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를 향한 제언] 복싱이, 메이웨더가 K리그에 던진 메시지

조회수 2015. 5. 9. 09: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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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만 해도, 불과 4~5개월 전만해도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매니 파퀴아오는 그리 대중적인 이름이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 초 두 선수가 맞대결을 약속하고 대한민국 땅에도 '세기의 대결'이란 표현이 나돌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원래 잘 알고 있던 선수'를 자처하는 이들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그들이 펼치는 '정보 배틀'의 파편만 가지고도 지식이 풍성해졌다. 어떤 종목의 용어인지도 몰랐을 메이웨더의 숄더롤은 어퍼컷만큼 익숙한 복싱 기술이 됐고 스포츠에 관심이 덜한 이들까지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필리핀의 국민영웅이 된 파퀴아오의 인생 스토리를 꿰차게 됐다.

'한물간 스포츠'라던 복싱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국내 선수의 경기도 아닌데 마치 야구 WBC나 축구 A매치 같은 기대감이 형성됐다.

47번을 싸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무패 복서와 '도장깨기'하듯 복싱사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한 진짜 파이터. 뚫리지 않는 방패와 모조리 뚫어내는 창, 취미처럼 복싱을 즐긴 명문가 자제와 살기 위해 글러브를 껴야했던 뒷골목 아이.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맞대결은 뚜렷하게 달라 더더욱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경기가 전파를 타던 5월3일 정오 무렵 서울역에 있었다. 전날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현대와 수원삼성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5' 9라운드 경기를 보고 막 상경했을 때다. 대형 TV 앞에 남녀노소가 모여 있었다. '세기의 대결'을 보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소'까지는 거짓이다. 남자가 많았고, 여성도 제법 있었다. 복싱의 화려한 시절을 기억하는 노인들은 신문지를 들고 혹은 깔고 소년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경기 후 감정은 전혀 달라졌다.

심장이 터질 듯 기다렸던 경기는 복장이 터질 듯한 내용으로 끝났다. 판정으로 승리한 메이웨더의 얼굴은 역시 '프리티보이'다웠다. 하지만 파퀴아오의 얼굴도 깨끗했던 것은 매한가지다. 땀만 닦고 옷을 입으면 싸운 사람들인지 모를 정도였다.

복싱 깨나 안다는 사람들은 메이웨더의 현란한 발놀림과 영리한 클린치에 박수를 보내며 '저러니까 메이웨더'라 감탄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런 건 난 모르겠고~"를 외친 일반 팬들이 몇 곱절은 많았을 것이다. 권투에 막 관심을 가지려 했던 이들, 권투의 향수를 되살리고 싶었던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경기였다.

복싱은 '허락된 싸움'이다. 룰 안에서 전쟁을 강요하고 그것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원시적이고도 원초적인 스포츠다. 그렇다면 대중의 실망감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하도 잘 싸운다고 해서 싸움을 보기 위해 모였는데 잘 피하는 것을 보여주면 좋아할 이는 몇이나 될까. 이종격투기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가던 복싱계는 아주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

그 경기를 분명 보았을 대한민국 프로축구계는 같이 화를 내는 수준에 머물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기기 위해 도망을 다녔고, 무조건 웅크리다 그것도 힘들면 끌어안았던 메이웨더는 승자가 되고도 야유를 받았다. 재대결 이야기가 오가자 '됐다'라는 반응이 많다. 왜 대중들이 등을 돌렸는지 K리그의 현실에 대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축구를 좀 아는 이들은 "이 선수의 특징은 무엇이고 저 선수는 이런 점이 좀 약하다"거나 "상대가 이런 장점이 있고 저런 전술을 가지고 나오기에 오늘은 이렇게 대응하는 것"이라며 심도 있게 축구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건 난 잘 모르겠고, 대체 골은 언제 터지는 거야?"라고 묻고 있다. 그들을 향해 "싸우지 않으니 골은 들어가지 않아"라고 솔직하게 답하기 어렵다.

과거 대한민국 프로축구는 야구 버금가는 혹은 이상의 인기를 누리던 스포츠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야구는 물론 다른 스포츠에도 밀린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다. 위기의식을 느껴야한다. 다행히도 조금씩 관중이 늘고 있는 분위기다. 지금의 기회를 살려야한다. 보러 온 이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또 찾아오고 다른 이와 함께 온다.

축구 역시 공 하나를 두고 20명의 건장한 이들이 몸으로 싸우는 원초적인 스포츠다. 전쟁에 비유되는 종목이다. 그런데 싸우지 말자면서 한쪽이 가드를 한껏 올리고 있는 경기들이 많아지고 있다. 과연 그 모습을 보면서 "수비축구도 충분히 매력적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왜 지금 K리그에 공격 축구가 필요한지, 복싱이 그리고 메이웨더가 진지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글= 임성일[뉴스1 스포츠부/lastuncle@daum.net]

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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