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우의 1S1B] '10년만에 밝히는 '빵재홍' (사건)전말

조회수 2014. 1. 30. 09: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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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두산과 KIA의 준플레이오프가 끝나던 날, 기자는 우연히(누가 불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KIA 선수들의 뒤풀이에 함께하게 됐다.

그 자리에선 이런 저런 아쉬움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간혹 분함에 눈시울을 붉히는 선수도 있었다.

그러다 한 선수가 또 다른 선수에 대해 아쉬운 소릴 했다. "경기가 끝나고 빵을 먹고 나오는 모습에 실망했다" 는 것이었다. 일부 선수들은 그 이야기에 공감했지만 또 적지 않은 선수들은 "경기 졌다고 빵도 못 먹느냐" 며 웃어 넘겼다. 단언컨대 당시 그 이야기를 나누던 분위기는 결코 무겁거나 심각하지 않았다.

다음 날은 기자의 회사 뒤풀이가 있었다. 기자는 별 생각 없이 당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며칠 뒤 '폭탄 뉴스' 라는 곳을 통해 기사가 나왔다. "KIA의 한 고참급 선수가 팀 패배에 개의치 않고 빵을 먹어 선수들이 분개했다" 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사건의 최초 발설자가 기자일 확률은 99.9%다.

당시 폭탄 뉴스는 종목별로 내노라 하는 베테랑 기자들이 모여 익명으로 뉴스를 서비스하는 사이트였다. 익명을 전제로 뒷 이야기와 깊은 분석을 토대로 한 사이트였다.

철저하게 익명으로 운영되는 사이트에 실린 기사 출처를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고? 세상에는 비밀이 없는 법이다. 좀 더 세월이 흐른 뒤 '폭탄 뉴스' 가 어떤 기자들로 구성돼 있는지 알음알음 알려졌다. 그 중엔 기자의 선배들이 적지 않았다.

기사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큰 일이 될지는 몰랐다. 폭탄 뉴스는 제호처럼 그리 폭발적인 반응은 얻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후, 난데 없이 당시의 뉴스 한 꼭지가 세상에 알려지며 한 선수가 집중적인 비난을 받게 됐다. 술 자리에서 한 이야기였기 때문일까. 기사는 매우 심각하게 작성 돼 있었다.

피해자는 당시 SK 소속이던 박재홍 현 MBC스포츠+ 해설위원이었다. 그는 억울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을 알고 있는 내게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원죄의식(?)이 있었으니 당연히 박재홍이 아니다라는 기사를 썼다.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그래도 박재홍' 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그 선수가 누구인지 찾아내려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직접 듣고 쓴 기사가 아니다 보니 다소 자의적 해석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네티즌들의 수사(?)에도 혼선이 빚어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정확하게 누군인지 모두가 헷갈려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와 밝히자면 '그때 기자가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선수'는 현재 박재홍 위원과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 해설위원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가 빵을 먹었다는 사실은 당시 KIA 선수들 사이에선 그리 대단한 논란 거리가 아니었다. 어쩌면 본인도 그 사실을 잊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억울하게 지목돼 오랜 시간 시달렸던 박재홍 위원의 마음에만 큰 상처를 남겼을 뿐, 다른 선수들은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렸다는 사실도 잘 모를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다시 10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꺼낸 이유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시작은 모두에 언급한 것 처럼 한 선수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많은 돈을 받고 FA 계약을 맺은 이 선수는 팬들의 비난을 받게 되는 건 아닐지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막연한 두려움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실체 없는 두려움은 보이지 않아 더 무서운 저주처럼 다가왔다. 지금도 가끔씩 악몽을 꾸다 깬다고 했다.

딱히 해줄 말이 없어 그냥 마음 편히 먹고 스프링 캠프 잘 다녀오라는 인사만 했었다. 그에게 늦게나마 기운낼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이렇게 오래 전 일을 다시 꺼내게 된 것이다.

'선수 박재홍' 은 빵재홍이라는 비아냥을 수년간 받아야 했다. SK 시절, 적지 않은 오해까지 더해지며 그의 별명은 잔인한 인성 평가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가 빵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말 덕분이 아니었다. 수도 없이 자신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그리고 기자 역시 기사로 사실이 아님을 밝혔지만 여론의 냉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분위기로는 다른 선수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 조차 조심스러웠다.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탓이다.

그가 빵을 극복한 건 야구였다. 변명 하기 보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 비록 300(홈런)-300(도루)에는 실패했지만 300홈런을 넘어서며 '박재홍'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선수협 회장으로서 공정하게 날 선 결단력을 보여주며 위기의 선수협을 다시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세상은 그를 여전히 빵과 연결시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전의 비난에선 한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결국 야구 선수는 야구로 극복하는 수 밖에 없다.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겠지만 진정한 노력은 언제가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스포츠의 변함없는 진리다. 땀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진심어린 땀은 결국 보는 이들에게도 통하게 돼 있다. 박재홍은 그 평범하지만 묵직한 진리를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덧붙이기 : 현역 시절 박재홍 위원에게 오히려 빵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보자고 제의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변명해도 안 통하니 그냥 정면으로 부딪혀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건 자체가 심각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팬 서비스로 직접 빵을 나눠주면 하나의 웃음 코드로 넘길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시 박 위원은 손사래를 쳤다. "빵 근처도 가고 싶지 않다"며 학을 뗐다.

그리고 몇 년 뒤, 해설 위원으로 데뷔하며 그는 기다란 바게트 빵을 들고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몇 년 전에 했었다면 어땠을까... 혼자 생각하며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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