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아기 코끼리 덤보와 골퍼 전인지

김세영 기자 입력 2015. 7. 15. 12:31 수정 2015. 7. 1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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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여자오픈 당시 갤러리에 인사하고 있는 전인지. AP=뉴시스

커다란 귀와 서툰 동작 때문에 서커스단에서 놀림감이 된 아기 코끼리 덤보는 친구 쥐 티모시의 도움으로 하늘을 날게 된다. 덤보는 오히려 귀가 재산이 돼 결국 서커스단의 스타가 된다.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덤보'의 줄거리다.

전인지가 올해 70회째를 맞은 여자 골프 세계 최고 권위의 US여자오픈에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하며 월드 스타로 발돋움했다. 처음 출전한 US여자오픈에서 최소타 타이 기록으로 우승했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첫 골퍼가 됐다.

전인지의 별명은 잘 알려진 것처럼 '덤보'다. 원래는 남의 말을 잘 듣는다고 해서 '팔랑귀'였으나 웃는 모습이 귀엽고 호기심이 많아 덤보라고 부르게 됐다. 아버지 전종진 씨는 딸을 이렇게 기억한다.

"정말 귀찮았어요. 아이를 차에 태우고 가다보면 글씨를 하나하나 물어보고,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 지 끊임없이 질문을 해요. 답변을 일일이 하는 게 정말 힘들었죠."

전인지는 초등학교 때 IQ 137로 전국 수학 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수학 영재' 출신이기도 하다. 아버지 전종진 씨는 "처음에 IQ 통지서가 왔는데 전 잘못 나온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런데 경시 대회에서 대상을 타온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놈이 똑똑한가 보다 생각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전인지를 5년 전부터 지도해온 박원 프로도 전인지의 호기심은 말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전)인지는 궁금한 게 너무 많다. 뭐 하나 얘기하면 대부분의 프로들은 거기서 끝나는데 인지는 관련된 얘기와 반대되는 경우 등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들을 꺼낸다"면서 "그렇게 하길 수차례 반복한 뒤 자기 확신이 든 후에는 다른 사람이 어떤 말을 해도 절대 흔들림이 없다"고 했다.

전인지는 오랫동안 퍼팅에 발목에 잡혀 있었다. 올해 시즌 초반 미국에 다녀온 뒤 잘못된 습관을 바꾸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이번 US여자오픈 1,2라운드에서도 퍼팅 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3라운드부터 퍼팅이 살아나며 우승을 할 수 있었다. AP=뉴시스

아기 코끼리 덤보가 엄마를 만날 수 없게 돼 슬퍼하듯 전인지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13년 프로에 데뷔한 전인지는 실력에 비해 상복이 유달리 없었다. 데뷔 첫해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보였지만 신인상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막판 2개 대회를 남겨놓고 부상으로 시즌을 접으면서 김효주에게 돌아갔다. 지난해에도 3승을 기록했지만 김효주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올해도 전인지는 시즌 초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JTBC파운더스컵부터 기아클래식, ANA 인스퍼레이션까지 3개 대회 연속 출전한 적이 있다. 최고 성적이 공동 37위(JTBC파운더스컵)일 정도로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전환점이 됐다. 박원 프로의 말이다.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도 사실은 우승할 수 있었어요. 성적이 좋지 않아 언론의 관심 밖이었지만 당시 2m 이내 버디를 놓친 것만도 20개가 넘었죠. 아마추어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퍼팅의 백스윙이 문제였어요. 스윙의 다른 부분은 모두 완성이 됐는데 그것만 못 고치고 있었죠. 경기를 마친 후 인지에게 그랬어요. 이건 무조건 고쳐야 한다. 처음으로 화도 냈고요. 인지도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그러더니 한국에 와서 한 2주 정도 걸리더니 이제는 알겠다고 하면서 터치감이 너무 좋다고 하더군요."

아마추어 시절부터 전인지의 발목을 끝까지 잡고 있던 나쁜 습관을 고친 순간이었다. 그러자 전인지는 훨훨 날기 시작했다. 상반기에만 국내에서 3승을 거둔 것은 물론 일본 메이저 대회인 살롱파스컵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US여자오픈 당시 수 많은 선수들의 사인을 받은 한 갤러리의 모자. 전인지의 사인(맨 우측 상단)도 보인다. AP=뉴시스

전인지는 성실함으로도 유명하다. 스스로 지는 걸 싫어한다고 말한다. 아버지 전종진 씨는 "어렸을 때 태권도를 할 때도 친구들 사이에서 지고 오는 걸 싫어했다"면서 "누군가에게 지고 오면 표현은 안 하지만 속으로 꿍하고 있었다"고 했다.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도 티칭 프로의 "그거 밖에 못해?"라는 말에 3시간 동안 손에 물집이 잡힐 때까지 1000번 가까이 스윙 연습을 했던 지독한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딸을 프로 골퍼로 키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인지는 이제 게임을 즐길 줄도 알게 됐다. 이번 US여자오픈 우승도 게임을 즐기게 되면서 우승컵에 다가갈 수 있었다. 첫날 68타를 친 전인지는 둘째날 70타를 치며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1,2라운드에서 그린적중률 1위로 샷은 완벽했지만 너무 신중하게 퍼팅을 하려다 보니 번번이 버디 퍼트가 홀 앞에 멈춰 섰다.

전인지가 US여자오픈 우승 확정 후 트로피를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아기 코끼리 덤보도 처음 하늘을 날며 커다란 웃음을 지어보였다. AP=뉴시스

동행한 박원 프로는 3라운드부터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샷의 완성도는 잊어버리고, 이젠 몸이 반응하는 대로 해봐. 예선도 통과했고, 꿈의 무대에 왔으니 우리 한 번 실컷 즐겨보자. 갤러리의 반응에 너도 반응하면서 함께 웃어 보자"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3라운드에서는 다시 68타를 치며 2타를 줄였다. "그것 봐. 샷은 조금 흔들리지만 잘 풀리잖아. 모든 건 이제 물 흐르듯 가는 거야. 그러면 게임도 재밌어 지고, 스코어도 좋아지게 돼 있어."

마지막 4라운드 첫 홀에서는 갤러리와 호흡하는 게 뭔지를 실감했다. 전인지가 홀 1m 거리에 볼을 붙였는데 동반자인 일본의 오야마 시호의 두 번째 샷이 전인지의 볼을 맞혔다. 볼을 원래 자리로 옮겨야 되는 상황에서 갤러리들이 직접 나와 "여기다" "아니다. 저기다"하면서 서로 게임을 함께 하고, 즐기는 모습을 봤다. 전인지는 이후 갤러리의 반응에 함께 호흡하며 게임을 즐겼고, 마지막 15~17번홀에서 3연속 버디를 낚으며 우승컵까지 차지했다.

아기 코끼리 덤보는 티모시가 마법의 깃털을 코에 달아주며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에 힘을 얻어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게 된다. 전인지 역시 처음엔 주변 사람들이 팔랑귀라고 놀렸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끝없는 호기심과 성실함으로 문제를 파고들었고, '난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 속에 월드스타로 훨훨 날아올랐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k01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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