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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실패한 작전, 그리고 야통의 두터움

조회수 2015. 5. 25. 13: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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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작전, 그리고 야통의 두터움

24일(일) 광주 경기 마지막 순간은 길이 기억될 명장면이다. 김상수의 아름다운 스윙이 우중간에 날카로운 곡선을 그려냈다. 스탠드를 꽉 채운 관중들은 본능적으로 아찔함을 느꼈다. 그러나 완벽한 동점타로 보였던 이 타구는 믿기 힘든 우익수 박준태의 호수비에 걸렸다. 비명이 어마어마한 환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빛고을의 주말 2게임은 홈팀에게 중요한 전기가 됐다. 만나기만 하면 절절매던 천적을 상대로 연승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충 이긴 게 아니었다. 연속 (팀) 완봉승이었다. 리그 최강 타선을 꼼짝 못하게 막아냈다. 게다가 고비 때마다 현란한 수비가 속출했다. 최상급 경기력이었다.특히나 박준태의 슈퍼 캐치는 역대급이었다. 아낌없는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도대체 김기태 감독은 어떻게 알고 그를 그 자리에 꽂았을까. 그리고 하필이면 운명의 타구가 왜 꼭 그 자리로 날아갔을까. 참, 알 수 없는 게 야구다.이 장면을 보면서 <...구라다>는 한가지를 상상했다. 만약 그때 2사 1, 2루가 아니라 2, 3루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랬다면 박준태는 김상수의 타구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수비 위치가 훨씬 앞쪽이었을테니 말이다.왜 그런 가정이 필요하냐고? 사실은 그 가설이 오늘 얘기의 출발점이다. 삼성은 번트로 2, 3루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계속 1, 2루였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결정적인 패인으로 작용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보내기 번트의 일반론적 가치

선발 스틴슨의 커리어 최초 (마이너리그까지 통틀어) 완봉승이 머릿 속에 그려지는 순간 박석민과 이승엽의 연속 좌전 안타가 터졌다. 무사 1, 2루. 드디어 기아 벤치가 움직였다. 스틴슨을 내리고 윤석민을 투입했다. 그리고 삼성은 의외의 카드를 내밀었다. 대타 진갑용이었다. 의외라고 한 이유는 간단하다. 진갑용을 쓴다는 건 번트를 대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당시 무사 1, 2루의 상황에서 가장 일반적인 예상은 (원래 타순대로) 이흥련이 나와서 보내기 번트로 1사 2, 3루를 만든다. 그리고 다음 박해민 타석에 진갑용을 활용한다는 시나리오다. 이 작전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여러가지다.① 병살을 예방한다 (대부분 공격 작전은 병살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② 타자에게는 1, 2루보다 2, 3루가 훨씬 부담이 적다. 따라서 승부수인 '대타 진갑용' 카드는 이때 써야 효과적이다.③ 그렇다고 유인구 승부를 하다가 1루를 채운다면? 김상수를 넘어 나바로까지 타순이 이어진다. 삼성으로써는 땡큐, 기아는 결코 바라지 않는 바다.①~③은 하나도 틀리지 않다. 아주 그럴듯한 요소들이다. 야통과 그의 스태프들이 이런 점을 간과했을 리가? 절대 없다. 그럼에도 그는 번트 대신 대타 카드를 썼다.앞선 이력을 살펴보면 더 그렇다. 그들은 이틀 연속 무득점 패배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적시타는 커녕 찬스 때마다 병살타가 맥을 끊었다(이날도 3개). 그런데 가장 느린 타자를 타석으로 내보냈다. 주자 2명(박석민, 이승엽)도 빠르지 않다. 그리고 강공을 택했다. 무모할 정도다.

목표점이 한국시리즈 최종전이라면

아시다시피 승부수 '진갑용 카드'는 실패였다. 진루타도 치지 못하고 삼진이었다. 후유증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만약 보내기 번트를 성공했다면 2, 3루. 그랬다면 앞서 제시한 가설처럼 마지막 김상수의 타구는 우중간으로 빠져 나갔을 것이다. 2루 (동점) 주자의 득점을 막기 위해 외야수들은 실전 위치보다 몇 걸음 앞쪽에 자리 잡았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야통의 작전은 뼈아픈 패착이었다. 아마도 많은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구라다>는 그들의 비판에 반론을 제기한다. 오히려 그걸 감수하고 정공법을 택한 그의 두터움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 상황에서 보내기 번트가 옳으냐, 강공이 옳으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성공/실패로 판단이 가려진다면 그건 의미 없는 논쟁에 불과하다.가장 좋은 공격 기회에 강한 마무리 투수가 나왔다. 그럼 가장 좋은 타자를 내보내 가장 강한 스윙으로 대응해야 한다. 사실은 그게 본질이다. 가장 평범하지만, 누구도 지키기 힘들다. 병살이 두렵고, 실패에 대한 공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연 현재 10개 팀 중에 그 대목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감독이 또 있을까?감독은 CEO다. 단기적인 손익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시즌 전체를 경영해야 한다. 물론 그 게임은 분명히 실패였다. 잘못된 선수기용이었고, 작전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표가 한국시리즈 최종전에 있다면 판단은 달라져야 한다.발 빠르고, 변화무쌍한 움직임은 쏠쏠한 실리를 가져다 준다. 반면 조금씩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뚜벅뚜벅 정도를 걷는 경영은 막판으로 갈수록 힘을 얻는다.아직 5월이다. 물론 팀마다 사정이 다르다. 그러나 무사 1, 2루에 진갑용으로 강공을 시키고, 안지만에게 10일짜리 휴가를 준다는 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게 4연패를 이룬 리더십의 스케일과 두터움일 지 모른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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