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양의지의 신기한 Shift 키 사용법

조회수 2015. 10. 15. 09: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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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지의 신기한 Shift 키 사용법

오늘은 0교시 수업부터 시작이다. 과목은 컴 사용법 개론. 복잡한 자판 중에 하필이면 양쪽으로 2개씩 붙어있는 키들이 몇 개 있다. Shift, Ctrl, Alt 등등. 그만큼 중요하고, 많이 쓰니까 하나 더 있겠지.그 중 Shift 키는 알고보면 제법 요긴한 기능들을 가졌다. 이를테면 윈도우 시작 때 누르고 있으면 시작 메뉴의 쓸 데 없는 응용 프로그램들 거치지 않아 성격 급한 분들께 좋다. 또 단축 메뉴를 불러낼 때도 간편하다. 그밖에도 파일 이동, 창 닫기, 탐색기 활용할 때 쓰임새가 많다. 특히 파워포인트, 엑셀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할 때도 활용폭이 크다. 물론 게임하는 분들께는 필수다. 공격과 수비의 중요한 전략을 시전하기 때문이다. 0교시는 이쯤 하고….

어젯밤 10시 무렵 MBC 홈페이지에 난리가 났다. <그녀는 예뻤다>의 결방 때문이다. 무수한 댓글이 달렸다. '제일 궁금할 때 끊어놓고 정말 이러기냐'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회차인데' 등등. 하다못해 황정음까지 나섰다. SNS를 통해 "하필 내가 예뻐지려고 하니까"라며 귀염 섞인 툴툴 모드.아시다시피 결방 이유는 뻔하다. 그 무렵 목동 극장에서 다른 드라마 한 편이 한창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 준PO 완결편의 주인공은 한두명이 아니다.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숨가쁠 지경이다. 혹자는 스와잭이라고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런 분들은 보이스피싱 조심하시라. 지나치게 얇은 귀 탓이다.아무튼. 말해 뭐하겠나. 20점이나 났다. 잘 친 타자가 어디 한둘이겠나. 그 중에서도 <…구라다>가 반드시 꼽고 싶은 한 명이 있다. 양의지다. 마침 4차전의 MVP로도 뽑혔다. 그는 극(劇)의 반전을 완성시키는 결승타를 쳤다. 게다가 3안타의 맹타쇼였다. 오늘 얘기는 그 3개의 안타, 특히 9회에 터진 2루타+실책에 대한 것이다.

맹타쇼, 안타 3개는 모두 같은 방향

그의 첫 안타는 4회에 나왔다. 양훈의 공을 중견수 앞으로 깔끔하게 배달했다. 특유의 타격 스타일대로 힘 안들이고 간결한 스윙으로 뽑아낸 타구다. 공은 유격수의 왼쪽(사진상)을 빠르게 통과했다.

두번째 안타도 비슷했다. 8회였다. 역시 유격수와 2루 베이스 사이를 매끄럽게 빠져나갔다. 사실 이 2개는 승부와 무관했다. 병살타, 후속타 불발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결정적인 한 방은 9회 세번째 것이었다. 8-9까지 따라붙은 1사 1,3루. 볼카운트는 1-2로 투수편이었다. 파울 하나를 걷어내고 5구째. 129㎞짜리 슬라이더가 바깥쪽으로 낮게 휘어져 나갔다. 제대로 구사된 유인/승부구였다. 보통이라면 헛스윙이나 힘 없는 내야땅볼이 돼야 할 공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의 집중력은 무너지지 않았다. 도망가는 슬라이더를 끝까지 따라붙었다. 결국 오른손을 놓으며 스윙을 유지했고, 배트 끝에 걸린 타구는 외야로 훨훨 날았다. 비행의 종착점은 중견수와 좌익수 사이. 3루 주자는 당연했고, 1루 주자 김현수까지 득점에 성공했다. 단숨에 10-9 역전.

물론 기록상은 엄연한 2루타+실책이었다. 하지만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자. 큰 타구(비거리 110m)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름끼칠 정도로 잘 맞은 건 아니라는 점이다. 두 외야수 사이에 떨어졌는 데도 담장까지 구를 힘이 없었다. 즉 문우람의 더듬기만 없었다면 1루 주자의 득점은 어려웠을 지 모른다는 애기다(실제로 양의지에게는 1타점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유한준이 5미터만 덜 갔더라도

이날 홈 팀은 주전 중견수 이택근을 뺐다. 감기 몸살에 컨디션 난조가 이유였다. 대신 우익수를 보던 유한준이 가운데를 지켰다. 물론 그는 탄탄한 수비력을 지녔다. 하지만 기민하고, 넓은 커버폭을 갖지는 못했다. 홈 팀의 1차적인 불행은 여기서 비롯된다.2차 불행은 수비 위치다. MBC 중계화면을 캡처한 3장의 사진을 비교해 보자. 3개의 타구 방향은 얼추 비슷하다. 굴렀느냐, 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럼 의문이 하나 생긴다. 중견수의 위치에 대한 것이다.

세번 모두 유한준은 약간 우익수 쪽에 치우친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뭐 이상할 건 없다. 일반적이다. 아마도 데이터에 의한 포지셔닝이었을 것이다. 평소 양의지의 타구 방향이라든지, 그날 투수의 볼배합 등등이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비 위치를 정한 것이다.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날 양의지의 안타 3개는 모두 유한준이 커버하는 반대쪽으로 나왔다. 특히 승부를 결정지은 2루타는 외야 시프트의 치명적인 공백으로 파고 들었다.'만약'이라는 가정법을 대입해보자. 중견수가 앞선 타구를 감안해 시프트를 풀었다면, 즉 정상 위치나 약간 좌익수 쪽으로 자리잡았다면. 그것도 아니면 그저 5미터만 옆으로 덜 갔더라면. 그 타구는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끝났을 것이다. 당시 1루 주자(김현수)의 반응에서도 그런 점이 확인된다. 그는 타구가 뜨자 1루와 2루 중간에서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잡힐 지도 모를 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양의지 Shift+Delete를 누르다

물론 이걸 두고 넥센 벤치의 시프트 실패니, 유한준의 수비력 부족이니 하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상황에 맞는 시프트를 펼치다가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문제를 보는 시각은 반대여야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빈 곳을 향해, 적절한 팀 배팅을 한 공격쪽에 찬사를 보내야 한다. 이를 두고 현장에서 야구인들끼리 흔히 하는 말이다. "아무리 세게 치면 뭐해. 사람 없는 데로 치는 게 최고여."

반대로 로메로의 경우를 보자. 선취점이 된 2회의 2루타는 강렬했다. 3루수 옆 쪽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 다음 타석, 4회에도 비슷했다. 같은 방향으로 역시 총알같은 타구를 날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3루수가 시프트를 걸고 있었다. 정면 타구가 되면서 자칫하면 3중살을 당할 뻔했다.단언하긴 어렵다. 양의지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방향을 잡았는 지는 모를 일이다(만약 그랬다면 더 대단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하지만 병살 땅볼을 피하고, 외야플라이라도 쳐야 한다는 집념이 절절히 묻어 있는 스윙이었다.

다시 맨 앞으로 간다. 0교시 컴 사용법 개론이다. 양포수가 Shift 키의 특별한 사용법 한가지를 더 가르쳐준다. Shift+Delete 키의 기능이다. 휴지통 거칠 필요가 없다. 용량 많이 잡아먹는 골치 아픈 파일을 간단하게 지우고 싶을 때 쓰는 방법이다. 그의 Shift+Delete의 위력은 대단했다. 클릭 한 번으로 홈 팀의 9점 어드밴티지와, 준PO 5차전에 대한 피곤함은 완전히 소멸됐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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