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그들은 왜 맨 바닥에 앉았나

조회수 2015. 6. 10. 09:21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그들의 하루하루는 칼날 위에서 선 승부다. 매일매일이 '아침마당'이다. 무슨 사연이 그리 많은지 구구절절, 기구하고, 박복하다. 이번에는 핵심 전력인 불펜 에이스를 빼놓고 최강자와 붙어야 했다.

그들은 힘겨울 것 같던 대구 첫 경기를 잡았다. 무려 완승이었다. 무척 낯설었던 선발의 완투, 4번 타자의 결정적인 연타석포. 아주 고전적인 방식을 통해 얻어낸 승리였다. 특유의 변화무쌍하고, 기발하고, 즉흥적인 구성도 필요 없었다. 힘 대 힘으로 붙어서 1위 팀을 압도했다.물론 야신다운 요소는 있었다. 1회 첫 타구를 떨어트린 강경학의 단호한 교체. 그리고 작년 2군 시절부터 특성을 파악했던 구심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적절한 협조요청(?)'. 그것이 게임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상당한 변수였을 것이라는 상상은 가능하다.다만 어제(9일) 경기는 다른 프리즘으로 풀어보고 싶다. 야신을 통해서가 아닌, 그라운드에서 직접 뛰는 자들의 시선에서 말이다.

궁상맞게, 선풍기 바람도 안드는…

(MBC Sports+ 중계화면 캡처)

어제 경기 초반 장면이다. 정근우와 이용규가 덕아웃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벤치 앞 맨 바닥까지 진출한 것이다.이를 목격한 기승전돔 해설위원은 아니나 다를까 즉각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구장 덕아웃이 좁아서 저런 겁니다. 내년부터 새 홈구장이 지어지면 이제 저런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될 겁니다'라면서. 물론 지당하신 말씀이다. 왜 아니겠는가. 선수들이 충분하게 쉴 공간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했어야지….

하지만 <…구라다>가 주목한 것은 '왜 밖으로 나왔냐'가 아니다. '누가 나왔냐'라는 점이다. 이날 대구 기온은 최고 32도에 육박했다. 여기에 인조잔디의 복사열을 감안하면 그라운드는 살짝 달궈진 찜질방 수준이다. 경기 전 훈련 때도 반바지에 민소매 차림이 납득되는 화끈함이었다.

따져보자. 정근우와 이용규 정도면 이글스 야수진 중에서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연차도 웬만해서 후배들도 줄줄이다. 굳이 그렇게 궁상 떨지 않아도 그만이다. 시원한 음료수 냉장고 옆, 또는 싱싱 돌아가는 선풍기 아래 쪽에 좋은 데 자리잡는다고 눈치줄 사람 없다. 주력 선수가 편하게 쉬어야 경기력도 좋아질텐데…. 얌체 같다고 뭐랄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굳이 열기가 후끈 올라오는 불편한 맨 바닥을 택했다.

그들이 앉은 데가 어떤 곳이냐고? 대구구장 1루쪽 덕아웃은 일몰 때까지 햇볕을 정면으로 맞는다(그래서 홈팀이 3루쪽을 쓰는 몇 안되는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안쪽 깊은 곳이라야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구조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다 들어갈 공간은 된다. 그럼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 바람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더위에 꽉 찬 벤치를 상상해 보시라. 복닥복닥, 바글바글. 몇 명이 비켜주면 훨씬 널널해진다.

그들이 알아서 물러난 자리는 하필이면 맨 바닥이다. 한낮 땡볕의 열기가 남아 해질 무렵까지 후끈한 곳이다. 그럼에도 '애들' 보내지 않고, 스스로 비켜줬다. 그건 팀워크다. 끈끈함이다. 양보/희생이고, 속깊은 배려다.

소득 격차의 위화감이 방해 요소다

FA 몸값이 폭등했다. 그러면서 각 팀들은 선수단 운영에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 위화감 탓이다. 많이 받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간의 심리적 간격 말이다. 이건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가야할 조직에 커다란 방해 요소다. 자칫 경기력을 망치는 치명적인 인자가 될 지 모른다.

이글스는 어느 팀보다 그런 요인이 강하다. 그들은 총연봉(79억 6,900만원), 1인당 평균연봉(1억 3,982만원)에서 모두 10개팀 중 2위다(1위는 삼성). 그러면서 유난히 빈부격차가 크다. 고소득 스타 플레이어가 많은 반면 루키나 다름없는 선수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김태균 첫 홈런>

<김태균 두번째 홈런>

이용규는 맨 바닥에 그냥 널부러져 앉은 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곳은 동료들에게 가장 큰 응원을 전달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두번에 걸친 김별명의 홈런 세리머니 때 누구보다 열렬하고 격정적인 리액션을 보여준 것도 그였다. 1차 손바닥으로 헬멧 때리기, 2차에는 배트 손잡이로 두들기기. 새로운 용규놀이를 시전했다. 평소 성격답지 않은 '오버 액션'도 마다하지 않았다. 팀이 처한 위기에 대한 나름의 대처 방식이리라.

그는 지난 토요일(6월 6일, kt전) 3안타 4출루 경기를 했다. 게임 후 방송 인터뷰가 목표를 물었다. 타율, 최다안타, 도루 등등의 답을 기대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매 경기 2번씩 출루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풀타임으로 수비를 뛰겠습니다. 그게 팀에는 도움될 겁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