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창과 방패] '레버쿠젠행' 류승우, 영악했지만 현명했다

조회수 2013. 12. 14. 16: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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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독일 명문 도르트문트의 영입제의를 거절한 류승우가 5개월 후 레버쿠젠에 임대선수로 가게 됐다. 일단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5년 계약을 체결한 뒤 제주의 배려로 독일무대를 밟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편법 진출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류승우가 레버쿠젠에 어떻게 가게 됐는지, 1년 임대를 어떻게 봐야하는지, 1년 동안 류승우가 어떤 자세로 지내야하는지를 풀어봤다.

■5개월 전 안 간다고 한 독일, 왜 지금 가게 됐나=프로축구 신인 선발을 거부하고 외국으로 진출하면 5년 동안 국내무대에서 뛸 수 없다. 국내프로축구를 외면하고 무분별하게 해외로 진출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프로축구연맹 규정이다. 2013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2골을 넣어 한국의 8강행을 이끈 류승우(20·제주)가 지난 7월 독일 명문 도르트문트의 영입제의를 거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가서 잘하면 좋겠지만 만의 하나 실패할 경우 찬밥신세가 될 수 있다는 걸 류승우는 걱정했다. 당시 류승우는 "내 스스로 준비도 덜 됐고 너무 강한 팀이라서 가서 잘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그로부터 5개월이 지났고 류승우는 독일행을 결심했다. 올 시즌 자유계약선수로 류승우를 뽑은 제주가 1년 임대를 허락한 것이다. 그런데 그 팀은 도르트문트가 아닌 레버쿠젠이다. 류승우 에이전트 최월규씨는 "도르트문트행을 거부한 뒤에도 해외구단으로부터 오퍼가 계속 왔고 그 중 하나가 레버쿠젠이었다"고 말했다.

■든든한 둥지가 생긴 게 5개월 전과의 차이=지난여름 류승우는 대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제주 소속 프로선수다. 제주는 최근 류승우와 계약금 1억5000만원(추정치)과 연봉 5000만원에 5년 계약했다. 그에 앞서 에이전트는 제주 구단에 레버쿠젠이 류승우의 영입을 원한다는 것을 전했다. 물론 제주가 처음부터 반긴 것은 아니었다. 올해 스플릿 B로 떨어지면서 경질설이 흘러나온 박경훈 감독도 류승우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류승우의 강한 의지에 밀려 결국 독일행을 허락했다. 레버쿠젠은 처음에는 이적을 원했지만 제주로서는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고 받아들일 때도 아니었다. 결국 협상을 통해 1년 임대로 결정됐다. 류승우는 레버쿠젠에서 실패하더라도 자신을 받아줄 든든한 원 소속팀이 생겼다. 마음 편하게 해외리그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이게 류승우의 생존 의식을 강화시킬지, 거꾸로 약화시킬지는 오롯이 류승우 몫으로 남는다. 본인이 사력을 다해 열심히 한다면 성공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제주로 돌아올 것이다. 박경훈 감독은 "1년 임대가 끝나면 완전 이적이냐, 제주 복귀냐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임대기간을 연장하는 식으로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영악하지만 현명한 선택이다=제주와 입단계약을 해놓고 해외로 진출한 류승우의 케이스는 일단 현명한 일이다. 무분별하게 해외로 진출하는 것보다는 든든한 안전판을 만들어놓고 나간다는 것은 똑똑한 처사다. 일부에서는 편법을 썼다고 하지만 유망주 보호 차원에서는 잘 된 일이다. 류승우가 레버쿠젠에서 잘 하면 이적하면 되고 못하면 돌아오면 된다. 이적하면 제주는 이적료를 받으면 되고 계약조건이 안 맞거나 류승우가 적응을 못하고 돌아오면 제주는 류승우를 받아주면 된다. 레버쿠젠에서 류승우가 열심히 노력한다도 하면 1년 후 돌아와도 류승우는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실보다는 득이 많다. 국내선발을 무시하고 해외로 나가 잘 된 선수도 있지만 2부리그 팀로, 이름 모를 팀에 전전하면서 5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선수도 적잖다. 박경훈 제주 감독은 "대책없이 해외로 가는 게 아니라 돌아올 수 있는 곳을 마련하고 가는 게 선수 보호를 위해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류승우가 이같은 좋은 환경 속에서 유럽리그에 도전할 수 있는 건 제주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류승우는 제주에 무척 고마워해야 한다.

■실력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고 뽑았다=레버쿠젠이 류승우를 데려간 것은 당장 주전으로 써먹겠다는 뜻은 아니다. 가능성을 보고 데려갔다고 보는 게 맞다. 류승우는 이미 2013시즌을 끝내고 오래 동안 쉬었기 때문에 몸 상태는 70% 안팎이다. 100% 몸으로 시즌 도중에 들어가도 적응하기 어려운 레베쿠젠에 준비가 덜 된 상태로 들어가니 성공 가능성은 더 낮다. 류승우에 대해 '주전경쟁 해볼만 하다'라는 식의 보도는 너무 성급하다. 류승우로서는 내년 1월 전지훈련을 통해 몸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그리고 후반기 출전을 노려야한다. 그렇다고 출전시기에 너무 목을 맬 필요는 없다. 레베쿠젠과 같은 팀은 하도 많은 유망주를 봐왔기 때문에 류승우가 쓸 만한 재목인지 아닌지, 대성할 선수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레버쿠젠이 류승우를 키우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1년 후 류승우의 완전 이적을 요청할 것이다. 물론 반대라면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제주로 돌려보낼 것이다. 류승우는 '당장 선발로 뛰어야 한다' '가능한 한 빨리 로스터에 들어가야 한다'는 식으로 무리하게 또는 조급하게 욕심낼 필요는 없다. 류승우가 1년 동안 해야 할 일은 레버쿠젠에 자신이 대성할 수 있는 자질과 태도를 가진 선수라는 걸 보여주는 일이다.

■1년에 모든 걸 걸어라=사실 류승우는 훈련을 무척 열심히 하는 선수는 아니다. 워낙 체구가 작고 가볍고 빠르기 때문에 그걸 이용해서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다. 그게 대학교리그에서, 20세 월드컵에서는 어느 정도 통했지만 분데스리가 등 성인축구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류승우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훈련을, 훨씬 더 철저하게 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훈련도 마다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느슨하게 훈련했다가는 1년 후 쓸쓸하게 돌아올 게 분명하다. '여기서 못하면 제주로 가면 되지'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제주에 와서도 성공할 수 없다. 설사 제주에서 어느 정도 활약한다고 해도 그런 자세로는 세계 정상급 선수가 될 수는 없다. 류승우가 1년 동안 레버쿠젠에서 보여줄 자세와 태도를 보면, 그가 어떤 선수이며 앞으로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할지를 가늠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천재 같은 유망주들이 즐비했지만 태도, 정신에서 문제가 있어 화려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사라진 경우도 많다.

■손흥민에 기대지 말라=류승우는 해외경험이 처음이다. 그리고 레버쿠젠은 독일리그에서 훌륭한 팀이며 좋은 선수들도 많다. 냉정하게 말해 레버쿠젠 선수들 중 대다수는 류승우를 알지 못할 게 분명하다. 독일리그는 지역색이 강하고 자존심이 센 리그다. 물론 거기에서 뛰는 세계적인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 틈바구니에서 류승우가 생존하려면 먼저 몸을 낮추고 배우는 자세로,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자세로 그들에게 다가서야 한다. 수줍어해서도 안 되고 거들먹거려서도 안 된다. 수줍어하면 어느 누구도 류승우를 챙기지 않을 것이며 거들먹거리면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좋은 성적을, 좋은 플레이를 보이려면 먼저 그 팀 문화에 잘 녹아들고 그 팀 동료들과 친해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류승우는 레버쿠젠에서 성공하기 힘들고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존재감도 잃게 된다. 류승우는 손흥민에 기대려고 해서도 안 된다. 손흥민은 17세부터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자수성가했다. 최소한 축구에서는 한국이 아니라 독일에 가까운 정서를 지녔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은 이전에 대표팀에서 한 번도 함께 하지 못했다. 류승우 에이전트 전언에 따르면 둘이 실제로 본 적도 없었다. 손흥민은 이미 레버쿠젠에서 최고 대우를 받은 톱스타인 반면 류승우는 무명의 신출내기일 뿐이다. 손흥민이 1군과 훈련하고 1군리그를 뛰는 동안 류승우는 당분간 그걸 구경해야하는 처지다. 따라서 류승우에게 필요한 것은 나도 손흥민 못지않은 좋은 선수가 되겠다는 굳은 각오로 혼자 보내야 하는 밤에, 훈련을 마치고 외롭게 지내야하는 시간에,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는 것뿐이다. 1년 후 류승우가 높은 이적료를 제주에 안기며 레버쿠전으로 이적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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