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임종률의 S담쓰談]스포츠까지 중단됐다면 우리는 어떻게 숨을 쉬었을까

조회수 2015. 6. 11. 09:09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온 나라가 메르스에 감염된 것 같다. TV와 라디오, 신문 등 언론에서는 연일 메르스 관련 뉴스를 쏟아낸다. 인터넷과 모바일에서도 감염자와 사망자가 늘었다는 소식이 도배를 이룬다. 대한민국 전체가 심각한 메르스를 앓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물론 확산을 방지하고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은 당연하다. 정부 당국과 의료계가 힘을 합쳐 난국을 헤쳐나가야 할 책임과 본분이 있다. 그 당연한 것을 하지 못해서 사태가 커진 것은 기왕 벌어진 일이다. 늦게나마 엎질러진 물은 담고 닦아내 더 흐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 칼럼을 읽는 여러분을 포함한 전 국민 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는 이 낯선 이방의 바이러스가 더는 침투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확진자가 빨리 낫기를, 또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 라야 할 일이다.

< '이거라도 해야 숨통이 트이죠' 지난 7일두산-넥센의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목동 경기 전 여성 팬들이 마스크를 쓰고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스포츠조선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06.07/) >

하지만 몇날 며칠 동안을 메르스 관련 뉴스를 접하다 보니 없는 병까지 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 이제는 수십 년 째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몸살, 감기처럼 흔한 질병으로 몸 속에 있는 것만도 같다.

정부에서 이번 주가 고비라고 하니 극성기는 곧 넘길 것 같지만 그러다가 내 숨도 곧 넘어갈 것도 같다. 불안하고 답답하고 우울하고 그렇다. 감염자가 아니라도 자가 격리돼 세상과 단절된 것만 같은 느낌까지 드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런 갑갑한 마음을 풀어줄 만한 것이 바로 스포츠다. 그라운드에서, 코트에서 달리고 땀 흘리다 보면 우울함까지 땀 구멍을 통해 배출된다. 본인이 아니어도 다른 이가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싹 가셔 후련하고 상쾌하다.

다른 이의 운동에 대한 관람은 곧 프로 스포츠를 의미한다. 전문 선수들이 펼치는 묘기와 승리에 대한 열정, 극적인 승부는 하는 것 이상의 희열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내고 경기장을 찾고 TV나 휴대전화, 컴퓨터를 켜 금쪽같은 시간 을 내 경기를 지켜본다.

그런데 최근 메르스에 대한 확산 우려 때문에 스포츠 경기도 중단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감염성이 높은 만큼 사람들이 모이는 경기장에서도 메르스가 전염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당연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 '대전 맞아?' 5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케이티의 경기에 평소와 다르게 좌석이 비어있는 모습. 2015.6.5/뉴스1 © News1 신성룡 기자 >

국민 스포츠 프로야구도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중단에 대한 고민을 했다. 메르스는 KBO 흥행에도 직격탄을 날린 터였다. 5월 평균 5월 평균 1만2715명이던 관중은 6월 3000명 이상 줄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도 마스크로 꽁꽁 무장한 뒤 관람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한 관계자는 리그 중단 가능성을 묻는 필자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되물었다. KBO에서도 메르스 사태가 워낙 심각한 만큼 리그 강행과 중단을 놓고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었다.

여기에 김성근 한화 감독이 "야구보다 사람이 먼저"라면서 리그 중단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야신'으로 불릴 만큼 야구 팬들에게 영향력이 큰 김 감독인 만큼 무시할 수 없는 여론이 형성된 터였다. 이게 지난 9일 KBO 이사회가 열리기 전의 일이었다.

KBO 이사회는 그러나 리그 중단은 없다고 결정했다. 집으로 돌아간 3000여 명보다 끝까지 경기장을 찾아주는 평균 9000명 가까운 팬들의 열정을 져버릴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KBO 관계자는 "못 오신 분들도 TV 중계 등을 통해 야구를 함께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조심을 해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철저히 대비하되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 김성근 한화 감독이 마스크를 낀 채 취재진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자료사진=일간스포츠) >

지금까지 메르스는 밀폐된 공간에서 전염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병원에서 대다수의 환자가 발생했다. 다행히 스포츠는 실내에서 하는 동계 종목보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하계 종목이 목하 진행 중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관중석 이라 해도 서로 조심만 하면 감염 가능성이 낮아진다.

리듬체조나 역도 등 국내 대회는 일부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실내 체육관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대회는 다른 국가 선수들이 참가하는 만큼 일정 변경이 어려워 철저한 검역 관리 진행하기로 했다.

사실 메르스는 2, 3차 감염자가 발생한 병원 등 일부 공간이 문제다. 보균자나 환자의 통제만 잘 이뤄진다면 확산의 여지는 크게 준다. 그럼에도 모든 야구와 축구 등 스포츠 경기를 중단해야 할 정도라면 일상 생활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할 수 준의 위험 사태다. 확 트인 경기장에서도 감염되는 바이러스라면 출퇴근과 등하교, 쇼핑 등 일반인들의 생활까지도 언감생심이다.

만약 KBO 리그와 K리그 클래식 등 스포츠까지 메르스 여파에 중단됐다면? 아마도 9, 10일 펼쳐진 명승부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한순간이나마 마음껏 웃고 기뻐하고 환호했던 팬들의 얼굴은 없었을 것이다. TV로, 휴대전화로, 모니터로 경기를 지켜봤을 격리된 환자, 감염자들도 스포츠 팬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KBO 리그 신생팀 케이티의 거짓말 같은 9회 5점 차 열세 극복과 연장 극적인 역전승, 일본과 독립 야구단을 거친 한화 신성현이 데뷔 첫 홈런을 역전 결승 만루포로 장식한 인생 경기는 다시 펼쳐지지라는 보장이 없다. K리그 클래식 서울이 후반 종료 2분을 남기고 일궈낸 짜릿한 대역전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의 환상 연기는 다음으로 미뤘어야 했을 것이다.

< '메르스 이겨내세요' 10일 삼성전에서 역전 결승 만루포를 터뜨린 한화 신성현과 대전과 경기에서 극적 결승골을 넣은 서울 윤주태, 제7회 아시아 리듬체조대회에서 환상 연기를 펼친 손연재.(왼쪽부터, 사진=오센, 스포츠서울, MK스포츠) >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일 체육분야 관계 단체회의에서 메르스 관련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위기 경보단계가 '주의' 단계인 만큼 행사 연기나 취소 요청은 하지 않되 주최 측에 맡기기로 했다.

메르스는 무섭고,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위축되지는 말자. 선수들도 지금 이 순간이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다. 시름과 우울에 잠긴 국민들에게 잠시나마 잊고 웃음짓게 할 위로를 안겨야 하는 까닭이다.

KBO 리그 최초로 통산 400홈런을 달성한 '국민 타자' 이승엽(39 · 삼성)은 대기록 뒤 의미심장한 인터뷰를 남겼다.

"90년대 후반 IMF 때 정말 많은 분들이 '내 홈런 하나로 힘을 받는다'며 격려해주신 게 정말 고마웠고, 더 많은 홈런을 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원동력이었다"면서 "내가 할 일은 그저 야구장에서 열심히 플레이해서 관중에게 웃음을 주고, TV를 보시는 팬들과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안 좋은 기분을 좋은 기분으로 손톱만큼이라도 바꿔준다면 그게 만족이고 도움"이라는 것이다.

그게 지금 이 비상 시국에도 선수들이 스포츠 경기를 해야 하는 이유다. 사람이 먼저이기 때문에라도 그렇다. Show must go on!

글=CBS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