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경의 포토카툰] 차두리 은퇴식에 웃을 수 없었던 세 남자, 차두리·차범근·손흥민

조회수 2015. 4. 1. 20: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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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영웅 차두리가 3월 31일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을 끝으로 대표팀과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배려로 뉴질랜드전에 선발로 출전한 차두리는 마지막 A매치에 최선을 다해 뛰었고, 전반 43분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교체됐다.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후배들과 함께 한 마지막 시간은 그 어느 선수의 은퇴 무대보다 감동적이고 뜻깊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은퇴식에 모인 모두가 웃으면서 그를 보내주었다.                   

단 세 사람만 빼고 말이다.

#결국 눈물 보인 차두리

차두리 은퇴식에 웃을 수 없었던 첫 번째 사람은 바로 차두리 자신이다. 그라운드에 입장할 때까지만 해도 태연했다.

그러나 전반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은퇴식이 진행되자 더 이상 표정관리가 힘들었다.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에 등장한 차두리는 그 동안 선수 생활을 담은 고별 영상을 보며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기념 촬영을 하는 내내 이를 악 물고 눈물을 참았지만 이미 붉어진 눈시울은 은퇴식이 끝날 때까지 촉촉히 젖어있었다.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차두리

그라운드를 돌며 인사를 전하는 동안 관중석에는 '차두리 고마워'라는 커다란 통천이 펼쳐졌고, 팬들은 작은 피켓으로 마음을 전했다.

#웃고 있지만 웃을 수 없었던 아버지 차범근

차두리의 은퇴식에서 차두리 만큼 슬픈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아버지 차범근이었다.

평생을 차범근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을 넘기위해 애썼다는 차두리는 아버지 차범근의 등장에 다시 한 번 눈물을 왈칵 쏟았다.

"아버지께서 운동장에 나왔을 때는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항상 아버지를 보며 도전했다. 더 잘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을거라 믿었지만 어느 순간 현실의 벽을 느꼈다. 그때부터 축구를 즐겁고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보는데 큰 짐을 내려놓은거 같아 기분이 홀가분했고, 아버지의 아성에 도전했는데 실패한 것에 대한 자책과 아쉬움도 남았다. 한편 조금 밉더라(웃음). 너무 잘하는 아버지를 둬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근처에 못가니까 복합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항상 이 사람처럼 되야겠다고 생각했던 롤모델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것 또한 살면서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고 행복인 것 같다"

-차두리 대표팀 은퇴 기자회견중-

이날 만큼은 한국 축구를 빛낸 영웅이 아닌 '차두리 아버지'의 자격으로 자리에 참석한 차범근은 아들의 눈물에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정몽규 축구협회회장, 팬 대표와 함께 기념 촬영하는 차두리 차범근 부자

담담한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미소를 보였지만 사실 환하게 웃을 수 없었던 아버지 차범근이었다. '차범근의 아들'이 아닌 '차두리의 아버지'로 자신을 초대한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 대견함. 더이상 태극마크를 단 아들을 볼 수 없는 속상함.차두리 만큼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두리 형, 너무 잘 보내주고 싶었던 손흥민

차두리 은퇴식에 웃을 수 없었던 세 번째 남자는 손흥민이다.

↑이번 경기를 위해 준비한 손흥민 축구화 '두리형 고마워'

구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두리의 은퇴 무대를 함께 하기위해 대표팀 합류를 강행했다는 손흥민은 정작 차두리의 은퇴 무대에서 가장 침울했다. 사랑하는 두리 형을 너무 잘 보내주고 싶었던 마음이 화근이었을까. 손흥민은 전반 39분 어렵게 얻은 페널티킥 기회를 날려버렸다.

차두리가 교체로 나가기 전 멋진 골을 선물하고 싶었던 손흥민은 이후 시무룩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전반 43분 차두리의 교체 사인이 떨어지자 관중석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손흥민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라운드를 나서기 전 손흥민에게 다가가 포옹을 나누는 차두리

차두리가 교체로 나간 후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손흥민이다. 하프타임에 열린 은퇴식에서도 웃을 수 없었다. 두리 형의 은퇴 무대를 망쳤다는 괜한 자책과 아쉬움이 그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침울한 표정으로 박수를 보내던 손흥민차두리를 위한 세리머니는 결국 후반전 이재성이 대신 해주었지만 그렇다고 속상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후반 41분 이재성의 결승골 이후 차두리에게 달려가는 선수들

↑경기 종료 후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는 손흥민

마지막까지 그런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역시 형 차두리 밖에 없었다.

힘 없이 걸어오는 손흥민이 마음에 걸렸는지 자신의 뒤를 쫓아오던 손흥민에게 손을 뻗어 함께 라커로 향하는 차두리였다. 형의 은퇴 무대를 멋지게 꾸며주고 싶었던 동생과 마음만으로 충분히 고마웠던 형. 두 사람의 우정은 마지막까지 아름다웠다.

이제 더 이상 호쾌하게 오른쪽 터치 라인을 내달리던 국가대표 '차미네이터'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이미 축구 팬들의 가슴 속에는 차두리가 찍어낸 발자국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차두리는 스스로를 향해 "나는 축구를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고 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즐겼다. 진한 땀방울로 축구를 즐기던 차두리 덕분에 보는 이들도 행복했다.

차두리는 은퇴식 내내 '고맙다'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팬들이 차두리에게 전할 말 역시 '차두리 고마워' 밖에는 없다. ​

글 사진=구윤경 기자 ( 스포츠공감/kooyoonk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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