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타인의 시선] 부산의 잃어버린 3달, 상처가 너무 크다

조회수 2015. 10. 8. 18: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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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늦었다. 부산아이파크가 윤성효 감독 사임 이후 차기 감독을 선임하지 않고 시즌을 보내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하는 글을 쓰려했는데, 바로 그날 신임감독으로 최영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을 선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영준 신임감독을 선임했다고 해서 글의 방향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감독선임 자체는 정상적인 일이지만, 일단 너무 늦었다. 윤성효 감독이 사임한 것은 3달 전인 7월 13일이다. 당시 성적은 11위였고, 지금도 11위다. 3달 동안 강등을 피하기 위해 내린 특단의 조치는 데니스 이와무라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승격시킨 게 전부였다.

데니스 이와무라 감독대행의 능력을 문제 삼자는 건 아니다. 그는 브라질에서 좋은 경력을 쌓았고, 대구FC 수석코치를 거쳐 '2014 브라질월드컵'에 국가대표팀 비디오분석관으로 일했을 정도로 좋은 실력을 지녔다. 중요한 것은 그의 능력이 아닌 선수단이 체감하는 구단의 의지다.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는 것과 감독대행을 선임하는 게 주는 파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거스 히딩크 전 네덜란드대표팀 감독이 예전에 PSV에인트호번에서 시즌 중에 해임된 감독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았을 때 한 이야기는 감독을 교체하는 이유에 대해 잘 설명해준다. 히딩크는 선수들에게 "너희들이 남아 있는 이유는 너희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선수를 모두 해고하는 것보다 감독 하나를 내보내는 게 더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독이 어떤 이유로든 바뀌는 것은 선수단이 시즌 중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변수다. 감독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구단이 감독을 해고했을 때 '극약처방'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독이 바뀌면 그 다음 경기에서는 거의 대부분 좋은 결과를 얻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선수들이 위기감을 가지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위기감에서 나온 의지를 지속적으로 연결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구단과 새로운 감독의 과제다.

부산이 데니스 이와무라를 완벽하게 믿었다면 6개월이라도 정식 감독으로 써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독대행은 감독이 될 수도 있지만, 그저 다음 감독으로 가기 위한 가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선수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데니스 이와무라 감독대행은 이제 30대다. 경험이 부족하고, 선수단을 휘어잡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부산 구단은 윤성효 감독이 경질에 가까운 자진사퇴를 한 것을 통해 상황을 전혀 반전시키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데니스 이와무라 감독대행이 팀을 이끌며 얻은 성적은 1승 4무 6패다. 선수들은 패배의식에 젖었다.

부산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상황이 좋지 않은데 누가 감독으로 오려고 하겠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감독이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최근 성적은 좋지 않지만 부산은 한국 제2의 도시를 연고로 하는 매력적인 팀이다. 스스로를 낮출 이유가 전혀 없다. 구단에서 강등이 되더라도 무조건 1년 6개월이라도 신임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면, 감독직을 거절할 지도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늦은 감독선임이 비난 받아야 할 이유는 더있다. 바로 팬들에 대한 책임 방기다. 부산팬들은 누구보다도 부산의 강등을 걱정하고 있다. 부산 구단은 최영준 감독을 선임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올 시즌을 감독대행 체제로 마치겠다고 이야기해왔다. 구단의 이러한 방향성을 이성적이라고 생각한 부산팬들은 많지 않았다. 몇몇 팬들은 부산이 11위를 벗어날 의지가 없었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는데, 이들의 말을 '맥락 없는 비난'으로 치부하기에는 구단의 대처가 너무 미흡했다. 돌아선 팬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최영준 감독은 9일에 부산으로 내려가 처음으로 선수단과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다음 경기는 17일(광주FC전)이다. 새로운 감독이 팀을 파악하고, 승리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 남짓이다. 그리고 남은 리그 경기는 광주전을 포함해 총 5경기다. 현실적으로 11위를 벗어나기 쉽지 않은 부산은 승강결정전을 치러야 할 가능성이 큰데, 최영준 감독이 부산을 완벽하게 바꾸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감독도 선수를 파악해야 하고, 선수도 감독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

부산이 윤성효 감독이 물러난 이후에 바로 최영준 감독을 선임했다면 지금쯤 많은 게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같은 11위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선수단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감독과 선수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의미다. 그랬다면, 남은 스플릿시스템 하의 5경기는 다른 양상의 경기가 됐을 가능성도 크다. 하위스플릿에서 경기를 치르는 만큼 정규경기보다는 승점을 따기가 수월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부산은 최영준 감독을 선임하면서 '흐름의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감독대행체제의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얻을 수 있는 극적인 변화가 있을까? 앞서 언급했던 선수들의 위기의식에 의한 반짝임 정도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산은 5경기를 남기고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면서 본격적인 수습에 나섰지만,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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