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S담쓰談]왜 '재벌' 구단들은 NC·넥센에 밀렸을까

조회수 2015. 10. 7. 13: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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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정규시즌이 막을 내렸다. 신생팀 케이티의 가세로 사상 처음으로 펼쳐진 10구단 체제. 포스트시즌(PS) 역시 4, 5위의 대결인 와일드카드(WC) 결정전이 신설돼 열띤 5강 싸움이 끝까지 펼쳐졌다.

결국 최강 삼성이 역대 최초 5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 한국시리즈(KS)에 선착했다. 막판까지 삼성을 괴롭힌 NC는 2위로 플레이오프(PO)에 직행했다. 두산이 넥센과 3위 경쟁에서 승리했고, SK는 가까스로 5위 싸움에서 살아나 가을야구 막차를 탔다.

5강 중 주목할 만한 두 팀이 있다. 바로 NC와 넥센이다. 재벌 기업들이 주름잡고 있는 프로야구 판에서 최근 신선한 돌풍을 일으킨 두 팀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모기업, 또는 이마저도 없는 가운데서도 국내 굴지의 모그룹의 지원을 받는 팀들을 제치고 가을야구를 펼치는 것은 KBO 리그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반등을 이끈 감독들' 올해 NC의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직행을 이끈 NC 김경문(왼쪽) 감독과 3년 연속 가을야구로 팀을 견인한 넥센 염경엽 감독.(자료사진=CN, 노컷뉴스 황진환 기자)

NC와 넥센은 최근 몇 년 동안 가을야구를 펼쳐왔다. 넥센은 2013년부터 3년 연속, NC는 지난해부터 2년 연속 PS에 나섰다. 상대적으로 적은 실탄, 또 짧은 구단 역사를 감안하면 대견한 일들이다.

먼저 넥센 히어로즈는 KBO 리그 구단 운영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모기업 없이도 KBO 리그 구단이 자생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창단 초기의 온갖 고초를 딛고 어엿한 리그 강팀으로 거듭났다.

영웅군단의 탄생은 순탄치 않았다. 히어로즈는 2007년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명가 현대 선수단을 주축으로 2008년 창단했다. 그러나 당시 히어로즈의 창단은 현대를 인수하려던 농협, STX, 케이티 등 거대 기업들과 협상이 결렬된 이후 울며 겨자먹기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현대 인수를 놓고 협상했던 투자회사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앞서 언급한 대기업과는 천양지차의 사세와 규모였던 까닭이다.

일단 당시 8구단 체제를 이어가야 했던 상황이라 센테니얼이 KBO 회원사가 되긴 했으나 주위 시선이 살갑지만은 않았다. 재벌 기업 총수가 구단주인 다른 구단들은 이른바 '격이 맞지 않는' 회원의 합류가 마뜩치 않았다. 구단 사장단 모임인 KBO 이사회에서 이장석 현 넥센 대표이사가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는 힘겨웠다. 히어로즈 운영보다는 투자 회사의 속성처럼 거액의 차익을 내고 팔아치우려고 한다는 일반의 의혹어린 시선도 적지 않았다.

히어로즈는 늘 구단 재정이 빈약했다. 모그룹의 풍족한 지원을 업은 타구단과 달리 스폰서 기업 후원만으로 근근히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2008년 타이틀 스폰서였던 우리담배가 떨어져나갔던 2009년에는 스폰서 없이 '서울 히어로즈'라는 이름으로 시즌을 치렀다. 2010년에는 거센 비난 속에 장원삼(삼성), 황재균(롯데), 현 주장 이택근 등 주력 선수들을 팔면서 운영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럴 때가 있었는데...' 지난 2010년 3월 히어로즈 구단이 넥센 타이어와 메인 스폰서 계약을 맺은 뒤 강정호(왼쪽)와 황재균이 새 유니폼을 입고 기념촬영하는 모습. 그러나 이들은 이제 다른 팀에서 뛰고 있다.(자료사진)>

하지만 이를 기점으로 차츰 살림살이가 나아지기 시작했다. 넥센 타이어라는 메인 스폰서와 연장 계약을 맺는 등 안정적 재정 기반이 서서히 마련됐다. 2011시즌 뒤 LG에 보냈던 이택근이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리자 4년 50억 원에 데려온 게 대표적이다. 거품 논란과 스폰서 기업 유치를 위한 과시용 계약이라는 추측도 있었지만 어쨌든 넥센이 재정적 자립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넥센은 그러나 기본적으로 돈을 펑펑 쓰는 구단이 될 수 없다. 전력 강화를 위한 대형 FA 영입은 이택근이 거의 유일했다. 알뜰한 트레이드나 내부 육성을 통해 자원들을 보강했다. KBO 최고 거포로 거듭난 박병호는 2011년 LG와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 이전 팀에서 원석이었던 박병호를 세공해 KBO 최고의 보석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본인의 노력이 우선이었겠으나 잠재력을 폭발시킬 기회를 준 것은 구단이었다.

지난해 MVP 서건창 역시 마찬가지다. 2008년 LG 신고 선수로 입단해 이듬해 방출된 서건창은 군 복무 뒤 2012년 입단 테스트를 거쳐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주전을 꿰찼고, 지난해 사상 첫 200안타(201개) 고지를 밟으며 최우수선수의 영예까지 안았다. 올해 최다안타왕(188개) 유한준은 2000년 현대에 입단해 올해 비로소 대기만성을 이룬 선수다. 올해 신인왕 후보인 유격수 김하성은 지난해 2차 3라운드 29순위로 뽑았지만 잘 갈고 닦았다.

이들을 주축으로 넥센은 2013년 정규리그 3위로 창단 첫 가을야구에 나선 감격을 누렸다. 지난해는 2위로 순위를 한 단계 높여 역시 창단 첫 KS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올해도 순위는 아쉽지만 어쨌든 강정호(피츠버그)의 공백을 메우며 PS 마지노선을 넉넉히 넘었다.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는 대기업 구단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상황에 맞게 선수를 영입하고 길러낸 구단 운영이 맺은 결실이다.

외국 선수 운영도 내실이 있다. 넥센에 100만 달러 이상 거액의 외국 선수는 없다. 지난해 20승, 올해 15승을 거둔 앤디 밴 헤켄도 총액 80만 달러다. 올해 13승을 거둔 라이언 피어밴드는 40만 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지난해 10승을 거둔 헨리 소사가 LG로 옮겨갔는데 표면 상으로는 선수가 밴 헤켄 이상의 금액을 요구한 게 이유라고 했지만 야구계에서는 넥센이 실리를 챙겼다는 게 정설이다.

<넥센 선수단이 지난 3일 올 시즌 정규리그 최종전을 치른 뒤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모습.(자료사진=넥센)>

제 9구단으로 KBO 리그에 합류한 NC 역시 창단이 녹록치 않았다. 2011년 당시 일부 구단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모기업이 게임 회사인 NC가 한 시즌에 수백억 원씩 들어가는 야구단 운영을 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이었다. 넥센이야 8구단 체제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점이 있었지만 새롭게 생겨나는 NC의 창단 당시 상황은 또 다른 것이었다.

특히 부산 경남지역의 터줏대감 롯데의 반발이 심했다. NC가 창단할 경우 경남을 연고로 내줘야 하는 롯데로서는 상실감이 있었을 터. 바로 이웃에 생길 적에 대한 경쟁 심리도 있었을 터. 당시 구단 대표는 "KBO 리그의 수준을 감안하면 9구단은커녕 6개 구단 체제가 적당하다"는 발언까지 해가며 NC의 창단을 반대했다.

하지만 NC는 무섭게 성장하며 기존 구단들을 빠르게 넘어섰다. 2012년 퓨처스리그를 거친 NC는 1군에 처음 합류한 2013년 역대 신생팀 최다승인 52승(72패4무), 승률 4할1푼9리로 9개 팀 중 7위에 올랐다. 1군 적응을 마친 지난해는 정규리그 3위로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창단 2년 만의 PS는 NC가 최초다.

그러더니 올해는 당초 예상을 깨고 최강 삼성을 위협할 정도의 거대 공룡으로 자라났다. 사실 NC의 지난해 돌풍은 신생팀 프리미엄 때문이었다는 의견이 적잖았다. 외국 선수 4명 보유에 3명 출전이라는 이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팀과 동일한 조건에서 올해 NC는 2위로 지난해보다 오히려 한 계단 올라섰다. 롯데를 비롯한 대기업 구단들이 소외된 가을야구를 2년째 맛보면서 PO에 직행해 창단 첫 KS 진출까지 노리고 있다.

<'누구는 하지 못하는 가을 질주' NC 선수단이 5일 정규리그 최종전을 마친 뒤 마산 홈 팬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자료사진=NC)>

NC의 구단 운영은 넥센과는 조금 다르다. 다른 구단에는 규모에서 못 미칠지 모르지만 엄연히 모기업이 있다. 지원은 여느 구단 못지 않아 쓸 데는 확실하게 쓴다. 야구단에 대한 애정은 오히려 기존 구단들을 능가한다. 쓸데없는 참견은 없다는 점이 다르다. 2013시즌 뒤 FA로 풀린 이종욱과 손시헌을 각각 4년 50억, 30억 원에 데려왔다. 2년차 외인 에릭 테임즈에게 연봉 100만 달러를 안겨 올해 전지전능의 활약으로 보상받았다.

알토란 같은 선수 영입과 견실한 육성, 꾸준한 기회 보장에 따른 스타 발굴 등은 넥센과 비슷하다. NC는 2013년 이재학과 지난해 박민우 등 2년 연속 신인왕을 배출했다. 2011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에서 데려온 이재학은 3년 연속 10승, 선발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신인 박민우는 그해 2군, 2013년 1군에서 갈고 닦아 지난해 신인왕에 이어 올해는 타율 3할4리 111득점 46도루를 올렸다.

이밖에 NC는 나성범이라는 간판 스타를 키워냈다. 연세대 시절 투수였던 나성범에게 타자 전향을 권유했는데 선견지명이었다. 나성범은 2013년 첫 시즌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지난해 타율 3할2푼9리 30홈런 101타점으로 팀의 첫 골든글러브의 영예를 안겼고, 올해도 타율 3할2푼6리 28홈런 135타점 112득점 23도루로 맹활약했다.

여기에 이호준, 손민한 등 고참들이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등 NC는 신생팀임에도 신구 조화가 절묘하다. 기존팀 못지 않은 과감한 투자, 여기에 알찬 육성과 기회 보장, 베테랑의 가세까지 NC가 빠르게 리그 정상권에 오른 이유다.

<'팀 모두의 값진 기록' 지난 3일 인천 SK 원정에서 사상 최초 40홈런-40도루를 달성한 테임즈가 2루 베이스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자료사진=NC)>

허구연 MBC 해설위원 겸 KBO 야구발전위원장은 "올해 정규리그는 NC의 선전이 돋보였다"면서 "넥센도 강정호가 빠졌지만 그래도 강팀임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런 팀들이 대기업 구단들을 제치고 포스트시즌에 나선다는 점은 야구계가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한 마디로 이제는 모그룹 수뇌부를 위한 이른바 '오너 야구'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허 위원은 "지금까지 프로야구는 소위 모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돼왔다"면서 "하지만 프런트들이 모그룹에 휘둘리는 구단들의 최근 성적은 부진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반대로 NC와 넥센처럼 야구를 잘 아는 프런트들이 있는 구단은 최근 잘 나가고 있다"면서 "그렇다면 KBO 리그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는 정해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적잖은 재벌 기업 구단들이 모그룹 수뇌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 사령탑 인선 문제는 그룹 오너의 의중이 절대적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 그룹 최고위층에서 선수 기용 등 야구단 운영에까지 깊숙하게 개입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올해 가을야구가 무산된 팀들만 봐도 적지 않다. 석연찮은 감독 인사로 정평이 난 롯데는 지난해 구단 대표의 불법 사찰 홍역 등 최근 몇 년 동안 바람 잘 날이 별로 없었다. 올해 구단주가 신동빈 그룹 회장으로 바뀌면서 재도약을 다짐했지만 일단 변화가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또 다른 인기팀 LG는 모그룹의 과도한 관심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많다. 구단 운영의 큰 그림을 위한 세대 교체가 번번이 무산되는 점은 LG의 난제다.

그나마 KIA는 그룹 최고위층의 결정이 뜨거운 팬심에 막힌 경우다. 당초 KIA는 지난 시즌 뒤 선동열 전 감독과 재계약을 강행했으나 들고 일어난 팬들의 반발에 결국 선 감독이 일주일 만에 자진사퇴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선 감독은 삼성에서 두 차례 우승을 이끌었으되 KIA에서는 주전들의 줄부상 등으로 3년 연속 가을야구를 이루지 못하면서 팬심을 잡지 못했다. 김기태 감독이 후임을 맡은 KIA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올 시즌 나름 성공적인 세대 교체를 이루며 희망을 발견했다.

<'PS 못 가도 사랑해요' KIA 팬들이 6일 올 시즌 최종전이 끝난 뒤 그라운드로 나가 하트를 만들며 노란 풍선을 날리는 모습.(자료사진=KIA)>

한화의 경우는 조금은 다르다. 지난 시즌 뒤 임기가 끝난 김응용 전 감독 후임으로 구단 프런트가 추천한 인사가 부임하지 못했다. 팬들의 염원에 내려진 그룹 최고위층의 전격적 지시에 김성근 감독이 후임 사령탑에 오른 것. 김 감독은 그룹의 전폭 지원을 받고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최근 6년 동안 5번 꼴찌였던 한화의 반등을 이끌며 최고의 화제를 모았지만 일단 가을야구는 무산됐다. 한화의 내년이 궁금한 이유다.

신생팀 케이티도 역시 모기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팀이다. 전임 이석채 그룹 회장이 주도해 창단한 케이티는 그러나 정권과 기업 수장이 바뀌면서 정부기관과 공기업 등에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서슬푸른 지시에 지원이 열악해졌다. NC만큼은커녕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FA와 외국인 몸값에 올 시즌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시즌 중 과감한 트레이드로 후반기 선전하며 내년을 기약했다.

올해 3위를 차지했으나 두산 역시 그룹 수뇌부의 개입이 깊숙한 팀으로 꼽힌다. 특히 2013시즌 KS 준우승을 차지한 김진욱 전 감독의 전격 경질은 야구계에 큰 충격을 줬다. 부랴부랴 송일수 2군 감독을 앉혔지만 지난해 두산은 두터운 전력에도 가을야구가 무산됐다. 이후 두산은 임기 2년을 남긴 송 감독을 경질하는 등 4년 동안 5명 사령탑이 오가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삼성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기업이 모그룹이긴 하다. 그러나 최근 10여년 이상 선수단 운영은 감독에게 전권을 주고 있다. 2005년 선수 출신 최초의 구단 대표가 된 김응용 사장은 제자인 당시 선동열 감독에게 일체 야구와 관련된 말은 꺼내지 않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삼성은 막대한 자금을 쓰지만 대형 FA보다는 내부 육성에 공을 들이자는 중장기적인 방침으로 2010년대 최강팀으로 군림하고 있다.

사상 첫 10구단 시대를 맞은 올해 KBO 리그는 한 시즌 최다 관중(736만여 명)을 불러모으며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임을 다시 입증했다. 그러나 과연 구단 운영까지 뜨거운 인기와 시대의 흐름에 맞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그라운드 현장에 떨어져 겉에서만 지켜보는 그룹 핵심 인사의 의중에 좌우되는 구단이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NC와 넥센의 선전은 전환점을 맞은 현재 KBO 리그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글=CBS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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