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들숨날숨] 대한민국 공격수, 사라진 것일까 못 키운 것일까

조회수 2015. 7. 19. 15: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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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사냥꾼이 사라졌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길 수 있는 스포츠다. 아무리 빼어난 경기력을 보여도 골을 넣지 못하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는 0-0 무승부다. 누가 넣어도 상관없다. 골키퍼나 수비수가 득점자가 되어도 똑같이 1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앞 선에서 활동하는 공격수가 골을 넣을 확률이 높고 때문에 걸출한 골잡이의 존재 유무는 성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골 사냥꾼이 사라졌다'는 축구계의 푸념은 꽤 심각한 문제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다는 국가대표팀 사령탑들의 토로가 번번이 "공격수가 없다"라는 것은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근래 대표팀 감독들이 모두 그랬다. 최강희 감독은 "박주영과 이동국, 김신욱 외 골을 확실하게 넣어줄 공격수가 누가 있을까"라고 반문했고 바통을 넘겨받은 홍명보 감독은 결국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박주영과 김신욱으로 최전방을 꾸렸다.

외국인 지도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괴로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주영과 김신욱의 몸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자 슈틸리케 감독은 새로운 인물을 발굴해야했다. 그 고육책 덕분에 이정협이라는 신데렐라가 탄생했으나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22라운드까지 마친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득점 선두는 11골을 기록한 전북의 외국인 스트라이커였던 에두다. 하지만 에두가 중국행을 선언하면서 순위가 끝까지 유지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에두에 이은 2위는 8골의 이동국이다. 1998년 데뷔한 서른여섯 이동국이 여전히 리그 최고의 골잡이라는 것은 존경 어린 박수와 함께 진지한 고민도 동반케 한다. 그만큼 마땅한 후발 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이런 흐름과 함께 현역 시절 특별한 골잡이였던 안정환 해설위원의 충고는 진지하게 귀담을 필요가 있다.

최근 '축구판 미생'들의 새로운 도전을 돕는 TV 프로그램 '청춘FC'의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안정환 위원은 '걸출한 공격수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위원은 일단 자신을 포함한 모든 축구인들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공격수 출신 지도자'들의 노력을 촉구했다.

안 위원은 "아무래도 공격수 출신들이 공격수를 더 잘 파악할 수밖에 없다. 평생 축구를 했으니 미드필더들을 지켜볼 수 있고 수비수도 파악할 수 있으나 자신의 주 포지션을 더 잘 아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공격 쪽에서 뛰었던 지도자들이 공격수를 많이 발굴해야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더 노력해야할 것 같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한국 축구사의 가장 찬란한 시기였던 2002월드컵 이후, 당시 히딩크 사단의 스트라이커였던 황선홍-최용수-안정환 이후 딱히 '다음 주자'라고 꼽을 수 있는 공격수가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불운과 부상 속에서도 이동국이 명맥을 이었으나 그 뒤로는 감감무소식이다. 안정환 위원은 "키워내지 못한 탓"이라고 소신 발언을 전했다.

안 위원은 "성인이 된 다음에, 프로에 들어온 이후에 갑자기 실력이 늘어서 뛰어난 공격수가 되기는 너무 어렵다. 차근차근 성장해야 좋은 공격수가 되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공백은 유소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계속해서 선수를 키워냈다면 이런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유소년 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유럽처럼 유소년을 키워내는 체계가 약하다"고 현실을 짚었다.

안 위원이 '어려서부터'를 강조한 것은, 나중에는 늦기 때문이다. 안정환 위원은 "만들어져있으면 힘들다. 프로에 들어온 다음에는 이미 지도자가 손을 쓰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마냥 유소년 지도자들의 책임으로 돌릴 일도 아니다. 늦었으면 늦은 만큼 지도자들도 더 노력해야하는데, 그 움직임도 부족했다. 안정환은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현역시절 안정환은 보기 드문 테크니션이었다. 개인기를 앞세워 상대 수비를 제치는 움직임을 즐겼고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 슈팅을 시도하는 것에 능했다. 때문에 '욕심이 많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따랐다. "공격수들은 이기적인 마인드도 필요하다"는 근래의 분위기와는 달랐다. 전형적인 스트라이커와는 거리가 있었고 포스트 플레이보단 2선에서부터 자유롭게 움직였다. 그랬던 안정환의 특별한 스타일은 외려 지도자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안정환은 "내가 한국을 일찍 떠나고 싶었던 것은, 떠나야했던 것은 나 같은 스타일을 선호하는 감독이 없었던 까닭이다. 내 플레이가 오히려 팀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감독들도 있었다"면서 "그저 큰 공격수들을 더 선호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팀도 장신 스트라이커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흐름이 이렇게 바뀔 것이라고 예상치 못한 것"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내가 뛰어났다는 뜻이 아니다. 지도자들이 다양성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세계적인 흐름 변화에 대한 감지 없이 무작정 기존의 통념만 고집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공격수들을 지적할 때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창의력 부재'와 '개인돌파 능력 결여' 등을 엮어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요컨대, 골 사냥꾼들의 사냥 능력이 줄어든 이유 중에는 가진 재주를 마음껏 표출시켜주지 못한 지도자들의 탓도 적잖다는 뜻이다.

홍명보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수비를 비롯해 전체적인 조직력은 감독이 만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공격수들의 마무리 능력은 선수들이 해야 할 몫이 크다"는 말로 아쉬움을 전했다. 한 축구인은 "대부분의 공격수들이 수비가 1명만 앞에 있어도 어쩔 줄 몰라 한다. 돌파할 생각은 안하고 패스를 하거나 뒤로 슬금슬금 꼬리를 내린다"면서 "적극성을 키웠어야 할 공격수들까지 어려서 수동적으로 축구를 배운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안정환이 말한 "어려서부터 축구를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잘 안바뀐다"는 지적과 일맥상통한 말이다.

지난 11일과 18일 방영된 청춘FC에서는 안정환 감독이 "공격수가 정말 없다"고 말하던 장면이 자주 나왔다.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은 경쟁에 밀려 부득이하게 떨어져야하는 자원들이 나오는데 공격진은 숫제 대상이 없어 꾸리기조차 힘들다는 토로였다.

요컨대 대표팀부터 하부리그, 나아가 아마추어 축구팀들까지도 공격수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2015년 대한민국 축구판의 현실이다. 사실 지금까지는 선수들 탓만 했다. 비난이 뛰는 이들에게만 향했다. 아마 화살의 방향을 보면서 뜨끔했던 이들이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공격수는 사라진 것일까 못 키운 것일까. 이제는 지도자들도 수면 위로 올라와 같이 질타를 받아야한다.

글= 임성일[뉴스1 스포츠부/lastuncle@daum.net]

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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