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스물 넷 최운정, 그녀에겐 골프가 마라톤이었다

김세영 기자 2015. 7. 2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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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정이 마라톤 클래식 최종 라운드 17번홀 그린에서 갤러리의 환호에 볼을 들어올리며 답하고 있다. AP=뉴시스

지난 2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개막전 취재를 위해 현지에 갔을 때다. 호텔방에 누워 있다 올해 새롭게 나온, '따끈따끈한' 선수 가이드북을 살펴보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한 페이지에서 눈이 멈췄다.

지난해 상금 랭킹 10위, 31개 대회에 출전해 29개 대회 컷 통과, 버디 순위 2위, 이글 순위 5위, 라운드 당 언더파율 7위, 평균 스코어 9위, 그린 적중률 10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그런데 우승컵이 없다. 지난해 상금 랭킹 20위 이내 선수 중 프로 데뷔 후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유일한 선수. 그는 최운정(24)이었다.

며칠 후 개막전이었던 코츠 챔피언십에서 그를 만났다. 대뜸 각종 데이터는 좋은데 아직 우승이 없는 이유를 물었다. 특별한 대답을 기대했으나 별 것 없었다. "그러게요. 저도 우승 한 번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올해는 꼭 우승을 하고 싶어요. 동계훈련 기간 동안 열심히 운동도 했거든요. 그래야 아버지도 놔드릴 수 있고요."

최운정이 처음 골프채를 잡은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어머니를 따라 간 스크린골프장에서다. 딸의 스윙을 본 어머니는 골프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했다. 최운정이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골프 인생을 시작한 계기다.

여건은 좋지 않았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고 있어 경기장에 데려다 줄 시간이 없었다. 다른 선수의 부모님 차를 얻어 타는 게 다반사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전국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된 최운정은 고2 때 "골프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며 미국 단기 유학을 결심한다. 부모의 반대가 심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 최지연씨는 딸의 결심 앞에 경찰 공무원을 퇴직하고 뒷바라지에 나선다.

최운정과 아버지 최지연 씨가 마라톤 클래식 최종 4라운드 연장 첫 번째 홀에서 퍼트 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AP=뉴시스

최운정이 지금까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아버지 최지연 씨고, 또 다른 한 명은 장재식 프로다. 기자의 말이 아니라 최운정 본인이 LPGA 투어 선수 소개란에 그렇게 써 놨다. 미국 PGA 클래식 A 멤버인 장재식 프로는 마이크 밴더 아카데미에서 수석 코치를 맡았고,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최운정이 미국에 처음 갔을 때 3년간 현지에서 그를 지도한 사람이 장 프로다. 지금도 최운정은 스윙에 대한 문제가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2주에 한 번씩은 스윙 동영상을 찍어 장 프로에게 카카오톡 등으로 문의를 한다.

장 프로는 최운정을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한국에 다시 가라고 했어요. LPGA 투어에 뛰려면 어느 정도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운정이는 순발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벙커샷도 제대로 못했죠. 장점이라곤 하나도 없었어요. 당시 운정이네 집안도 넉넉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괜히 달러 낭비하지 말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죠."

어린 최운정은 그러나 "이미 한번 왔으니 해 보겠다"며 버텼다. 아버지가 셋째 딸 뒷바라지를 위해 경찰공무원까지 퇴직한 상태라는 걸 들은 장 프로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마이크 밴더 아카데미에서 함께 연습하기로 했다.

"그 다음에 보니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가 운정이였죠. 제가 오히려 그만 좀 하고 쉬라고 말릴 정도였어요. 뭘 하나 시키면 될 때까지 했어요. 선수라면 컨디션 조절도 필요한데 운정이는 그런 것 따지지 않고 무조건 연습에 매달렸죠.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아카데미가 플로리다주의 아주 외진 곳에 있었어요. 정글 같은 곳요. 밤이면 코요테나 들개 울음소리도 들리고요. 하루는 사무실에 핸드폰을 놓고 와서 밤 11시에 다시 돌아갔는데 헬스장에 불이 켜 있더라고요. 운정이가 밤에 혼자 올라와서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거였어요. 밤에는 남자들도 무서워서 혼자서는 못 올라가거든요. 거기서 감동을 받았죠."

2012년 최운정(오른쪽)과 코치인 장재식 프로가 대회 중 촬영한 기념 사진. 사진=장재식 제공

'재능이라곤 하나도 없던' 최운정이 LPGA 투어에 합류하는 과정에는 우역곡절도 있었다. 2008년 퀄리파잉스쿨에서 공동 21위를 기록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LPGA 투어 사무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공동 21위 4명 중 2명에게 투어 카드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곧바로 대회장으로 돌아간 최운정은 4차 연장까지 치른 접전 끝에 투어 카드를 획득했다.

첫 해였던 2009년에는 첫 4개 대회에서 연속 탈락하는 등 하위권을 맴돌다 상금랭킹 86위로 아슬아슬하게 시드를 유지했다. 최운정은 좌절하지 않고 목표를 정했다. 전년도보다 무조건 좋은 성적을 내자고. 2010년에는 상금 랭킹 70위에 오르더니 2011년에는 35위, 2012년 20위, 2013년 17위에 이어 지난해에는 드디어 10위로 뛰어올랐다.

최운정이 마라톤 클래식을 제패한 날 아버지와 딸은 그린 위에서 펑펑 울었다. 이 울음 섞인 감동을 위해 그들은 156번이나 쓰라린 아픔을 맛봐야 했다. AP=뉴시스

냉혹한 프로 세계에서는 그러나 아무리 꾸준한 활약을 펼치더라도 우승을 하지 못하면 주목을 받지 못한다. 최운정이 그랬다. 2013년 미즈노 클래식과 지난해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대중은 그것까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주변에서는 "전문 캐디를 쓰지 않고 아버지가 백을 메서 그렇다"며 아버지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럴 때마다 최운정은 아버지에게 죄스러웠다. 아버지 역시 그만 백을 메야겠다고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만 최운정이 말렸다.

지난해 미즈노 클래식을 앞두고는 처음으로 전문 캐디에게 딸의 백을 맡겼다. 하지만 한 달 뒤 한일여자프로골프 국가대항전 첫날을 마친 최운정은 "이건 제 개인이 아닌 국가의 명예를 걸고 하는 대회다. 그런데 캐디가 불편하다. 나에겐 아빠가 가장 편하다"며 다시 캐디를 맡아줄 걸 주문했다. 그렇게 다시 아빠와 딸은 호흡을 맞췄다.

최운정이 미국 진출 이후 157번째 도전한 대회 이름이 공교롭게도 마라톤 클래식이다. 무려 7년이라는 긴 레이스 끝에 마침내 이 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아버지와 딸은 그린 위에서 펑펑 울었다.

그녀는 골프로 마라톤 클래식을 제패한 게 아니라 마라톤으로 골프를 제패했다. 스물 넷 그녀의 골프인생이 마라톤이었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k01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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