 남을 터였다.

시리즈 성패를 가른 요인은 넥센의 무리한 불펜 운용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손승락, 한현희, 조상우 등 필승조 3명에게 승부처 부담이 지워지면서 탈이 났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다채롭게 불펜을 가동한 두산과 적잖게 비교가 됐다.

< 두산과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과 4차전 고비를 넘지 못했던 넥센 불펜 조상우.(자료사진=넥센) >

특히 조상우는 올해 KBO 리그를 강타한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준PO 3경기와 와일드카드 결정전까지 4경기 투구수가 141개나 되면서 패배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SK전에서 49개를 던진 조상우가 3일 만에 준PO 1차전에서 48개 투구수 속에 2이닝 1실점하며 승리를 놓친 점과 준PO 3차전 23개를 던진 뒤 다음 날 4차전에서 9회 4점 차 리드를 막지 못한 것은 무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염 감독은 충분히 비판을 받을 만하다. 21살, KBO 리그 3년차, 풀타임 리거 2년차의 어린 선수에게 과중한 부담을 안겼다는 점에서다. 또 승부처에서 손승락, 한현희 외 다른 불펜들을 쓰지 않은 편식증도 도마 위에 올랐다.

▲"욕이 두려워 지느니 할 건 하고 먹겠다"

다만 이미 작정하고 각오한 부분이다. 비난을 감수하고 던진 승부수였던 것이다. 염 감독은 이번 시리즈 도중 "나도 욕을 먹지 않으면서 경기를 운영할 수 있다"며 고충을 털어놓은 바 있다. 욕 먹을 것을 알면서도 감내해야 하는 자리가 감독이라는 것이다.

준PO 1차전 패배에 대한 복기 과정이었다. 당시 넥센은 3-2로 앞선 8회 조상우를 조기 투입했다. 앞서 7회 2사에서 등판한 한현희의 투구수는 겨우 3개. 8회까지 더 끌고 갈 만했지만 염 감독은 한현희를 내렸다. 조상우는 8회를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9회 사사구 4개를 내주며 통한의 동점을 허용했고, 결국 넥센은 연장 10회 3-4 끝내기 패배를 안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염 감독은 "한현희가 8회 선두 타자 민병헌에 피안타율 6할(5타수 3안타)로 약했다"면서 "출루를 내줄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누상에 주자가 있는 상황이면 어차피 투입될 조상우가 느낄 부담이 컸을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어 "감독은 욕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기기 위해 승부를 걸어야 하기에 그랬다"고 덧붙였다.

< '욕은 먹겠습니다, 이길 수 있다면' 염경엽 감독이 두산과 준플레이오프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모습.(자료사진=넥센) >

그런 점에서 일단 염 감독은 비난보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욕을 피하기 위해 예정된 패배의 길을 걷느니 욕은 먹을지언정 조금이라도 승리할 확률이 높은 길을 따른 것이다. 지난해 PS에서도 염 감독은 좌완 불펜 '0명'인 엔트리에 대해 "나도 좌완 몇 명을 끼워넣고 구색을 갖춰 비난을 피할 수 있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집중된 비난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의 과오라며 패배의 결과를 받아들였다. 4차전 뒤 염 감독은 "불펜이 3명으로 치우치면서 힘들게 시리즈를 끌고 왔다"면서 "조상우가 맞긴 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감독이 잘못했다"고 인정했다. 시즌에 대해서도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성적에 대한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팀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하지만 지난 3년을 돌아보면 넥센의 야구는 실패보다는 성공에 가깝다. 스폰서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넥센이 굴지의 모그룹을 둔 대기업 팀들과 자웅을 겨루고 정상을 다툰 점은 KBO 리그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

염 감독이 팀을 맡기 전까지 넥센의 최고 성적은 6위였다. 8개 구단 체제였던 2009년과 2012년이었다. 2008년 창단 뒤 시즌 모두 하위권에 2011년에는 최하위, 가을야구는 언감생심이었다.

이렇다 할 대형 FA(자유계약선수)나 고액 외국인 선수 없이 대부분 육성의 힘으로 일어선 넥센이었다. 자타 공인 KBO 최고 거포 박병호는 LG에서 만년 유망주로 있다가 넥센으로 와서 꽃을 피웠고, 지난해 MVP 서건창 역시 LG에서 방출돼 넥센이 받아 기른 선수였다. 한현희, 조상우 등 필승 계투진과 주전 유격수 김하성은 길러진 신인들이었다.

< '그야말로 최정예' 서건창, 박병호, 조상우, 김민성(오른쪽부터) 등 넥센 선수들이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3차전을 이긴 뒤 하이파이브하는 모습.(자료사진=넥센) >

전임 감독들과 구단 프런트가 뿌린 자양분이 토대가 됐지만 이를 값진 결실과 수확으로 일궈낸 주역이 염 감독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상대적으로 엷은 선수층에 염 감독의 승부수는 선택과 집중이었다.

인구수에서 뒤지지만 국력에서는 밀리지 않는 강소국들처럼 강한 주전들의 능력과 경기 지배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 결과물이 박병호와 서건창, 강정호(피츠버그), 유한준 등과 앤디 밴 헤켄, 손승락, 한현희, 조상우 등 올스타급 선수들이다.

염 감독은 연구하는 사령탑으로 정평이 나 있다. 경기에서 지면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경기 영상을 돌려보며 실패의 원인을 찾는다. 이장석 구단 대표이사가 역시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김시진 감독 후임으로 지도자로서 무명이나 다름없던 염 감독을 전격 발탁한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 조급함은 필연

넥센은 최근 몇 년 동안 강팀이긴 했지만 강력한 우승후보로까지 꼽히지는 않았다. MVP급 선수들이 즐비하지만 어쩔 수 없는 빈약한 백업 자원 때문이다. 사실 2010년대 최강팀 삼성의 독주를 막을 팀으로는 두산, SK와 2013년의 KIA 등 선수층이 두터운 구단들이 꼽혔다.

그래서 가을야구에서 넥센의 비극은 어쩌면 필연일지 모른다. 재벌팀들을 제치고 PS까지는 진출했지만 태생적 한계까지는 극복하지 못한 결과 말이다. 사실 두산과 준PO에서 패인으로 지적된 넥센의 잇딴 주루사와 불펜 운용의 무리수도 여기서 비롯됐다. 선수층이 얇은 만큼 올해가 향후 몇 년 동안 가을야구 우승을 노릴 마지막 해라는 점에서 나온 조급함과 절실함이 빚은 산물이다.

< 넥센 선수단이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4차전으로 목동구장의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팬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자료사진=넥센) >

넥센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엄청난 전력 손실이 예상된다. 강정호에 이어 박병호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다. 넥센으로서는 40홈런과 117타점을 올려준 강정호보다 2년 연속 50홈런에 146타점 신기록을 올려준 박병호의 공백이 더 크다. 강정호의 빈자리는 신인 김하성이 나름 메워줬지만 박병호는 NC 에릭 테임즈급 외인이 아니면 대신할 수 없다. 올해 26홈런 71타점을 올린 브래드 스나이더가 2명 있어도 박병호의 기록에 못 미친다.

여기에 넥센은 마무리 손승락과 최다안타왕(188개) 유한준, 주장 이택근까지 FA로 풀린다. 이들 중 1명이라도 팀을 떠난다면 그 손실은 적지 않다. 만약 넥센이 박병호의 미국 진출로 얻을 이적료를 FA 시장에서 푼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전력 약화는 명약관화하다. 그런 점에서 염 감독과 넥센이 PS에서 보인 조급함과 무리수는 우연이 아니다.

▲목동의 마지막과 고척의 처음, 그 연결고리는?

염 감독과 넥센의 야구는 내년부터 변할 것이다. 홈런이 펑펑 터지는 타자 친화적인 목동을 떠나는 데다 박병호도 떠난다. 이제는 고척스카이돔에 맞는 야구를 펼쳐야 한다. 정점에서 내려오는 팀 전력에 맞게 또 다른 육성과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장점이던 타선의 힘은 약해지는 대신 아킬레스건이었던 마운드는 한층 더 강해질 전망이다. 한화에서 이적해온 양훈과 불의의 병에서 돌아올 김영민, 군 제대한 김상수, 이보근까지 가능성은 충분하다. 염 감독은 "내년부터 넥센의 야구는 젊어질 것"이라고 했다.

염 감독은 넥센 구단 역사에 특별하게 남을 사령탑이다. 목동 시대의 마지막을 함께 했고, 고척 시대의 처음을 맞는 감독이다. 그런 점에서 넥센이 염 감독과 함께 했던 영욕의 3년은 꽤 의미가 있었다.

< '이제 고척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3년 세월을 죽기살기로 보냈다는 염경엽 감독. 내년부터는 고척돔구장에서 새 시대를 연다.(자료사진=넥센) >

염 감독은 4차전을 마친 다음 날 쉼없이 달려온 사령탑 생활을 돌아보며 "죽기살기로 3년을 살았더니 조금 힘드네요"라고 했다. 시즌 중 아깝게 패하고 불면의 밤을 보낸 다음 날 염 감독의 얼굴은 퀭하기 일쑤였고, 그렇게 보낸 3년의 세월이었다. "이제 좀 쉬면서 머리도 식히고 내년 구상도 하셔야죠"라는 말에 염 감독은 "그러겠다"고 했다.

아쉽지만 넥센의 목동 시대를 화려하게 마무리지었던 염갈량의 야구, 그 진정한 성패는 넥센의 고척 시대를 얼마나 잘 출발시키느냐에 달려 있을 테다. 어떻게 하면 영웅군단을 고척돔에 안착시킬 수 있을까, 염 감독은 벌써부터 "생각이 많다"고 했다.

글=CBS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