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기획-제작:PGA 투어, 장소제공:코리아

김세영 기자 2015. 10. 1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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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프레지던츠컵은 관람객 10만 명을 끌어 모으며 국내 골프 박스 오피스의 신기원을 열었다. 사진은 대회 최종일 18번홀 그린 주변에서 응원을 펼치고 있는 갤러리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주 할리우드 골프영화 한 편이 국내 골프계를 강타했다. 가히 쓰나미 급이었다. 프레지던츠컵이다. 단 며칠간의 상연에 관람객 10만 명을 넘기는 공전의 대히트를 했다. 국내 골프 박스 오피스의 신기원을 열었다.

이 흥행작의 총감독이 팀 핀첨 PGA 투어 커미셔너다. 왜소한 체구지만 수완이 대단히 탁월한 분이다. 비상한 기획력으로 투자자를 끌어 모아 PGA 투어를 전 세계 넘버원 골프 조직으로 이끈 인물이다. 일국의 대통령이나 총리도 섭외하는 능력을 지녔다. 이번 작품엔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을 카메오로 등장시켰다. 이런 업적 덕분에 벌써 22년째 총감독직을 맡고 있다.

출연진도 화려했다. 24명의 배우 중 글로벌 스탠더드 기준으로 상위 20위 안에 드는 인물이 무려 13명이나 포함됐다. 나머지 11명 배우들의 연기력도 세계 정상급이다. 다들 선이 굵으면서도 섬세하고, 생생한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필 미컬슨은 랭킹 상위 20명에 끼지 못하지만 네임 밸류로만 따진다면 이번 출연진 중 단연 으뜸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연기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파3 홀에서는 티샷을 벙커에 보내고서도 그곳에서 '벙커샷 버디'를 잡았고, 파4 홀에서는 벙커에서 친 두 번째 샷을 그대로 홀에 넣는 환상적인 '이글 쇼'를 펼쳤다.

관람객들은 한 시대를 풍미한 노(老) 배우의 혼신을 다 한 연기에 기립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작은 NG를 범해 약간의 해프닝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이게 오히려 화제가 되는 등 그는 이번 대회 최고의 '씬 스틸러'로 주목을 받았다.

이번 작품에는 한국 배우도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최경주와 배상문이다. 최경주는 뒤에서 배우들을 다독이는 맏형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연기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상문은 캐스팅 과정에서 잡음이 일기도 했지만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작품의 긴장감과 완성도를 높였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 프레지던츠컵 첫날 오프닝 세리모니에서 류진 조직위원장, 닉 프라이스 인터내셔널팀 단장, 제이 하스 미국팀 단장,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팀 핀첨 PGA 투어 커미셔너(왼쪽부터)가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작품이 오른 무대는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 골프장이었다. 이 무대의 설계자도 역시 대단한 분이다. '살아 있는 전설'로 추앙받는 잭 니클라우스다. 역시 PGA 투어 사단 출신이다. 현역 신분일 때는 당대 최고의 배우로 활약하다 은퇴 뒤에는 무대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모델로 활약하다 의상 디자이너가 된 셈이다.

변신은 대성공이었다. 자신이 설계를 했더라도 극장 자체에 잭 니클라우스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걸 좀체 허락하지 않지만 이번엔 허락했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는 '베어즈 베스트'라는 곳이 있다. 베어즈는 그의 별명인 '황금 곰'을 뜻한다. 그런 점을 보면 이 분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참 대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극장이 들어선 복합 쇼핑몰의 이름은 송도다. 이곳의 마스터플랜을 짜고 실행에 옮기는 곳이 미국의 부동산 회사인 게일 인터내셔널이다. 국내 모 건설사와 함께 불모지(?)였던 곳에 랜드 마크를 세우는 등 꿈의 도시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번 작품의 글로벌 배급은 미국의 NBC가 맡았다. 30개 언어로 프레지던츠컵을 제작했으며, 전 세계 225개 국가에 송출했다. 다만 안방만큼은 SBS가 담당했다.

대형 텐트와 스탠드 등 대부분의 자재도 컨테이너에 실려 태평양을 건너왔다. 나사못 하나, 천 한 조각까지 '미제'라는 말이 있었는데 제조사까지는 미처 확인을 못했다. 이를 설치하는 인부들 역시 미국에서 건너온 스태프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 작품의 기획부터 제작, 연출, 배급까지 실속 챙기는 일은 모두 미국이 맡았다. 아니다. 장소제공은 한국이다. 앰버서더라고 불렸던 약 800명의 자원봉사자들도 있다. 여기에 경찰, 소방관, 의료진도 한국 사람이었다. 이들은 비록 무보수이긴 하지만 함께 위대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느꼈을 것으로 굳게 믿는다. '열정 페이'는 아니고 '열정 봉사'라고 하면 되겠다.

이번 프레지던츠컵 11편에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한 곳이 풍산그룹이다. 동제품을 만들고, 총알을 제작하는 방위산업 일도 한다. '극장 안에 회사 안내판도 제대로 설치할 수 없었을 텐데 왜 거액(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을 투자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판단은 내 영역 밖의 일이다. 비즈니스맨들의 계산법은 고차원이어서 수학자나 경제학자도 쉽게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잘 봤다. 그런데 한편에서 다가오는 이 찜찜한 기분은 뭘까. 마치 뷔페식당을 빠져나온 직후의 느낌과 비슷하다. 다양한 음식을 산처럼 쌓아가며 두 접시나 먹었건만 속이 허전했던 기억. 그래서 컵라면을 먹었던 기억. 입맛의 촌스러움과 더불어 사고의 촌티도 벗지 못했나 보다. 글로벌 시대에.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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