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k.column] 명장열전 톱6..치열했던 경쟁

2015. 8. 1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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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 조세 무링요와 아르센 벵거는 서로 호의적이지 않다. 2015-16시즌 프리미어리그가 개막하기도 전부터 서로 비아냥거리는 걸 보면 틀림없다. 올 시즌도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놓고 다툴 테니 앞으로 관계가 개선될 리가 없다.

축구계에는 이런 불편한 관계가 드물지 않다. 월드 No.1 풋볼매거진 < 포포투 > 가 흥미진진했던 축구 감독 라이벌 여섯 쌍을 소개한다.

# 알렉스 퍼거슨 vs 아르센 벵거

벵거와 티격태격한 사람이 무링요가 처음은 아니다. 무링요가 바르셀로나의 '스태프'였던 90년대 중반, 아스널의 벵거는 일찌감치 퍼거슨과 온갖 장외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1996년 벵거는 일본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아스널로 옮겨왔다. 퍼거슨은 "그 친구 '초짜'잖아. 의견이 있으면 일본 축구에 대해서나 떠들라고 해"라는 환영사를 남겼다. 이후 8년에 걸쳐 프리미어리그 트로피가 하이버리와 올드 트라포드 사이를 오가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나빠졌다.

절정은 '피자게이트'였다. 2004년 10월 올드 트라포드에서 두 팀은 맞대결을 펼쳤다. 경기 후 복도에서 마주친 양 팀 선수단은 서로 음식을 던지면서 으르렁댔다. 당시 충돌에서 검은 양복 차림의 퍼거슨은 아스널 쪽에서 날아온 피자 조각을 맞았다. 피자를 던진 주인공은 세스크 파브레가스로 추정된다.

애슐리 콜은 자서전에서 "복도에서 양쪽 선수단이 모두 엉켰다. 눈이 뒤집혀서 서로 욕을 해댔다. 나는 중간에 끼었다. 벵거 감독은 불어로 소리를 질렀고, 퍼거슨 감독은 스코틀랜드 사투리로 맞섰다"라고 적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호전되었다. 나이가 들어 부드러워진 덕분도 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아스널이 맨유의 경쟁자가 되지 못한 탓도 크다. 퍼거슨과 벵거는 더는 으르렁거리지 않지만, 어쨌든 한때 두 사람의 불화는 악명 높았다.

#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 vs 카를로스 빌라르도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은 디에고 마라도나와 리오넬 메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축구에 끼친 영향의 크기를 따지면 절대 명장 2인, 메노티와 빌라르도를 살펴봐야 한다. 두 사람은 축구에 관한 상반된 철학으로 충돌했다. 장발과 줄담배가 상징이었던 메노티는 대중이 열광하는 축구를 지향했다. 빌라르도는 승리지상주의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개인 차원의 불화가 아니라 축구 철학의 맞대결이었다. 메노티는 1978년 FIFA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빌라르도는 1986년 FIFA월드컵을 들어 올렸다. 월드컵 우승 감독이 자신만의 철학을 주장한다면, 승패나 우열을 가리기는 불가능해진다.

두 사람은 아르헨티나라는 국적과 축구 감독이라는 직업 외에는 모든 생각이 달랐다. 아르헨티나를 넘어 전 세계 축구에서도 길이 남을 만한 라이벌이었다. 마치 핵폭탄이 없는 냉전 같은 느낌이었다.

# 브라이언 클러프 vs 돈 리비

1974년 클러프는 부임 6주 만에 리즈 유나이티드 감독직에서 해고되었다. 경질 확정 직후 요크셔 TV방송사는 클러프와 리즈의 전임 감독 리비(당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를 함께 불러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두 사람은 이전부터 매우 사이가 나빴다. 특히 클러프는 공개적으로 리비의 리즈를 "더럽다", "속임수"라고 날 세운 비판을 가해왔다.

이 자리에서 클러프는 자신이 이끌었던 더비와 리비의 리즈가 치열하게 경쟁해온 것이 리비를 향한 증오심의 원인이라고 인정했다. 당시 더비와 리즈의 맞대결은 1부 리그에서 가장 격렬한 더비매치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이가 나빴던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서로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클러프는 깨끗한 축구를 추구했다. 주심 판정에도 고분고분했다. 리비의 리즈는 '어둠의 기술'로 악명 높았다. 클러프는 많은 이들로부터 혼자 잘난 척한다는 시선을 받았다. 리비는 축구계 전반에 걸쳐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두 사람 모두 유능한 감독이었지만 경기장 안팎에서 보이는 방법론이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인터뷰에서 클러프는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를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정리했다. "리비와 다른 방법으로 축구를 해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나치게 이상향만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게 내 방식이다. 나는 약간 이상주의자다. 나는 동화를 믿고 그게 나다."

# 발레리 로바노프스키 vs 콘스탄틴 베스코프

클러프와 리비, 메노티와 빌라르도처럼 구(舊) 소련(소비에트연합) 축구계에도 철학의 충돌이 있었다. 열공학도(熱工學徒) 로바노프스키는 세 차례에 걸쳐 구(舊) 소련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분석적인 계획과 과학적인 관리에 집중하는 지도자였다. 반면에 베스코프는 축구를 예술로 바라봤다. 그는 그라운드 위에서 창의적인 자유를 부여해 선수들이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길 원했다.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는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에 걸쳐 절정에 다다랐다. 당시 로바노프스키는 디나모 키예프, 베스코프는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를 각각 이끌고 있었다. 우승 횟수에서는 로바노프스키가 앞섰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 디나모는 소비에트 슈프림 리그를 네 번 제패했다. 스파르타크는 1979년과 1987년에 우승했다. 하지만 수많은 존경을 받았던 쪽은 흥미진진한 스타일을 추구했던 베스코프였다.

# 아리고 사키 vs 파비오 카펠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을 이야기할 때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사키의 AC밀란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철저히 전술에 집착하는 사키의 방법론은 사실 당대에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AC밀란 팬들이 인정하는 감독은 카펠로다.

1991년 사키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맡으면서 카펠로는 AC밀란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밀란에서 사키는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와 스쿠데토 1회 실적을 남겼다. 카펠로는 밀란과 함께 유러피언컵 우승 1회와 세리에A 우승 4회를 달성했다. 하지만 사키는 카펠로의 철학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이유였다. 사키는 "카펠로에게 축구는 오로지 승리뿐이다. 축구의 미학을 그는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 조세 무링요 vs 펩 과르디올라

"이곳(레알 마드리드 기자회견실)에선 그가 보스다. 여기선 그가 주인공이다. 나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바르셀로나가 그를 상대하고 싶다면, 다른 감독을 구해야 할 거다." (2011년 4월, 펩 과르디올라)

UEFA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과르디올라는 무링요 관련 질문에 저렇게 대답했다. 평소 신중하고 예의 바르기로 유명한 감독이었던 터라 이렇게 과격한 발언은 큰 충격을 던졌다. 동시에 두 사람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하다는 사실의 확인이기도 했다.

무링요와 과르디올라의 관계 악화 원인은 복합적이다. 개인 성향이 다를 뿐 아니라 각자가 이끄는 팀 간 경쟁도 치열했기 때문이다. 무링요는 거리낌 없이 수동적 전술(역습 중심)을 표방했다. 무링요는 부임 초반에 당했던 치욕을 그 방식으로 뒤집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르디올라는 승리를 따내는 방식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실적을 합치면 1부 리그 우승 13회,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4회에 달한다. 오늘날 최고의 축구 감독 2인으로도 나란히 손꼽힌다. 그 덕분에 서로를 더 의식하는지도 모른다.

글=Greg Lea,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포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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