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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차현의 스포츠 On Air] 정민철 위원이 류현진에게 전하는 편지

조회수 2015. 5. 26. 23: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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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이었나? 한화 이글스에서 우리가 함께 원투펀치를 했던 기억이 난다. 현진이 네가 1선발이었고 내가 2선발이었지. 아무래도 1,2 선발은 스케줄이 비슷하다 보니 그때 참 많은 이야기를 했고 서로에 대해 꽤 알아갈 수 있었어.

같이 훈련하고, 같이 이동하면서 많은 추억이 있었던 것 같구나. 그때부터 현진이 넌 정말 파악하기가 힘든 녀석이라는 느낌을 받았지. 항상 같은 표정과 행동, 주위에서 뭐라 하던 신경 쓰지 않는 무덤덤함. 특히 마운드 위에서 평상시의 이 모습이 그대로 보이니 정말 놀랍더라. 심지어 메이저리그라는 큰 무대에서도 말이지. 물론 TV를 보다가 마운드 위에서 가끔 넓어지는 너의 콧평수를 보면, 흥분상태를 알 수 있기는 해.^^

수술 전에 유난히 자주 문자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수술 직전까지도. 사실 겉으로는 무덤덤하지만 사실은 나름 예민한 네 성격을 잘 알기에, 서로 심각한 얘기보다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런 소소한 이야기가 오히려 편안한 위로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솔직히 수술까지는 나도 생각 못했다. DL기간이 갑자기 길어질 때는 조금 안 좋을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네 말대로 5월에는, 늦어도 올스타브레이크 전까지는 다시 돌아올 줄 알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KBO리그에서도 현진이 너의 몸 상태가 아주 좋았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넌 이미 프로에 오기 전에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그러면서 휴식하는 동안 팔을 최대한 아낀 뒤 선발 등판하는 당일에 모든 힘을 쏟는 스타일이었지. 그래서 불펜 피칭도 항상 조심스러워 했고.

국내에서는 많은 이닝을 소화해야 하는 에이스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미국 진출 후에는 한 타자 한 타자 전력을 다해 상대해야 하는 큰 무대의 부담감,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부상으로 이어진 것 같아 마음이 무척 무겁다. 일본에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투수들이 부상에 시달리는 것도 아마 같은 맥락이겠지.

돌이켜 보면 나 역시도 현역 때 항상 부상에 시달렸어. 부위는 다르지만 너와 마찬가지로 팔꿈치에 관절경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어. 수술 후에 많이 위축됐던 기억이 난다. '난 수술 경력이 있다'라는 의식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는 순간, 이미 100%로 던질 수가 없었지. 상당히 고전했던 기억이야.

일본 요미우리 시절은 더 힘들었어. 나는 외국인 선수 신분이었고, 그들은 외국인 선수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빨리 야구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탓에 더 조바심이 나기도 했었지.

하지만 현진이 너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미 팔꿈치 수술을 잘 이겨낸 경험이 있고, 수술 자체가 심각하지 않은 '클린업'이었으니까 충분히 회복될 수 있을꺼야. LA다저스에서 사랑받고 있는 만큼 충분히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해내면 더 강해져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항상 낙천적인 네 성격이 아마 고독한 재활에 큰 도움이 될꺼야. 사실 수술과 재활의 성패여부는 마인드가 80%라고 생각해. 주위에서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한데, 현진이 너보다 이걸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낙천적인 성격이 꼭 타고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자기 성찰이 깊어야 쓸데없는 고민을 버릴 수 있고 그게 낙천적인 성격으로 이어지는 건데, 현진이 너는 필요 없는 걸 버릴 줄 아는 훌륭한 재주가 있어.

난 긍정적이야. 현진이 너의 자기 컨트롤 능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봐왔으니 충분히 이 고독한 재활을 극복하리라고 믿어. 사실 넌 강속구 투수라기보다는 정교한 제구와 완급조절이 탁월한 유형의 투수잖아. 재활 후에 크게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는 한 너의 구위는 충분히 다시 돌아올 것으로 본다.

<류현진에게 제작진이 선물했던 '2014 류현진 리뷰' DVD 세트. 비록 '2015 류현진 리뷰'는 선물할 수 없게 됐지만, 다음 시즌에는 더 많은 '류현진 리뷰'가 제작되기를 기대해 본다.>

개인적으로는 '류현진 리뷰' 프로그램 해설을 직접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 시즌에는 할 수 없게 됐으니 아쉽구나. 사실 올 시즌 내가 해설에 도전했던 여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어. 현진이 네 피칭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퍽 즐거울 것 같았는데, 아쉽지만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겠구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사실 재활이라는 건 정말 고독하더구나. 그동안 나에게 환호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느낌이랄까? 하지만 현진이 넌 이미 우리 야구계에서 절대 잊힐 수 없는 존재이니,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항상 염두해 두고 재활에 매진해주길 바란다.

위기라고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여유를 갖고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 이 어려운 시간이, 앞으로의 긴 선수생활을 위해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훌륭한 자양분이 되리라고 믿는다. 현진이 넌, 더 강해진 모습으로 반드시 다시 돌아올 테니까.

구술 = 정민철(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정리 = 박차현(MBC스포츠플러스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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