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타인의 시선] '돈에 영혼은 팔지 않아!' 축구장 가슴 뜨거운 사내들

조회수 2015. 8. 20. 09: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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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로맨스가 아니다. 돈의 흐름을 거스르기 어려운 게 프로의 세계다. 그라운드 위는 뜨겁지만, 무대 뒤는 차갑다. 비즈니스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알면서도 좋아하는 선수를 떠나 보낸 팬들은 아쉬워할 수밖에 없다. 특히 중하위권 팀들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런 종류의 아픔을 더 많이 겪는다. 표현 그대로 시즌 내내 팀을 먹여 살리던 선수들은 시즌이 끝나면 구단을 먹여 살리기 위해 떠나기 마련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이적선수는 이적료를 남긴다.

'금쪽 같은' 선수를 떠나 보낸 것도 서러운데, 이 팬들은 시즌 중에 더 큰 아픔을 느낄 가능성도 있다. 그 선수가 다른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찾아와 여전히 '우리편'인 선수들을 제치고 골을 성공시킬 때, 팬들의 슬픔은 분노가 될 수 있다.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모든 것을 잃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선수는 죄가 없다. 선수는 좋은 조건을 거절하기 어렵고, 중소구단은 이적료를 무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선수는 더 좋은 경력을 얻고, 구단은 그 이적료를 통해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고 구단 운영비를 마련한다. 결과적으로 이적한 선수는 전 소속팀이라고 해서 골을 넣지 않을 수는 없다. 그는 이미 또 다른 구단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팬들이 상상하는 최악의 경우는 종종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한때 정을 쏟았던 선수가 멋진 세리머니를 하거나, 혹은 자신들을 도발하는 세리머니를 펼친다면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2009년, 아스널에서 맹활약하다 맨체스터시티로 이적한 엠마뉘엘 아데바요르는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경기장을 가로 질러 아스널팬 앞에서 세리머니를 해 지탄을 받기도 했다.

아데바요르와 같은 선수만 있다면, 축구장을 찾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축구는 계속되고 있고,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도구로 인정 받고 있다. 선수와 자금은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만 마음은 그 흐름과 100%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라운드의 로맨티시스트라고 불리는 이들이 이를 증명한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그라운드의 로맨티시스트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세리에A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했던 바티스투타는 2000/2001시즌을 앞두고 AS로마로 이적했다. 개인으로 우승을 바랐고, 팀의 재정 공백도 메워야 했다. 결국 바티스투타는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로마로 둥지를 옮겼다.

피오렌티나 팬들이 상상한 최악의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00년 11월 26일 바티스투타는 로마로 원정 온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었다. 발리슛으로 전 동료였던 프란체스코 톨도를 넘어섰다. 골을 터뜨린 후 기관총 세리머니를 펼치기로 유명한 바티스투타는, 골을 넣은 뒤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눈물까지 보였다. 그는 경기 후 이렇게 말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는 로마가 이기길 바랐다. 우리는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고, 계속 앞서 나가길 바랐다. 나는 내 일을 해야 했고,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내가 골을 터뜨리지 않고 로마가 피오렌티나를 이기길 바랐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서부지역의 갱강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올랭피크리옹의 클로디오 보뷔는 프랑스 갱강의 스타드 루두루에서 벌어진 EA갱강과의 '2015/2016 프랑스 리그앙' 2라운드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교체로 들어와 후반 34분 헤딩으로 골을 터뜨렸다. 리옹은 시즌 첫 승을 거뒀다. 하지만 보뷔는 기뻐하지 못했다.

보뷔는 골을 넣은 뒤 바로 왼손을 오른쪽 가슴에 대면서 오른쪽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동료들이 달려와 껴안는데도 기쁨을 나타내지 않았다. 보뷔는 마치 갱강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는 듯 했다.

보뷔가 세리머니를 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갱강이 친정이기 때문이다. 보뷔는 2015/2016시즌을 앞두고 리옹으로 왔다. 그는 지난 2시즌 동안 갱강 유니폼을 입고 맹활약했고, 1500만 유로(약 196억 원)를 갱강에 남겼다. 갱강은 지난 시즌 보뷔와 함께 유럽축구연맹(UEFA)유로파리그 16강에 진출했고, 13위로 리그를 마쳤다. 구단 사상 최고 성적에 가까웠다.

"갱강에 다시 와서 매우 기쁘다. 나는 리옹 선수가 됐지만, (갱강은) 내 가족이고, 내 팬이며, 내 클럽이다…(패배로 아쉬워할) 예전 동료와 예전 팬들 때문에 슬프다. 하지만 새로운 클럽에서 골을 터뜨려 매우 기쁘기도 하다. 내가 잘할 때나 잘하지 못했을 때나 나를 지지해준 루두루의 팬들을 존중하기 위해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다."

바티스투타가 피오렌티나에서 입지를 다졌듯이, 보뷔는 갱강에서 자신의 꿈을 키웠다. 보뷔는 프랑스 본토가 아닌 과달루프(대서양에 있는 섬) 출신이다. 14살에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본토로 건너온 이후 여러팀을 오가다가 갱강에서 진가를 확실히 보여줬다. 보뷔는 자신의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었다.

천문학적인 이적료와 연봉으로 축구계는 점점 더 따뜻함이나 마음과 같은 단어가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워지고 있다. 선수들도 이제 한 팀에서 은퇴할 때까지 뛰길 바라지 않고, 바랄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팬들은 정 붙일 곳을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바티스투타나 보뷔와 같은 선수들이 조그만 틈에서 이야기꽃을 피워내고 있어 축구의 온기는 식지 않고 있다.

모두가 대세나 흐름을 따른다면, 그건 인간이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다는 뜻이다. 축구가 그나마 볼만 한 것은 이렇게 자신의 방식으로 의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 동영상 캡쳐, 갱강-리옹 홈페이지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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