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투어에서 엄마 골퍼로 산다는 의미

김세영 기자 2015. 8. 1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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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현이 대회가 끝난 후 딸이 건네주는 꽃다발을 받고 있다(왼쪽 큰 사진). 작은 사진은 홍진주(위)와 서희경. 사진=박태성 기자

줄리 잉스터. '성공한 엄마 골퍼'의 대명사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31승. 그 중 메이저 대회 7승. 그 가운데 4승은 출산 이후 거둔 메이저 우승.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 명예의 전당 헌액. 올해 55세인 그는 여전히 투어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두 딸을 둔 엄마로서도 모범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런데 일과 가정에서 모두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골프 여제'로 군림했던 안니카 소렌스탐과 로레나 오초아도 결국은 가정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미련 없이 필드를 떠났다. 프로 골퍼로서의 삶과 가정생활에서의 균형점을 찾기란 그만큼 어렵다. 엄마 골퍼라고는 해도, 아빠 골퍼라고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는 3명의 '엄마 골퍼'들이 활약하고 있다. 안시현(31), 홍진주(32), 최혜정(31)이다. 여기에 미국 무대를 뛰면서 종종 초청 선수로 출전하는 서희경(29)까지 포함하면 총 4명이다. 역대 최다다. 그들로부터 엄마 골퍼로서 투어를 뛰는 의미와 병행의 어려움에 대해 들어봤다.

안시현은 올해부터 골프백에 딸의 이름을 새기고 출전한다. '마이 러브 그레이스'(MY LOVE GRACE)라고 적혀 있다.

먼저 안시현은 지난해부터 투어에 복귀했다. 지난 2003년 19세의 나이로 국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CJ나인브릿지 클래식에서 우승한 '원조 신데렐라'다. 이듬해 미국 무대로 직행해 신인왕까지 차지했다. 그랬던 그도 이제는 4살 된 딸 그레이스의 엄마다. 그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골프백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의 백에는 '마이 러브 그레이스'(MY LOVE GRACE)라고 적혀 있다.

안시현은 "이제는 딸이 엄마를 조금씩 더 많이 찾는다. 시합 전에 '엄마 굿 샷 하러 다녀올게'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떼를 쓰고, 운다. 그럴 땐 발이 안 떨어진다"며 "아침에 나올 때마다 정말 힘들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 게 항상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그는 이어 "직장인들은 어찌됐건 퇴근하면 집에 가지만 우리 같은 프로 골퍼는 지방으로 대회를 다니다 보니까 집을 자주 비우게 된다. 아이가 가끔 대회장에 놀러나 와야 오래 볼 수 있다. 그런 게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고 했다.

올해 투어에 복귀한 홍진주는 월요일과 화요일은 무조건 아이와 놀아준다고 했다. "그래야 아이가 내가 엄마라는 걸 아니까"라는 그의 말에 엄마 골퍼로서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박태성 기자

홍진주는 안시현과 같은 케이스다. 2006년 LPGA 투어 대회였던 코오롱-하나은행 챔피언십에 우승하며 미국 무대에 직행했고, 현역 시절 '필드의 패션모델'로 이름을 날렸다. 이젠 19개월 된 아들 박은제의 엄마이기도 하다.

올해 투어에 복귀한 그는 "프로 골퍼는 집중력과 이미지 트레이닝이 중요한데 골프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하다. 뭘 하더라도 아이가 뭐하고 있을지 궁금해 한다"면서 "원래 월요일은 푹 쉬었지만 지금은 아이와 그 전에 못 놀아줬으니 월요일과 화요일은 꼭 놀아준다"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진 말이 가슴을 울렸다. "그래야 내가 엄마라는 걸 아니까."

2009년 KLPGA 투어 상금왕, 2011년 LPGA 투어 신인왕을 차지한 서희경도 올해 '(국)도현이 엄마'로 돌아왔다. 오는 15일이 마침 아들의 돌이다. 네 명의 엄마 중 가장 어린 아이를 두고 있어서인지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 없다는 게 가장 마음 아프다"고 했다.

필드의 패션모델로 불렸던 서희경은 올해 투어에 복귀했다. 마침 오는 15일이 그의 아들 돌이다. 사진=박태성 기자

이렇듯 힘든 엄마와 투어 생활을 병행하는 이유는 뭘까. 서희경은 "선수 생활을 계속 해야 할지에 대한 갈등은 여전하다"면서도 "아직까지 한국에는 줄리 잉스터 같은 선수가 없다. 내가 그런 길을 개척하고 싶다. 그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도 있다"고 했다.

홍진주는 "지금은 아이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시드를 유지하면서 투어를 계속 뛰고 싶다. 나중에 엄마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투어 12년 동안 우승도 하고, 많은 걸 해봤지만 마지막 소원은 18번홀 그린에서 아이와 우승 사진을 찍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고도 싶다"고 덧붙였다.

2주 전 아이와 모처럼 휴가를 다녀왔다는 안시현도 "임신을 했을 때부터 다시 골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도 하고 싶다. 엄마 골퍼들이 더욱 많아지다 보면 미국처럼 투어 선수를 위한 육아 시스템도 생길 것"이라고 했다. 이들 3명은 또한 "아이를 낳은 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13년 출산 7개월 만에 투어에 복귀했던 최혜정은 올해 상반기 대회를 치른 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선수로서의 삶보다는 엄마로서의 삶에 더욱 다가간 듯하다. 사진=박태성 기자

2012년 출산해 이제 네 살 된 딸(이서영)을 둔 최혜정은 앞선 3명과 비슷한 마음이었으나 최근 달라졌다. 출산 7개월 만인 2013년 4월 투어에 돌아온 그는 복귀 첫해 상금 랭킹 16위까지 올랐다. 요즘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최혜정은 그걸 '독'이었다고 했다.

그는 "복귀 첫해 성적이 괜찮으니까 그 다음 해엔 욕심이 생겼다"면서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엄마를 더 찾는데, 난 욕심을 부리니까 오히려 성적은 좋지 않았다. 갈등이 생겼다. 그때부터 골프가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고 했다.

올 시즌 그는 6월 이후 대회에 나서지 않았다. 두 달 정도 쉬면서 새롭게 깨달은 게 있다고 했다. 아이 덕에 오히려 상처 받았던 '나'를 치유한 힐링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방금 보내고 잠시 쉬고 있었다는 그는 "프로 골프의 세계는 경쟁이 치열하다. 개인 운동이라 스트레스도 심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지내며 그런 것들을 모두 잊을 수 있었다"면서 "지금 내 나이에 우승하려면 그만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꿈은 있지만 그건 욕심이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즐기면서 하고 싶다. 선수적인 부분은 조금 내려놨다. 얼마 전 장정 언니와 통화를 했는데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행복하다'고 하더라. 프로 골퍼와 엄마로서 어떤 게 정말 행복인지 생각해 볼 문제"라고 했다.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줄리 잉스터와 결혼과 더불어 28세에 은퇴한 로레나 오초아 중 누구의 길이 옳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건 개인적인 가치관의 차이다. 물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투어가 성숙해 짐에 따라 엄마와 프로 골퍼 사이에서 고민하는 선수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어찌됐든 엄마 골퍼나 그냥 엄마나 세상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 엄마니까. 내 어머니처럼, 당신의 어머니처럼.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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